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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풀 Sep 23. 2023

산 넘어 산이었던 미국 집 매매 잔금 처리 과정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니다


일주일 간의 오퍼를 조율하는 시간이 끝나고 약 2주 뒤,  *클로징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클로징(closing)이란?
매도인과 매수인이 계약서에 동의한 날에 같은 장소에 모여 서로 간의 조건 등을 최종적으로 협의 내리고 거래계약을 체결하는 것을 의미한다.



클로징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드디어 내 집 마련이라니!’라는 기대감보다는 ‘이게 될까?’라는 의문이 마음 한켠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인생에서 나름의 중대한 결정의 순간들 마다, 매번 내 뜻과는 정반대로 일이 흘러갔던 적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축적된 시간들이 나에게 무의식적으로 방어 심리를 작동시킨달까. 이러한 마음의 준비는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을 때 꽤 도움이 되는데, 기대 심리가 없어서 그 상황을 조금 차분히 맞이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고대하고 고대하던 은행으로부터의 최종적인 대출 승인을 클로징 딱 일주일 전에 받았다. 이제 나한테 남은 일은 클로징(closing) 전에 타이틀 보험 회사로 잔금을 전신 송금하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문제가 생겼다



대출 승인을 받기 전, 분산된 현금을 한 곳으로 모으기 위해 당시 예금 금리가 높았던 은행 A에 있는 돈을 은행 B 계좌로 이체 신청을 했다. 그러나 문제는 은행 시스템에서 계좌 이체 진척이 거북이 걸음걸이 수준으로 느리다는 것이었다. 클로징 날까지는 4일 남았는데 계속 ‘Processing(진행 중)’이라는 상태만 뜨니 심장이 벌렁벌렁, 두근두근.



© mike_van_den_bos, 출처 Unsplash



‘클로징 날까지 잔금 처리를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부터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까지 자연스레 상상하게 됐다. 넷플릭스 인기 드라마 시리즈 중 하나였던 ‘애나 만들기’의 실제 주인공인 애나가 어떻게 ‘느린 계좌 이체’를 핑계로 금융 사기를 칠 수 있었는지 십분 이해가 됐었던 순간이었다.



다행히 클로징 3일 전 늦은 오후, 계좌 이체가 완료 됐다는 상태가 떴다.


곧바로 타이틀 보험 회사에서 알려준 지시내용으로 모든 잔금을 다 보냈다. 2년 반 동안 생활비를 아끼고 하루에 $10 쓰기를 실천하며 모아 왔던 돈이 클릭 한 번에 없어지니 허탈하기도 하고 기분이 오묘해졌다. 사회 초년생으로서 열심히 모은 이 소중한 돈을 이렇게 다 쏟아부어도 되는 걸까. 괜히 ‘내 집 마련’ 열풍에 휩쓸린 섣부른 선택은 아닐까. 아님 이 돈으로 주식에 투자를 했어야 하려나.



그러나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 와서 뭘 어쩌겠어. 조금 더 이 오묘한 기분에 제대로 된 정의를 내리고 싶었지만 얼른 남은 임무를 완수해야 했다.



부동산 중개인과 변호사에게 방금 잔금을 다 보냈다는 내용과 클로징(closing) 날 어떻게 진행되고 무엇을 언제까지 들고 가면 되는지 확인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약 한 시간 뒤, 변호사와 부동산 중개인 분에게 답장이 왔다. 변호사 분은 직접 가면 출장비가 붙기에 줌(zoom)으로 함께 참여할 것이라는 내용과 함께 집주인 분은 클로징날 아예 참여를 안 한다는 설명을 덧붙여주셨다. 그 날은 나만 최종적인 서류 검토와 모든 내용에 동의하는 서명을 하면 된다고 했다.



모두가 다 같이 모이는 자리인 줄 알았기에 살짝 김이 샜지만 다행히 부동산 중개인 분은 클로징 날 타이틀 회사에 함께 방문할 거라는 답장을 보내줬다. 그리고 타이틀 보험 회사로 가기 전 매수하기로 한 집을 나와 한 번 더 들려, 집의 상태가 우리가 마지막으로 본 것과 같은지 등의 사항들을 점검하기로 했다.






이제 정말 최종 관문만을 남기고 있었다. 지난 3주간의 시간이 마치 3개월은 지난 것처럼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내 집 마련’은 마치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아지랑이와 같은 버킷 리스트였다. 그래서 그 일이 막상 내 눈앞에 점점 다가오니, 현실처럼 안 느껴졌다.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는 가상공간 안에 있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잔금처리' 라는 또 다른 고비를 넘기며 클로징까지 남은 이틀을 위해 오랜만에 잠을 푹 잘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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