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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풀 Oct 20. 2023

미국에서 내 집 마련 후 생긴 변화들

00아, 지금 행복하니?

어렸을 때 읽는 이솝우화 동화책을 보면 공주님이 왕자님을 만나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결말로 끝이 난다.


그 시절 디즈니의 신데렐라



나에게 내 집 마련은 과장 한 스푼 보태어
 ‘나의 왕자님’이었다.
그렇다면 나 또한
이와 같은 결말로 끝이 날까?




그랬으면 좋겠지만 나는 동화책의 일부가 아니니 그 이후의 이야기들이 있다. 나의 왕자님이었던 '내 집 마련' 후 3달이 지난 지금, "여전히 행복하니?"라고 묻는다면, "행복한 순간이 더 많아졌다"라고 대답하고 싶다.



항상 행복한 것은 아니지만 하루를 살아가면서 순간순간, 내가 있는 자리를 상기시켜 감사하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그와 더불어 나에게 찾아온 여러 긍정적인 변화들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 폭식증이 개선됐다


약 1년 반 전부터 폭식증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올해 초, 4년 동안 변함없던 몸무게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2년 반을 재택으로 일하면서 집에서 조금씩 군것질을 주워 먹었던 습관이, 가끔 일이 잘 안 풀리고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그 자리에서 과자 한 봉지를 다 먹는 새로운 능력으로 향상됐다. “과자 한 봉지 가지고 뭘 그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천조국의 과자 한 봉지는 한국의 그것과 매우 다르다. 더욱 자세한 설명을 위해 아래 사진을 첨부하겠다. 내가 좋아하는 과자 종류 중 하나인데 저 한 봉지가 1000kcal가 넘고 그걸 있는 자리에서 끝내는 경우가 많았었다.


출처: target.com



예전에는 폭식증을 겪었다는 이야기를 지인한테 들으면 ‘그랬구나’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그 증상을 실제로 내가 겪고 보니, 이게 스스로를 참 많이 갉아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스스로를 갉아먹는다’라는 문장 하나로 단순히 표현할 수 있지만 실제 그 과정만큼은 그리 간단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문제를 해결하고자 2-3권의 폭식증 대처 책을 읽어보았다. 폭식증이 주로 일어나는 장소를 피하라는 조언이 있어, 일을 해도 집 안에 혼자 있지 않으려 노력했으나 일이 많아지면 개선되는 것 같다가도 다시 원상복귀가 되곤 했다.



개선 - 악화 - 개선 - 악화의 반복이 약 반년 넘게 이어졌다. 그러나 이번에 내 집 마련 후 현재의 집으로 이사를 하면서 많이 개선되어 유지되는 시간이 조금 더 길어졌다. 무엇보다 아파트 내에 24시간 아파트 주민이 이용할 수 있는 실내 체육관이 있어서 일이 늦은 시간에 끝나더라도 그 이후에 체육관으로 가서 조금이라도 운동을 하게 된 습관이 큰 도움이 되었다. 아직 식습관이 완전히 개선되었다고 확정 지어 말하긴 어렵지만, 분명 곧 완전히 개선되리라 생각한다.




| 늦은 밤까지 일을 해도 괜찮다


개발자라는 직업적 특성에 전면 재택근무라는 환경까지 더해지면서 가끔 일이 진척이 안 되면 오후 9시, 10시 넘어서까지 노트북을 붙잡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아직 실력이 부족해서 짧은 시간 안에 효율적으로 끝내는 연습이 필요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일이 자주 반복되어 오후 10시 느지막하게 노트북을 내려놓으면 나의 일한 시간을 보상받고 싶었다. 그전에 살았던 집에서는 딱히 어디를 갈 수도 없었기에 집에 있는 주전부리를 먹으며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려 했다. 그러나 먹는 순간에만 모든 고충을 잊는 것 같지, 다 먹고 나면 머리뿐만 아니라 몸까지 무거워져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가 조금씩 끊기고 있는 건 바로 현재의 집으로 이사를 오면서부터다. 이제는 이런 답답한 마음을 아파트 내 체육관과 수영장에서 유산소라도 하면서 풀게 되었다. 이게 나의 숨구멍이 되었고 그래서 참 감사하다.




