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공방과 포도농장 탐방기
작년 12월 초, 겨울치곤 제법 햇볕 따뜻한 날. 아침 일찍 서둘러 괴산으로 향하는 길에 올랐다. 고교 동창 금용조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친구가 운영하는 ‘다시봄 목공방’에서 하루를 보낼 생각에 마음이 설렜다. 하지만, 출발부터 순탄치 않았다.
대중교통 파업으로 복잡한 전철 안에서 지연된 시간에 쫓기다가 결국 예정된 버스를 놓쳤다. 안 그래도 늦었는데 전철에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다 역 하나를 지나친 실수도 한몫했다. 어쨌든 한 시간 늦게 출발한 9시 50분 괴산행 시외버스. 이 모든 난리통에도 마음 한구석엔 친구와 만날 기대가 가득했다.
12시쯤 괴산터미널에 도착하니, 용조와 다른 두 친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문경에서 샤인머스캣 농장을 하는 동희와 포항 구룡포에서 올라온 희창이.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에 웃음꽃이 만발했다. 괴산 읍내에서 삼겹살 정식을 나누며, 옛 추억과 근황을 주고받는 시간은 금세 지나갔다.
다시봄 목공방
읍내에서 조금 떨어진 다시봄 목공방은 작지만 아늑한 공간이었다. 용조는 정교한 손길로 나무를 다듬으며 살아왔다. “목공은 삶을 조각하는 일이야.” 그는 말했다. 목공방 구석구석에는 그의 철학이 녹아 있었다. 우린 그의 설명을 들으며 작업대를 둘러보고, 나무 결에 손끝을 스쳤다. 그곳에서 나무가 어떻게 단순한 소재를 넘어 사람과 사람을 잇는 가구가 되는지 직접 느낄 수 있었다.
세상을 다듬는 나무꾼
나무는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다. 우리가 태어날 때 흔들리는 나무 요람으로 시작해, 마지막 안식처로 돌아가는 관이 되어주는 존재. 하지만 목공이란 단순히 나무를 깎고 붙이는 기술을 넘어선다. 그것은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빚어내는 예술이자, 세상을 움직이는 혁신이었다. 설명을 하는 용조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친구들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열정이 가득했다.
1. 의자의 힘
의자 하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19세기 중반, 독일에서 등장한 토넷(Tonnet)의 곡목 의자는 그저 가벼운 카페 의자가 아니었다. 증기 기술로 나무를 구부리는 혁신적 기법은 대량생산의 새 시대를 열었다. 작은 카페에서부터 왕궁까지, 이 의자는 모든 공간을 채우며 전 세계인의 일상을 바꿨다. 의자 하나가 세상을 '편하게' 앉히며 산업의 패러다임까지 흔들었다.
2. 한 조각의 문을 통해
목공은 때로 역사의 흐름도 바꿔 놓는다. 1517년, 독일의 비텐베르크 교회 문에 마르틴 루터가 95개 조 반박문을 못질했던 순간을 상상해 보자. 튼튼한 목재로 만들어진 교회 문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새로운 사상이 퍼져나가는 시작점이었다. 만약 그 문이 강풍에 못 이겨 무너졌다면, 종교개혁은 어떻게 되었을까?
3. 마음을 잇는 탁자
목공의 진짜 마법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데 있다. 공방의 공구들을 이것저것 둘러보다 잠시 탁자에 둘러앉은 우릴 마주 보며 목수 친구는 말했다.
“탁자는 사람을 모으는 거야. 식사든 대화든, 여기서 삶이 움직이는 거지.”
그 말처럼 탁자는 단순한 가구가 아니다. 가족이 모여 식사를 나누고, 연인이 손을 잡고 미래를 이야기하며, 친구가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는 중심에 항상 탁자가 있었다.
4. 오늘을 다듬는 목공 장인
오늘날 목공은 단순한 수공예가 아니다. 재활용 나무로 만든 가구는 환경을 지키는 상징이 되었고, 장애인을 위한 맞춤 가구는 삶의 질을 높이는 도구로 자리 잡았다. 전통 기법을 이어가는 장인이 있는가 하면, 3D 프린터로 나무를 다루는 현대적 목수들도 있다. 목공은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미래로 우리를 잇는다.
나무는 변한다. 씨앗으로 시작해 나무가 되고, 목재가 되어 우리의 손에 닿는다. 그리고 목공은 그 변화를 아름답게 빚어낸다. 의자, 문, 탁자, 집, 심지어 예술 작품까지. 한 그루의 나무가 삶을 바꾸고, 한 목공 장인의 손길이 세상을 바꾼다.
바로 내 친구 이야기다. 그는 대한민국의 청정마을 괴산에서 다시봄 목공방을 열고 오늘도 나무꾼의 철학을 다듬어 가고 있다.
