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오늘은 내가 간병인!
식대를 어떻게 신청하는지도 모르는 초보 간병인에게 센스 있는 간병이란 굉장히 멀고도 험한 길이었다.
당시에 격리로 외출을 할 수 없는 나에게 바깥세상과의 유일한 소통 수단은 격리실에 있는 작은 전화기였다.
“아빠, 이거 누르면 간호사실로 연결되는 건가?”
“나도 몰라”
정말 바보 같지만 초보 간병인과 초보 환자 둘은 그곳에서 그렇게 우리만의 작은 세상을 알아갔다.
나는 이제 막 걷기 시작하는 아기가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것저것 만져보는 것처럼 격리실에 있는 모든 걸 만져보고 열어보았었다.
그곳에서 내가 가장 애용했던 물품을 꼽으라면 첫 번째는 전화기요 두 번째는 냉장고였다.
특히 냉동실에는 두 칸을 꽉 채울 정도로 많은 양의 얼음팩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이걸 어디다 쓰라고 이렇게 놓으신 거지...?’ 했더랬다. 물론 그 이유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바로 알 수 있었다.
격리실에 오고 해열제를 맞았지만 잠시 뿐, 효과가 떨어지면 무섭게 열이 오르던 아빠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얼음팩뿐이었다.
절반의 얼음팩을 꺼내고 절반은 얼리고를 반복하며 입원 첫날을 정신없이 보냈다.
으레 환자들이 그렇듯 아빠의 증상은 새벽에 점점 심해져 한 시간마다 열을 재면서 38.5도가 넘어가면 간호사실에 전화를 했다. (격리실에 들어올 때 간호사분들은 방역복을 입어야 해서 죄송스러운 마음에 최대한 상황을 보다가 콜을 했다. 방역복은 코로나 19 당시 의료진분들의 모습을 생각하시면 쉽다.)
열이 내리면 덥고 열이 오르면 추운 현상이 반복되었다. 이불을 덮었다가 뺐다가 얼음주머니를 댔다가 뺐다가 도무지 어디에 장단을 맞춰야 할지 모르겠었다.
한 번은 에라 모르겠다 하며 냉동고에 있는 얼음주머니를 총 동원해서 아빠의 몸에 수북이 쌓아버린 적도 있었다. 물론 너무 차갑다는 아빠의 말에 바로 철수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둘 다 날밤을 꼴딱 새고 나니 정신이 없었다.
토요일 아침에 이른 아침을 먹고 아빠와 나는 기절한 사람처럼 잠을 잤었다.
새벽에도 열과 기침에 잠을 자지 못했었지만 그 강도와 주기가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빠의 말로는 병실이 너무 건조해 목이 바짝바짝 말라 더 기침이 나온다고 했다.
토요일 밤. 아빠의 기침 소리에 의문을 품을 때쯤 아빠가 빨간 피 덩어리가 섞인 가래를 뱉어냈다.
피가 섞인 가래는 계속 나오는데 아빠는 목에 뭐가 걸린 것처럼 쉴 새 없이 기침을 했다. 나는 너무 놀라서 아빠에게 기침 그만하라고 말하며 간호실에 전화를 했다. 내 입장에서는 걱정이 되어 한 말이었는데 아빠에게는 잘못 전달이 되었었나 보다. 아빠는 나를 타박하며 “ 너는 겪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이게 그렇게 되는 게 아니야!”라며 큰 소리를 냈다.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너무 놀라기도 했고 아빠가 무작정 호통을 치는 것 같아서 속상했다. 가뜩이나 긴장도 되고 힘든데 아빠에게까지 그런 말을 들으니 기분이 상했던 것 같다.
차마 아픈 아빠에게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어 화장실에 들어가 혼자 울다가 나왔었다.
다시 간의 침대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아빠가 그런 얼굴 하지 말고 자자고 했다. '지금 내가 이런 얼굴을 하는 게 누구 때문인데'라는 말이 입술 바로 앞까지 찾아왔다. 그 당시에는 아빠에게 단단히 삐졌던 것이 분명한 게, 이 글을 쓰며 찾아본 간병 일기에
“아빠는 나한테 다 말했으니까 괜찮겠지만 나는 싸우지 않으려고 아무런 말도 안 했어. 그럼 내가 감정을 추스를 시간은 줘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말하며 아빠에게 쏘아붙였다고 쓰여있다. 그리고 그 뒤에 ‘왜 그랬을까 후회가 된다.’라고 짧게 쓰인 글을 봐서는 저렇게 말하고 바로 후회한 모양이다. 나이를 먹어도 철이 없는 건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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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새벽 어김없이 찾아온 열과 피가래와의 싸움에 간호사분들과 함께 밤을 꼴딱 새웠다.
그래도 하루하고 반나절 동안 약을 꾸준히 맞아서인지 일요일 아침 아빠의 식사량이 조금 늘었다. 절반은 먹고 절반은 뱉어내지만 그게 어딘가 싶었다. 점심까지 무사히 먹고 환기를 시키고자 창문을 열고 있던 내게 아빠가 대뜸
“고운아 우리 천장에 수건을 좀 널어볼까?”했다.
“왜?”
“병실이 너무 건조해서 코도 아파”
그 소리에 나는 집에서 챙겨 온 수건이란 수건은 모조리 적셔서 수건을 널 만한 곳이라면 가리지 않고 수건을 널었다. 그렇게 무아지경으로 걸고 보니 아빠가 수건에 파묻힌 사람처럼 보였다.
“아빠 이건 좀 아닌가...?”
“가만히 내 작품을 보던 아빠는 조심스럽게
”몇 개만 뺄까...? “ 했다.
그렇게 빠른 수긍과 함께 절반의 수건이 철수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밥도 물도 넘기기 시작한 아빠의 모습에 기분이 좋았더랬다.
아빠가 호전되고 있다는 징조 같았다. 이제 점점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희망이 생겨났을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