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기둥

나는 충분하게 괜찮다

by 내사랑예봄아

작은할아버지 댁 앞에는 한탄강이 흘렀다. 방학이면 가끔 놀러 갔는데, 무더운 여름이면 수영도 못하면서 아이들을 따라 강가로 내려가곤 했다. 강가에 도착하자 아이들은 풍덩 물에 뛰어들어 신나게 헤엄쳤다.


나도 함께 놀고 싶어 조심스레 물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어느새 물이 목까지 차올랐고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럼에도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잠시 까치발을 들고 있으면 물이 가슴께까지 내려와 마음이 놓였다. 발끝을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하며 물속에 박힌 돌처럼 서 있었다. 그러다 그만 중심을 잃고 물살에 휩쓸렸다. 순식간에 여러 번 굴러 가까스로 바위에 걸려 멈춰 섰지만 여전히 물살이 세어 꼼짝할 수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덩치 큰 친척 아저씨가 거센 물살을 헤치고 와 나를 번쩍 안아 올렸다. 그 사건 이후, 물가에만 가도 긴장이 되었고 구명조끼와 튜브를 함께 착용해야만 안심하고 물놀이를 할 수 있었다.


몇 해 전, 직장 동료의 권유로 시에서 운영하는 수영장에 가게 되었다. 물에 발을 담그자 심장이 덜컥 내려앉고 등골이 오싹했다. 숨이 가빠오며 몸이 물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물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앞으로 계속 다닐 수 있을지 막막했다.


그만둘까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그냥 해보자’는 마음을 먹었다. 여기서 포기하면 앞으로 어떤 것도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수영의 기본인 ‘물 뜨기’는 도저히 되지 않아 마치 넘을 수 없는 커다란 벽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연습한 끝에 두 달여 만에 마침내 물 위에 뜰 수 있었다.


수영은 그 후에도 성공과 실패의 연속이었다. 기쁨과 좌절이 시소처럼 오갔다. 팔 동작이 잘 되지 않아 속상하던 어느 날, “그러면 그렇지, 잘하는 게 뭐가 있어.” 나도 모르게 입에서 툭하고 튀어 나왔다. 그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평생 나를 이렇게 대했다는 생각이 들자 눈물이 핑 돌았다.


지금도 일 년 중 절반쯤만 수영장에 다닌다. 트라우마는 많이 극복했지만 여전히 물 앞에 서면 긴장이 된다. 수영을 하다 중간쯤 멈춰 서 있으면 강사님의 퉁명스러운 말이 들려온다. “회원님, 왜 멈춰요? 빨리 가세요!”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물 위에 누워 눈을 감았다. 잠시 후 부드러운 물결이 온몸을 천천히 흔들었다. 뻣뻣했던 몸이 스르르 풀리면서 두근거리던 심장도 차분히 가라앉았다. 온전한 평온이었다. 시간이 그대로 멈추길 바라며 한참 동안 누워 있었다.


어린 시절 친구들 앞에서 돌처럼 서 있던 나는,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그 자리에서 멈춰 서 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끝까지 완주하는 날이 올 것이다.


설령 그렇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나는 바보야, 못해, 안 돼’라며 나를 억눌렀던 굴레는 이제 벗어 던졌으니,

이미 나는 충분히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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