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제발 입원만 시켜주세요
접수고 뭐고 그냥 교수님을 만나러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마지막 이성의 끈을 붙잡고 접수를 한 다음 감염내과로 갔다.
아빠의 이름이 호명되고 작은 진료실에 들어가자 젊은 남자 교수님이 앉아계셨다.
이제 의사 선생님에게 아빠를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는지 교수님의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이 났다. “어떻게 오셨어요?”라는 말에 아빠가 마스크와 옷을 벗었다.
아빠를 본 교수님의 눈이 커지며 나와 아빠를 번갈아가며 보았다.
그때 보았던 교수님의 얼굴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 음...”
꽤 오래 교수님의 입에서 생기다 만 단어들의 소리만 흘러나왔다.
나는 이제 너무 말해서 외워버린 아빠의 상태와 A 병원에서 알려준 정보를 기계처럼 말하며 울었다.
“10월 1일부터 몸이 안 좋았는데 이비인후과에서 큰 병원에 가라고 하셨어요. A 병원에 갔는데 수두나 다른 감염병도 의심된다고 하셨어요. 반드시 입원해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A 병원에서는 입원실이 없다고 거절을 당했어요. 다른 병원도 다 입원실이 없다고 거절당하다가 여기서 진료와 입원을 해주신다고 해서 여기로 왔어요. 선생님 제발 입원만 시켜주세요.”
지금 생각해 봐도 당시 교수님이 내 이야기를 잘 이해하셨을까 싶다.
그 정도로 나는 말인지 울음인지 분간이 안 가는 소리를 해댔고
그걸 정정해 줄 정도로 아빠의 정신이 또렷하지도 않았다.
교수님은 아빠를 가만 보다가 일단 입원을 하자고 하셨다. 교수님은 수두가 의심된다고 하니 격리실로 입원을 하겠다. 이렇게 보면 수두, 원숭이 두창, 성병, 기타 등등 다 의심이 되지만 반대로 그 무엇 하나 뚜렷하게 해당이 되는 것도 아니라고 말하며 급하게 키보드를 두들기셨다.
일단 피검사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말이었다.
그때 들은 이야기 중에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아버님, 지금 이건 굉장히 위중한 상태입니다.”라는 교수님의 묵직한 한 문장이었다.
그 정도로 아빠는 3일 동안 아픔을 견디고 키워 온 것이었다. 드디어 아빠를 입원시킬 수 있게 되었다.
그 사이 작은 문제가 생겼다.
일단 아빠가 수두 의심 환자로 들어왔으니 격리실에 들어가야 하는데 격리실은 환자 혼자 들어갈 수 있고 면회도 불가능하다고 했다. 지금 아빠는 혼자 걷지도 말하지도 먹지도 못했다. 혼자 보내는 건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입원 수속을 도와주시는 직원분에게 아빠의 상태를 설명하며 보호자 동행이 가능한지를 물어보았다. 직원분은 여기저기 전화를 해보시더니 보호자도 함께 격리를 한다는 조건하에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알겠다는 나의 대답에 격리실에서 보호자와 환자가 지켜주어야 할 수칙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셨다. 나는 절반은 이해하지 못한 서류 뭉치들과 짐들 사이에 파묻힌 채로 아빠를 이끌고 검사실로 갔다. 피검사를 위해 채혈실에도 갔는데 긴 팔을 걷으니 팔과 다리에도 두드러기가 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먹은 게 없어서 소변이 나오지 않아 고생을 했던 기억도 어렴풋이 난다.
고생 끝에 10월 4일 오후. S 병원에 입원을 했다.
당시 나는 일을 잠시 쉬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때라 사장님들께 전화를 해 사정을 설명했다.
감사하게도 걱정 말고 간호 잘하고 다시 만나자며 응원을 해 주셨다. 그렇게 상황을 얼추 마무리하고 아빠와 함께 격리할 병동을 정리해 나갔다.
오후 회진 때 감염내과 교수님을 다시 만났다. 수두가 의심되지만, 양상이 수두와는 다른 모양을 띈다고 하셨다. 주말이 지나야 검사 결과가 나오니 수액과 항생제를 맞으며 기다려보자고 하셨다.
안과와 이비인후과에도 진료를 예약해 놨으니 오후에 진료를 다녀오면 된다는 이야기도 하셨다.
교수님은 아빠에게 영양수액과 포도당, 항생제, 항바이러스제, 스테로이드와 진해거담제 그리고 해열제를 처방해 주셨다. 아빠가 수액을 맞는 것까지 보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응~ 딸”
엄마 목소리를 들으니 온몸을 벌벌 떨게 만들던 긴장이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엄마에게 엉엉 울면서 말을 했던 것 같다.
그때는 입원을 하면 아빠가 다 나을 수 있을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