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니다
일주일 간의 오퍼를 조율하는 시간이 끝나고 약 2주 뒤, *클로징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클로징(closing)이란?
매도인과 매수인이 계약서에 동의한 날에 같은 장소에 모여 서로 간의 조건 등을 최종적으로 협의 내리고 거래계약을 체결하는 것을 의미한다.
클로징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드디어 내 집 마련이라니!’라는 기대감보다는 ‘이게 될까?’라는 의문이 마음 한켠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인생에서 나름의 중대한 결정의 순간들 마다, 매번 내 뜻과는 정반대로 일이 흘러갔던 적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축적된 시간들이 나에게 무의식적으로 방어 심리를 작동시킨달까. 이러한 마음의 준비는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을 때 꽤 도움이 되는데, 기대 심리가 없어서 그 상황을 조금 차분히 맞이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고대하고 고대하던 은행으로부터의 최종적인 대출 승인을 클로징 딱 일주일 전에 받았다. 이제 나한테 남은 일은 클로징(closing) 전에 타이틀 보험 회사로 잔금을 전신 송금하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문제가 생겼다
대출 승인을 받기 전, 분산된 현금을 한 곳으로 모으기 위해 당시 예금 금리가 높았던 은행 A에 있는 돈을 은행 B 계좌로 이체 신청을 했다. 그러나 문제는 은행 시스템에서 계좌 이체 진척이 거북이 걸음걸이 수준으로 느리다는 것이었다. 클로징 날까지는 4일 남았는데 계속 ‘Processing(진행 중)’이라는 상태만 뜨니 심장이 벌렁벌렁, 두근두근.
‘클로징 날까지 잔금 처리를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부터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까지 자연스레 상상하게 됐다. 넷플릭스 인기 드라마 시리즈 중 하나였던 ‘애나 만들기’의 실제 주인공인 애나가 어떻게 ‘느린 계좌 이체’를 핑계로 금융 사기를 칠 수 있었는지 십분 이해가 됐었던 순간이었다.
곧바로 타이틀 보험 회사에서 알려준 지시내용으로 모든 잔금을 다 보냈다. 2년 반 동안 생활비를 아끼고 하루에 $10 쓰기를 실천하며 모아 왔던 돈이 클릭 한 번에 없어지니 허탈하기도 하고 기분이 오묘해졌다. 사회 초년생으로서 열심히 모은 이 소중한 돈을 이렇게 다 쏟아부어도 되는 걸까. 괜히 ‘내 집 마련’ 열풍에 휩쓸린 섣부른 선택은 아닐까. 아님 이 돈으로 주식에 투자를 했어야 하려나.
그러나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 와서 뭘 어쩌겠어. 조금 더 이 오묘한 기분에 제대로 된 정의를 내리고 싶었지만 얼른 남은 임무를 완수해야 했다.
부동산 중개인과 변호사에게 방금 잔금을 다 보냈다는 내용과 클로징(closing) 날 어떻게 진행되고 무엇을 언제까지 들고 가면 되는지 확인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약 한 시간 뒤, 변호사와 부동산 중개인 분에게 답장이 왔다. 변호사 분은 직접 가면 출장비가 붙기에 줌(zoom)으로 함께 참여할 것이라는 내용과 함께 집주인 분은 클로징날 아예 참여를 안 한다는 설명을 덧붙여주셨다. 그 날은 나만 최종적인 서류 검토와 모든 내용에 동의하는 서명을 하면 된다고 했다.
모두가 다 같이 모이는 자리인 줄 알았기에 살짝 김이 샜지만 다행히 부동산 중개인 분은 클로징 날 타이틀 회사에 함께 방문할 거라는 답장을 보내줬다. 그리고 타이틀 보험 회사로 가기 전 매수하기로 한 집을 나와 한 번 더 들려, 집의 상태가 우리가 마지막으로 본 것과 같은지 등의 사항들을 점검하기로 했다.
이제 정말 최종 관문만을 남기고 있었다. 지난 3주간의 시간이 마치 3개월은 지난 것처럼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내 집 마련’은 마치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아지랑이와 같은 버킷 리스트였다. 그래서 그 일이 막상 내 눈앞에 점점 다가오니, 현실처럼 안 느껴졌다.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는 가상공간 안에 있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잔금처리' 라는 또 다른 고비를 넘기며 클로징까지 남은 이틀을 위해 오랜만에 잠을 푹 잘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