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궁이

따뜻한 울타리

by 내사랑예봄아

지난 명절, 나는 영월의 깊은 숲속에 자리한 황토 펜션에 다녀왔다. 그곳에서는 손님이 원하면 아궁이에 직접 불을 땔 수 있었다. 나무 타는 냄새를 맡으며 어린 시절의 추억에 잠길 생각에 마음이 설렜다. 그런데 막상 불을 지피자 연기가 거의 나지 않았다. 남편이 참나무라서 그렇다고 했다.


내가 아쉬워하자 남편은 자리에서 일어나 나무 위에 쌓인 눈을 털어냈다. 그러더니 몇 그루 나무에서 모은 마른 낙엽 한 줌을 아궁이에 넣었다. 잠시 나무 타는 향기가 피어올랐지만, 양이 적어 반짝 하고 사라졌다.


나무 타는 냄새를 그리워하는 마음 끝에는 먼 친척 집 아궁이 앞에서 불을 때던 어린 내가 있다. 아빠는 방학이면 종종 나를 그 먼 친척 집에 맡기곤 했다.


그 집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손자 손녀가 함께 살았다. 또래인 손녀와 함께 잠도 자며 잘 지냈지만 객식구라는 마음 때문인지 이른 아침부터 눈이 번쩍 떠지곤 했다.


일찍 일어나 마루에 앉아 있으면 할머니는 부지런하다고 칭찬해 주셨다. 그럴 때면 괜히 으쓱해져 할머니 곁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곤 했다. 청소나 잔심부름을 하다 보면 그 집의 한 식구가 된 듯 어색하던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가끔 할머니께 아궁이에 불을 때고 싶다고 하면 방법만 알려주시고는 다른 일을 하셨다. 뭐든 잘해내고 싶던 열두 살 나는 손이나 무릎으로 나뭇가지를 반씩 쪼개 마른 낙엽과 함께 아궁이에 넣었다. 불이 활활 타오르면 매캐한 연기가 코를 찌르고 눈이 맵고 목이 따가웠다. 눈물과 콧물이 줄줄 흘렀지만 옷소매로 닦으며 끝까지 아궁이 앞을 지키려 애썼다. 그러나 도저히 참기 힘들면 밖으로 뛰쳐나갔다.

어느 날 마당으로 나와 콜록거리며 숨을 고르자, 부엌에서부터 마당까지 집 안이 온통 연기로 가득했다. 마치 호수 위에 피어오른 물안개처럼 아련하고 신비로웠다. 멍하니 서 있다가 문득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할머니는 저녁 준비로 분주했고 할아버지는 집 안일로 바빴다.


두 분을 바라보는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평안함이 밀려왔다. 따뜻한 샘물이 천천히 흐르는 듯했다. 하지만 그 낯선 안정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개학 후 집으로 돌아가면 나는 다시 혼자였다.


남편이 모아온 바짝 마른 낙엽이 순식간에 타버리자 추억 속으로 들어가고 싶던 나의 바람도 짧은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 같았다. 나는 희뿌연 연기로 가득한 아궁이 앞에 털썩 주저앉아 위태로운 울타리 속에서 살아야 했던 어린 나를 애도하고 싶었다. 그 시절의 환경을 다시 느껴보면 그때의 나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글을 쓰며 그때 미처 보지 못했던 울타리가 보였다. 눈치 한번 주지 않고 잔잔한 미소로 나를 대해주셨던 할머니, 무뚝뚝하지만 조용히 지켜봐 주시던 할아버지, 한 사람이 눕기에도 비좁은 방을 아무 말 없이 내어준 또래 친척까지 모두가 내게는 따뜻한 울타리였던 것이다.


결혼하기 전까지 나는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느끼지 못했을 뿐, 삶의 곳곳에 수많은 울타리가 나를 지켜주고 있던 것이었다.


매운 연기를 참아가며 사랑받고 싶어 했고

다른 집의 따뜻한 울타리를 그저 부러워만 했던 나에게

이제는 말해주고 싶다.


"실은, 너 사랑 많이 받았어.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너를 감싸준 따뜻한 울타리가 얼마나 많았는지 아니?

너 혼자 힘으로 살아낸 게 아니라 보이든 보이지 않든 수많은 울타리가 널 지켜준 거야.

그러니까, 너는 모두가 함께 지켜낸 아이야. 지금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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