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축하해. 어른이 된 너에게.

by 후기록

이사(1993)


한 아이의 잔소리로 시작되는 시퀀스. 비대칭적인 삼각형 식탁에서 밥을 먹는 이 가족의 모습은 어딘가 생소하다. 똑 부러지게 말하는 아이, 유야무야 대충 듣고 넘겨버리는 아빠, 이야기가 하기 싫은 듯 조용한 엄마. 이 상황 속에서 아이가 보여주는 ‘어른이 할 법한 행동’은, 역시 기묘하다. 마치 아이와 어른의 입장이 뒤바뀐 것처럼.


<이사>는 1993년에 개봉한 소마이 신지 감독의 영화다. 그의 수많은 작품 중에서도 특히 높은 평가를 받아 2023년, 업스케일링 리마스터 작업을 거쳐 한국에 재개봉되었다. 나와 같은 해에 태어난 이 오래된 영화가 지금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싶지만, 어쩌면 지금이기에 오히려 더 가치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제목인 〈이사〉는 일종의 메타포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영화의 중심 소재는 ‘이혼’이다. 단순한 별거나 각방이 아닌, 법적인 근거를 통한 완전한 관계의 단절. 그리고 그 사이에 주인공 ‘렌’이 있다. 우리가 시선을 따라가야 할 인물이 어린아이라는 점에서, ‘이사’라는 아주 얇은 장막의 메타포는 마치 ‘어린아이에게 이혼을 에둘러 표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렌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그런 어린이가 아니다. 아니, 어쩌면 거의 모든 어린이들이 그럴 것이다. 집안에 어른이 없으면 아이는 스스로 어른이 되려 한다. ‘어른스러운’ 아이는 그냥 자라지 않는다. 어른의 빈자리는 분명 누군가가 채워야 하니까. 세 명의 가족이라면 삼각형 테이블처럼, 각 꼭짓점을 붙들고 서 있어야 무너지지 않는 형태일 테니 말이다.


렌은 영화 내내 지독하게 뛴다. ‘달린다’는 것은 어린이이기 때문에, 어린이만이 할 수 있는 노력의 형태다. 그렇기에 이 ‘노력’의 메타포에는 실패가 없다. 그래서 넘어지는 장면도 없다. 넘어지지 않는 그녀의 그 달림의 끝에는 언제나 ‘어른들의 모습’이 있다. 한 사람이라는 독립적인 위치를 차치하더라도, 결국 렌은 어린이이기에 그 삶의 부족한 경험을 채우기 위해 ‘보고’ 배운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이들은 언제나 보고 있다. 그렇기에 한편으로는 모든 걸 알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렌은 그래서인지, 가장 아이다운 행동인 ‘울음’을 허락받지 못한다. 작중 그녀의 눈물이 보이는 장면은 고작 두 번뿐이다. 알코올램프를 던졌을 때와, 화장실에서 농성했을 때. 하지만 이 행동들은 전부 파국으로 이어진다. 두 번 모두, 그녀가 ‘아이다운’ 행동을 했던 순간에 렌은 자신을 표출하는 데 좌절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도 심지어 그 눈물이 ‘흐르는’ 것조차 영화는 허용하지 않는다. 결국 렌은 참아내야 하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도, 가족의 상황도. 모두가 결국 참지 못해 서로를 떠나려 하는 와중에도, 이 가족이라는 울타리 내에서, 학교라는 제도 안에서, 이 모든 불친절함 속에서도.


그런 렌의 ‘어른이 되고 싶다’는 선언은 결국 일종의 ‘독립 선언’이다. 자신이 아직 어린이라서 가지는 한계, 부모들과 어른들, 또래 아이들과의 뜻이 다름. 그 모든 것과 일종의 거리를 두고 싶다는 독립 선언. 이 선언 이후 영화는, 현실이라면 아주 오랜 시간과 고통을 동반했을 경험을 장면들로 압축하여 표현한다. 불씨를 뒤집어쓴 인부들, 불타 무너지는 짚더미, 어두운 산속과 바다. 얼마나 영화적인 연출인가. 영화가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표현들이다.


불타는 집과 함께 한때 행복했던 가족의 모습도 떠나보내며, 홀로 남은 아이에게 ‘축하합니다’를 연신 외치는 렌의 모습은 나름의 해답을 내린 얼굴이다. 그녀의 손끝에서 흩뿌려지는 물장구가, 그녀의 눈물처럼 보이는 것은 단순한 메타포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녀가 흘렸어야 할 눈물들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에필로그에 들어서, 아이들이 뛰어나갈 때 렌은 잠시 고민하다 옆길로 ‘걸어간다.’ 렌은 더 이상 달리지 않는다. 그녀는 정말 모든 걸 받아들인 듯하다. 결별한 부모에게 안마와 꽃을 건네며, 자신이 혼란스러울 때 만난 이들을 포용하며, 그녀의 머리카락에 중학생다운 땋은 머리가 달리고, 그녀는 어른으로 한 걸음 나아간다. 렌에게 필요한 것은 칭찬도, 위로도 아닐 것이다. 으레 어떤 어른들이 그렇듯, 그저 ‘응원하고 싶어 지는’ 표정을 짓는다.


보호자들의 가장 큰 착각은 피보호자가 ‘어리석다’고 여기는 지점일 것이다. 이 영화에서 그 피보호자는 ‘아이’이고, 그 아이들은 모든 걸 알고 있다. 자신이 태어났기 때문에 깨어진 가족이라는 틀이 쉽게 멀어질 수 없다는 것, 새 가정을 꾸려놓고 새 가족들 몰래 자신을 부르는 일이 비겁하다는 것, 결혼이라는 제도는 애초에 갈등의 연속일 수 있다는 것. 아이는 안다. 하지만 렌의 말처럼, 아이는 ‘참을 뿐이다.’ 비슷한 상처를 가진 아이들은 서로를 알아볼 만큼 똑똑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어쩌면 생각을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게도 가족이라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설명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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