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과정에서 얻은 값진 교훈들
대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나를 돌아볼 여유를 가지며 버킷리스트를 작성했었다. ‘내 집 마련’의 목록도 이때 추가 된 것이었는데 사실 언제까지 이루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진 적은 없었다. 고작 네 글자의 저 단어가, 언제나 나에게는 현실성 없는 외계어 같았다.
그러나 계속 적으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아니면 요즘 미디어에 많이 나오는
끌어당김의 법칙이
나한테도 이루어진 것일까.
사실 그렇게 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 집 구매 과정이었다. 집을 사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어른의 일’처럼 느껴졌다. ‘다 큰 성인이 무슨 ‘어른의 일’ 이냐-'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를 돌아볼 때면 항상 몸만 큰 어린이 같다.
그래서 이번에 집을 구매하는 과정 동안에도 여러 가지 압박감으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일이 제대로 안 돌아갈 때면 패닉이 오기도 했다. 원래부터 집을 바로 구매할 마음을 가진 것도 아니었기에, 당장 주위에 조언을 구할 곳도 없었다. 오직 나와 부동산 중개인, 변호사분, 대출 상담사, 그리고 내 곁에 있어준 남자친구가 전부였다 (이렇게 적고 보니 또 많은 것 같기도 하다. 네 분의 어벤저스 팀이 함께 해줘서 첫 집 구매 과정을 수월하게 마칠 수 있었다. 특히 나와 함께 오퍼를 넣는 것부터, 계약서에 추가 조항을 넣어야 할 때 옆에서 함께 꼼꼼히 검토해 준 남자친구에게 너무 고맙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3주간의 집 매수 과정과, 내 집 마련을 위해 종잣돈을 열심히 모은 직장인 생활 2년 반간의 생활을 돌아보며 그동안 느꼈던 단편적인 감정과 생각들을 정리해보려 한다.
이번에 사게 된 첫 집은 원래 이전에 대출 승인만 남기고 모든 과정이 끝난 집이었다. 그러나 이전에 사려고 했던 분이 대출 승인을 못 받으면서 다시 마켓에 올려졌었다. 내가 봤던 zillow 부동산 앱에서도 다시 올려진지 약 3일밖에 안 된 집이었고, 하필 다음 아파트 렌트를 구하고 있는 나의 레이더망에 우연히 걸리게 된 것이었다. 지금도 가끔 zillow 앱에 들어가 다른 매물들을 보고 있지만 3달이 지난 아직까지도 여기만큼 내 예산과 기준을 다 충족시키는 아파트 후보지는 보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이 모든 과정을 멀리에서나마 묵묵히 응원해 준 부모님이 계셔서 가능했다. 때때로 아파트 매수를 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블로그 포스팅을 통해 접하면, 부모님이 오히려 반대하고 만류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았다. 그러나 우리 부모님은 오히려 본인들이 나에게 경제적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에 미안해하실 뿐, 내가 하고자 하는 일과 나의 결정을 충분히 지지하고 응원해 주셨다 (사실 이미 비싼 대학 등록금을 대주시는 것만으로도 부모님은 나에게 정말 많은 것을 해 주셨는데). 만약 부모님이 나에게 “지금 그렇게 서두르는 건 섣부른 선택 아닐까?” 라든가 조금의 반대 의사를 내비치셨으면 내가 이렇게 불도저처럼 일을 밀어붙이진 못했을 것 같다.
또한 내 곁에서 제일 큰 힘을 준 남자친구. 남자친구 없이 이 모든 과정을 수월하게 끝낼 수 있었을까. 처음 오퍼를 넣을 때도 곁에서 나와 함께 잘 모르는 부동산 법률 용어들과 몇 번을 읽어도 이해되지 않는 영어 문장들을 함께 읽고 내가 이해 안 되는 부분을 설명도 해주며 심적으로 정신적으로 큰 도움을 줬었다. 부동산 임장을 갈 때도 같이 가줬고 그 밖에 때때로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대출 승인 상담사와 계속 문자로 커뮤니케이션하며 일명 ‘멘붕’이 올 때도 언제나 소나무처럼 변함없이, 흔들림 없는 모습으로 나의 정신을 잘 붙들어줬었다.( 남자친구에게 고마운 점과 칭찬은 앞으로도 A4 종이 2장은 꽉 채울 것 같지만 영화 수상소감도 아니니 여기에서 멈추겠다)
그리고 이전에 칫챗을 나눴던 부동산 중개인 분도 너무 잘 만났다. 사실 처음 집을 사는 것이어서 부동산 중개인이 얼마나 중요한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래서 처음에 zillow를 통해 request a tour를 했고 그 리퀘스트에 바로 연락을 주신 분이 이번 부동산 중개인 분이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원래는 부동산 중개인도 여러 명을 보며 나와 잘 맞는 분을 고른다고 한다. 나는 단순하게 바로 연락 주신 분과 했는데 그분이 내 모든 부동산 질문 A부터 Z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세심하게 다 대답해 주셨다.
