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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풀 Sep 24. 2023

마지막 결전의 날: 클로징(Closing)

제 이름은 미들네임(middle name)이 없는데

매미 울음소리가 가득한 한 여름의 어느 날,

드디어 클로징이 다가왔다.



큰 일을 앞둔 것 치고는 잠을 너무 푹 잤다.


오전 10시 반에 부동산 중개인 분과 함께 final walkthrough로 집을 다시 한번 보러 가기로 했는데 시계를 보니 시침이 벌써 9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다행히 회사에는 그전 주에 개인적인 일정으로 휴가를 내놨다. 살짝 잠이 덜 깬 상태로 화장실로 가 물을 틀었다. 샤워를 하면서 오늘 챙겨야 될 목록과 해야 될 일들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부동산 중개인 분과 만나기로 한 시각을 10분 앞두고 아파트 로비에 도착했다. 늦게 일어난 것에 비해 비교적 빨리 도착했다. 오늘 우리가 아파트 안에 들린 이유는 집 상태가 그전에 마지막으로 봤을 때와 같이 별다른 문제가 없는지 재확인하기 위해서였다.



2주 만에 들린 아파트는
저번과 같이 밝은 햇살로
나를 맞아줬다.



내가 사기로 한 아파트는 방 1개, 화장실 1개인 곳이었기 때문에 큰 시간을 들여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10분 정도 대략적인 확인을 끝내고 부동산 중개인 분의 차로 타이틀 보험회사에 도착했다.



월요일 오전이어서 그런 건지 타이틀 보험회사는 비교적 조용했다. 이어 직원분을 통해 빈 사무실로 인도받았다. 가방에서 주섬주섬 노트북을 꺼내고 인터넷을 연결시켜 변호사 분이 이전에 이메일로 보내준 줌(zoom) 링크를 열었다. 그 사이에 타이틀 회사 직원 분은 변호사가 이메일로 보낸 최종 서류를 다 출력해서 들고 오셨다. 들고 온 서류를 책상에 올려놓으니 두께가 거의 책 한 권과 맞먹는 분량이었다.




오늘 변호사 분이 나와 함께 하는 일은 그 모든 서류의 내용들에 대한 간략적인 설명과 내가 그것에 동의를 하는지, 동의를 한다면 어디에 서명을 하면 되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원래는 그전에 나와 같이 이메일로 주고받던 다른 변호사 분이 마지막 과정까지 함께 하는 거였으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자리를 비우게 되면서 동료 변호사 분에게 이 일을 맡겼다.



그래서 처음 보는 미국 변호사와 줌으로 설명을 들으며 서류 하나하나에 사인해 나가기로 했다. 우리가 특별히 중점적으로 본 것은 재산세(Property tax )였다. 아직 올해 재산세 내는 기간이 안 되어서 셀러(seller) 쪽에서 자신들이 산 기간 동안 지불해야 되는 재산세를 우리에게 얼마나 줘야 되는지 그 자리에서 다시 한번 확인했다(내가 책임지고 이 돈으로 나중에 올해 재산세를 내야 했다).



자, 이제 여기까지 들으면 비교적 일이 순탄하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너무 순조로우면 재미없지 않은가? 또 하나의 문제가 발생했다.


바로 서류에 내 이름을 서명하는 것에서였다.


처음 미국 유학을 위해 여권을 갱신할 때, 나는 내 이름 사이에 한 칸을 띄우고 적어냈었다(지금 생각하면 왜 이렇게 한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예를 들어 내 이름이 홍길동이라면, 성을 뺀 이름(first name)을 적어 내릴 때 '길’과 ‘동’ 사이에 한 칸을 띄어 ‘길 동’ 이 된 셈이다. 한국이었다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는 이 한 칸의 차이가, 미국에서는 미들네임(middle name)의 여부로 인식됐다. 그 이후부터 대학교와 미국 회사에서 이메일을 받을 때 많은 사람들이 내 이름을 ‘Dear 길’로 불렀다. 즉, 그들 눈에는 ‘동’이 미들네임(middle name)으로 보이게 된 것이었다.



그렇기에 내 이름이 ‘홍길동(Gildong Hong)’이라면 서명을 ‘GH’로 해야 되는 것을, 이름 사이에 한 칸이 존재하면서 GDH로 서명을 할 수밖에 없게 됐다.


사실 이게 크나큰 사안은 아닐 수 있지만 혹시나 나중에 문제가 될까 싶어 그동안 은행 대출과 관련해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던 은행 대출 상담사 분께 긴급히 전화를 드렸다.


총 4번의 전화에도 전화를 받지 않다가 마지막 시도로 함께 온 부동산 중개인 분이 전화를 하셨는데 다행히 연락이 닿았다. 그러나 바로 확답을 받지 못하고 자신이 다시 확인해 보고 전화를 준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30분을 기다렸지만 연락이 없었다. 그동안 변호사 분도 줌을 통한 설명이 끝나서 이제 서류에 서명을 하는 일만 남아있는 상태였다.



계속해서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타이틀 보험 회사에 있은지 2시간이 훌쩍 지났고 부동산 중개인분과 타이틀 회사 직원분이 크게 문제 될 것 같진 않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GDH와 같은 형태로 서명을 시작했다.



서명을 한 20번 정도 했나?



드디어 두꺼웠던 서류들이 한쪽으로 치워지고 타이틀 보험회사 직원분이 사인했던 서류 사본을 돌려줬다. 최종적으로  열쇠를 넘겨받고 ‘집 사기’라는 긴 과정이 끝났다. 벌써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는데 오늘 먹은 건 라테 한 잔. 긴장이 풀리니 갑자기 허기짐이 몰려왔다. 일단 뭐부터 먹어야지,라는 생각으로 노트북을 주섬주섬 다시 가방에 집어넣는데 부동산 중개인 분이 나에게 갑자기 은밀한 고갯짓을 하신다. '뭐지?' 하고 보니, 타이틀 보험 회사 저 귀퉁이에 있는 #wejustboughtahouse라는 판을 들고 인증 사진을 하나 남겨줄 수 있냐는 것이었다. 아마 영업 홍보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던 것 같은데, 그동안 부동산 중개인분이 나의 자잘 자잘한 질문들을 인내심 있게 받아줬던 것이 감사해 흔쾌히 오케이라고 했다.



옆에는 함께 그 자리에 있어준 남자친구


판을 들고 사진까지 찍으니 이제야 비로소 실감이 났다. 부동산 중개인 분과 헤어지기 전 악수를 하며 그동안 너무 고마웠다는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좌충우돌 집 사기의 여정이 드디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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