목공 친구의 열강이 끝날 무렵, 희창이가 포항에서 가져온 과메기를 내놓으며 한마디 했다. “목공도 좋지만, 이럴 땐 낮술 한잔 해야지.” 과메기를 안주 삼아 나눈 낮술은 목공방의 한나절에 깊은 여운을 더해 주었다. 나무와 친구, 그리고 따뜻한 대화 속에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문경, 샤인머스캣 농장
해가 기울 무렵, 우린 동희의 농장이 있는 문경으로 향했다. 그곳은 포도와 고추, 그리고 사과대추가 주렁주렁 달린 작은 낙원이자, 동희의 땀과 열정이 담긴 공간이었다. 비닐하우스 옆 농막에 앉아 차 한잔을 나누며,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농사는 기다림의 예술이야,” 그는 말했다. 샤인머스캣이 열리기까지 최소 2년. 매일같이 손길을 더하고 자연과 끊임없이 대화해야 한다는 그의 말에는 땅과의 동행에서 오는 깊은 철학이 담겨 있었다. 그는 단순히 농작물을 키우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샤인머스캣을 “작은 행복의 묶음”이라 부르며, 자연과 인간을 연결하려는 그의 마음은 우리를 감동시켰다.
세상과 맞서는 농사꾼
한 송이의 샤인머스캣, 한 알의 사과대추를 손에 넣기까지 농부는 얼마나 많은 싸움을 치러야 하는가? 시간과 체력, 대지와 비, 바람, 그리고 서리에 맞서는 싸움. 그러나 그 싸움 끝에는 땅이 주는 위대한 선물, 자연이 주는 보답이 있다. 대한민국 문경에는 그 고단한 싸움을 삶의 낙으로 바꿀 줄 아는 시인 같은 농부가 있다. 바로 내 친구 이야기다.
어린 시절부터 흙냄새를 맡으며 자랐다. 아버지가 키우던 감나무 밑에서 놀던 그는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과 여름날 내리치는 소낙비를 똑같이 사랑했다. 그러나 농사일이 낭만적이지만은 않다는 걸 깨달은 건 그가 오랜 직장을 퇴임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귀농한 지 일 년 반, 그동안 씨를 뿌리고 묘목을 심고 새순을 가지치기하며 끊임없이 손길을 쏟았다. 여름에는 폭염과 싸우고 겨울에는 서리와 싸우며 한 걸음씩 나아갔다. 그런 과정을 견디며도 그는 웃으며 말한다.
“포도 한 송이도 시를 써야 나오는 거야. 비가 시인이 되고, 내가 시인이 되고, 땅도 시인이 돼야 해.”
단순히 농사를 짓는 데 그치지 않는다. 포도 알마다 웃음꽃이 피기를 바란다는 마음으로, 매년 소비자와 직접 만나는 자리를 꿈꾼다. 문경의 한적한 농로 양쪽, 그의 농장에서 매년 “포도 축제”가 열리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사람들은 그의 손길이 깃든 포도를 맛보며 자연과 연결되는 순간을 경험할 것이다. 아이들은 밭을 뛰어다니고, 어른들은 푸근한 햇살 아래에서 흙 내음을 맡는다.
그는 사과대추라는 생소한 과일에도 도전하고 있다. “대추는 왜 작아야만 할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이 특별한 대추는 크기가 사과만 하고 당도가 높아 한 번 맛본 사람은 절대 잊을 수 없다. 그런데 이 작물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기온, 습도, 토양 상태가 조금만 틀어져도 작황이 나빠졌다. 실패가 거듭되었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국내 최초로 유기농 사과대추 인증에 도전하고 있다. 조만간 그의 대추는 문경의 대표 특산물이 될 것이다.
“농사는 세상을 바꾸는 일이야.” 그의 말이다.
농부는 땅을 가꾸고, 작물을 키워내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그는 지역 농부들과 협동조합을 만들어 농산물 가공 사업에도 도전할 생각이다. 이 과정에서 농촌의 일자리도 늘어나고, 도시 소비자와 농촌 생산자가 직접 연결되는 새로운 유통 구조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그는 농부이자 시인이자, 세상을 바꾸는 혁신가이다.
친구의 이야기는 특별하지만, 동시에 우리 주변의 모든 농부에게도 연결된다. 그들은 모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세상을 바꾸는 작은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우리가 먹는 과일과 야채들이 그 증거다.
샤인머스캣 한 송이를 들고서 그 빛나는 포도알을 바라볼 때, 한번 상상해 보자. 그것이 세상과 맞선 농부의 노래와 같다는 것을. 그리고 그 노래가 우리의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드는지를.
내 친구와 문경의 농부들이 그렇듯, 농사는 단순히 땅을 가꾸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기다림이고, 인내며, 마침내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 지금 당신 손에 들린 과일 한 알과 고추 한 톨에도 그들의 숨결이 담겨 있다는 것을 떠올려 보라.
용조는 나무를 다듬으며, 동희는 땅을 가꾸며, 각자의 자리에서 세상을 조금씩 바꾸고 있었다. 그들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목공예품과 농작물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삶의 철학이자 예술이었다.
그날 밤, 우리는 문경의 조용한 농장에서 포도밭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무의 결에서 시작된 하루가 대지의 숨결로 끝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