마지막으로 대출 승인이 비교적 빨리 나왔다. 나중에 집 구매 과정을 다 끝내고 다른 사례들을 읽었는데 (원래는 집 구매 전에 읽었어야 됐는데 앞뒤가 바뀌었다) 대출 승인이 제때 나오지 않아 골머리를 앓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경우, 이미 마켓에 나온 집 시세가 집 구매 가격보다 높아서 감정 과정(appraisal)을 건너뛰고 바로 대출 승인 과정으로 넘어가 제 때 클로징을 할 수 있게 됐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주위에 있던 좋은 분들과 부모님의 지지로 비교적 순탄하게 집 구매과정을 마칠 수 있었다.
그동안 나는 지금의 커리어를 잘 다져나가며 언젠가는 나의 사업을 하길 원했다. 그러나 몇 년간 모아 온 돈을 날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머리가 하얘졌다. 대출 승인이 제 때 나오지 않고, attorney review period 안에 home inspection과 변호사를 구해 모든 counter offer를 내야 되는 상황에서는, 차분해지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변하곤 했다.
이런 내 모습을 나중에야 제삼자의 눈으로 다시 돌아보니, 여전히 내가 얼마나 미숙한 사람인지 보게 됐다. 사업을 하려면 더 큰돈을 가지고 얘기를 해야 하는데 지금 이런 일에 이리저리 휩쓸리면 내가 나중에 그 상황에서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
한편으로는 감사하기도 했다. 조금 더 일찍 이런 경험을 했으니, 다음번에는 더 큰 압박감 속에서도 그전보다 더 잘 버텨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생겼다. 그래서 앞으로 이런 나의 부족한 부분을, 코딩 인터뷰를 통해서든 다른 압박 면접이나 상황을 통해서든 더욱 단련시켜야 되겠다는 작은 소목표가 생겼다.
그동안 미국 부동산 집 구매 과정 내용을 아주 찔끔찔끔 읽어봐서 사실 집을 실제로 구매하는 동안 새롭게 알게 된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어떤 결과가 있을지 미리 고민 안 하고 저지른 내 몫도 크지만, 일단 저지르고 보니 그때마다 필요한 정보들을 더 속도감 있게 제대로 흡수하게 됐다. 사실 그전에 관련 책을 읽을 때는 읽어도 ‘그런가 보다-‘ 하고 크게 와닿지 않았는데, 당장 지금 이 내용이 나에게 몇 천 불을 아낄 수 있는 정보라는 생각이 드니 눈에 불을 켜고 보게 된 것도 있다.
가끔은 들인 노력에 비해 가시적인 성과가 보이지 않아 방향성에 고민할 때가 있다.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다시 새롭게 방향을 설정해야 하는 건지. 그러나 많은 책에서도 얘기하고 또 이번 시간을 통해서 더 절실히 깨달은 것은, 결과가 어떻든지 간에 일단 하고 보자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무엇이든 내가 배우게 되는 것이 있기에.
그러니 앞으로도 내가 하고 싶고 하려는 모든 일들에 대해 적어도 300번의 시도는 해보려 한다.
나는 남에게는 관대한 편이나 스스로에게는 꽤나 엄격한 기준을 들이미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의 어떤 해프닝에 대해서는 ‘그럴 수도 있지’가 되어도, 나에게 있어서만큼은 그런 게 잘 적용되지 않았다.
그래서 성인이 되고 나서는 부모님의 괜찮다는 말에도 불구하고 대학 졸업 후에 어떻게 해서든 나 혼자의 밥벌이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박처럼 나를 옥죄일 때가 있었다. 개발자로 취직에 성공하고 나서도 종잣돈을 모으겠다며 하루에 $10 쓰기를 실천하려 매일 내가 무얼 사고 어디에서 아껴야 되는지 셈을 하곤 했다. 코로나가 터졌을 때 아무도 모르는 타 주(State)로 이사를 하고 주차비와 기타 차 유지비를 아끼려 차 없는 생활을 1년 반 동안 지속했을 때는, 가끔은 조금 서럽고 속상했다 (미국은 대중교통이 한국만큼 잘 되어있지 않아 때로 물을 사기 위해 장을 보러 가면, 작은 캐리어를 들고 20-30분 거리의 마트를 걸어가곤 했다. 그래서 가끔 지인찬스로 함께 장을 보게 되면 지인에게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아, 물론 이렇게 짠내 나는 순간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중간중간 신용카드 크레디트를 이용해 타주로 여행도 두 번 다녀오고 이제는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아기고양이도 입양을 했다.
아직 얼마 살지 않은 인생이지만, 그럼에도 나의 짧은 10대, 20대를 돌아보면 많이 흔들리고 방황하며 뭘 몰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어리숙한 시간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런 순간들이 하나하나 모여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해 줬고 그래서, 하나의 버킷리스트를 이룰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제는 조금은 스스로를 얽매이는 기준들을 내려놓을 수 있기를, 채찍도 좋지만 당근도 많이 주는 내가 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