6 ) 기억은 행복만 주진 않는다.
주말을 보낼 때 아빠가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 있었는데 바로 창밖에서 엄마를 보는 일이었다.
격리실에 있는 탓에 필요한 물품은 엄마가 병원으로 전달해 주었다. 그러고 나서는 맞은편 건물에 서서 손을 흔들다 갔는데 아빠는 그 시간이 제일 기다려진다고 했다. 엄마가 왔다는 소식만 들리면 힘든 몸을 이끌고 창밖에 서서 엄마를 하염없이 기다렸었다. 눈도 잘 보이지 않게 된 아빠는 엄마가 안 보인다며 펑펑 울었다.
나는 아빠의 얼굴을 잡고 엄마가 있는 방향으로 얼굴을 돌려주었었다.
일요일 저녁에도 엄마를 보고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아빠를 이끌고 침대로 다가가는데, 맞잡은 아빠의 손에 못 보던 물집이 눈에 들어왔다. 의아해하며 아빠의 몸을 살펴보니 손뿐만 아니라 발 그리고 등과 배에도 물집이 잡히기 시작했다. 아빠는 물집이 잡힌 곳이 간지럽다며 몸을 퍽퍽 치기도 하고 얼음주머니를 올리고 있기도 했다. 간호사실에 이야기를 하니 처음에는 ”수두가 물집이 터지면서 딱지가 지고, 그러면서 가라앉아요. “라고 이야기를 하다가 아빠의 몸을 보시고는 자신이 아는 수두랑은 조금 다른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일단 내일이 월요일이니 담당 교수님이 오시면 다시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물집은 인위적으로 터지지 않게 조심하라는 당부도 들었다.
이제는 열과 피가래 그리고 간지러움까지 추가된 새벽을 보내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자지 않고 버틸 수 있을까 궁리를 하며 도파민을 찾아 검색에 열을 올릴 때였다.
”고운아 자? “
아빠가 나를 불렀다.
”아니 아빠 왜? “
”그냥,.. 있잖아 아빠랑 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뭐였어? “
그 말을 딱 듣는 순간 가만히 핸드폰을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내가 대답이 없자 아빠는 가만가만 나와의 추억을 이야기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장면도 있었고 내가 몰랐던 아빠의 추억 속에 나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갑자기 목이 매여와서 ”응 “이라는 말 밖에 할 수가 없었다.
”네가 어렸을 때 자기주장도 너무 강하고 고집도 세서 가끔 매를 들었어. “
”응 “
”하루는 네가 너무 말을 안 들어서 매를 들었는데 네가 울면서 그러더라, “나는 잘못하면 아빠한테 혼나지만, 아빠는 잘못하면 누가 혼내?”
“그랬어?”
“응. 네가 그렇게 말하는데 아빠가 할 말이 없는거야. 그때부터 너희를 혼내지 않았지.”
이건 내가 몰랐던 아빠의 기억 속 이야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아빠는 그 병실에서의 시간이 자신의 마지막이 될 거라 직감했다고 했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딸과 함께했던 추억을 이야기해 보고 싶었다고,
덕분에 눈물로 주말의 마지막 밤을 지새우다 점점 밝아오는 하늘을 마지막으로 까무룩 잠이 들었다.
선잠을 자는데 아빠의 기침소리가 이상했다. 본능적으로 눈을 떠 아빠를 부르며 병실 불을 켰다.
아빠의 주변이 피로 흥건했다. 가래가 아니라 뚝뚝 떨어지는 피가.
아빠는 피로 코와 입이 막혀 숨을 쉬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아빠에게 숨 쉬라고 소리치며 간호실에 전화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방역복을 입은 간호사분들이 분주하게 들어왔다. 간호사분들은 아빠의 상태를 확인하고 침대 주변과 아빠의 입 안을 사진 찍어 당직 의사 선생님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환자분, 당직 선생님의 오더가 나와야 저희가 다른 처치를 해드릴 수 있어서 일단 숨 크게 쉬어보실게요!”
간호사님과 함께 꼬여버린 호흡을 정리하려 노력하는 차에 다른 간호사분이 산소 호흡기를 가지고 오셨다.
“지금 오더 내려왔는데 일단 산소호흡기 하고 호흡을 보자고 하셨어요. 당직 선생님도 바로 오실 거예요.
근데 원래도 입 안이 건조하다고 하셨는데 산소호흡기를 하면 더 건조할 거라서.. 걱정이네요...”
그래도 사람이 숨을 쉬어야 다음을 도모하지 않겠는가, 아빠의 입에 산소호흡기가 씌워졌다.
몇 분 뒤 당직 선생님이 오셨다. 선생님은 산소포화도와 몸 상태를 체크하시더니 산소호흡기는 계속해야 할 것 같다고 하셨다. 산소포화도를 측정하는 기계를 아빠의 손가락에 끼워주며 산소가 90 이하로 떨어지면 안 되니 보호자가 잘 지켜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월요일 오전 회진 시간이 되자 아빠의 담당 교수님이 헐레벌떡 오셨다. 주말의 상황을 전해 들으신 모양이었다. 지금은 어떠세요? 와 같은 간단한 질문이 이어진 다음 피검사에서 수두가 음성이 나왔다는 소식을 전해주셨다. 그러니까 지금 아빠의 몸을 갉아먹고 있는 이 질병이 수두가 아니라는 말이었다. 수두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월요일이면 다 해결될 거라는 믿음 하나로 주말을 버텼는데 귀에서 삐- 하는 이명이 들리는 것 같았다.
“정확한 질병을 알기 위해서는 조직 검사가 필요합니다. 문제는 저희 병원에서는 조직 검사를 할 수가 없어요, 환자분의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해 주고 검사해 줄 상급병원으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때 아빠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내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에 들은 의사의 소견에 아빠는 마음의 준비를 했을까?
사실 아직도 물어보지 못한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