 | 비 오는 날도 좋아졌다


고층에 살면서 비 오는 날에 창문 밖 너머의 풍경도 운치 있게 느껴졌다. 그전에는 저층에 살아서 주차장과 풀이 보이는 풍경의 전부였는데 이제는 매일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보게 되니 그 순간들이 나에게 참 큰 행복으로 다가온다.




| 집이 정돈되었다. 그리고 가끔 정돈된 집을 보면 행복하다


‘온전한 내 집’이라는 생각이 드니, 별로 깔끔하지 않은 나임에도 그전보다 더 깔끔하고 깨끗하게 살려는 노력을 하게 됐다. 오래오래 머물고 싶은 집이기에 벽에 스크래치 나지 않게, 바닥도 항상 먼지 없이 깨끗하게 지내다가 나중에 이곳에 머물 사람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넘겨드리고 싶다.




| 인테리어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됐다


내 집이 생기기 전에는 매년 이사를 가야 된다는 생각에 반강제로 미니멀리즘으로 살고 가전제품도 중고 거래를 통해 오직 가격 하나만을 가지고 구매했었다. 그래서 그릇도 디자인을 보기보다는 오직 가격! 가성비! 하나에 집중을 했으며 중고 책상과 의자는 각자 다른 셀러를 통해 따로 구매해서 집에 있는 모든 가전제품이 조화롭게 어울리지 못하고 따로 노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내 집이 생기지 않았나? 일명 mz 세대답게 나의 취향을 하나하나 알아가려는 노력을 본격적으로 하게 됐다. 호(好)도, 불호(不好)도 없이 무채색의 인간으로 살아왔던 나였는데, 점점 내가 원하고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Pinterest에서 보이는 다양한 인테리어 사진들을 보는 재미가, 나에게 찾아온 긍정적 변화 중 하나이다.



뿐만 아니라 그전에는 그저 인위적이라고만 생각했던 인테리어가 막상 내가 비슷한 방식으로 꾸며보려 하니, 그것마저도 노력과 세심함이 필요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




| 6년 해외생활 처음으로 여러 가전제품과 가구들을 샀다


먼저 나의 삶의 질을 수직 상승 시켜준 로봇 청소기. 처음에 가격을 보고선 ‘이걸 산다고?’ 싶었는데 막상 집에 들여놓고 나니, '왜 이걸 이제야 알았을까' 싶은 일명 ‘꿀템’이었다. 1인 가구의 집이면 상관없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 집에는 고양이가 있다 보니, 아무리 매일 청소기를 돌려도 고양이가 발에 묻히고 오는 모래 부스러기들이 항상 바닥 곳곳에 있었다. 그러나 로봇 청소기를 산 이후로는 가끔 너무 일이 바빠 청소기를 직접 돌릴 여유가 없을 때도 바닥이 자그마한 모래 알갱이 없이 말끔히 유지되었다.



그다음으로 산 가전제품은 바로 성능이 좋은 대형 에어프라이어였다. 집에서 재택으로 일하면서 요리할 여유가 없을 때 모든 재료를 에어프라이어에 넣고 돌리기만 하면 돼서 시간을 많이 아낄 수 있게 됐다. 단점은 너무 부피 차지를 많이 한다는 것이지만, 자취 생활 6년 만에 처음으로 에어프라이어를 내 돈 주고 사는 사치(?)를 누려보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아마존에서 거실에 들일 조그마한 책장을 구입했다. 언제나 내가 내 집 마련을 원했던 가장 강한 동기 중 하나가 바로 책들이었다. 요즘은 워낙 전자책 서비스가 잘 되어 있어 밀리의 서재나 리디북스로 한국책들을 읽곤 하지만 가끔은 종이책으로 읽는 것이 그리워지는 순간이 있다. 그러나 이사를 하면 종이책을 다 옮기는 것도 짐이었기에 언제나 전자책으로만 책을 읽었는데 드디어 집에 책장을 들이는 선택을 하게 됐다. 사실 아직까지도 그 전의 습관 때문인지 특별히 종이책을 구매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곳에 내 일기장과 노트를 나란히 놓을 수 있어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해진다.






보통 내 집 마련을 하면 투자까지 염두에 두고 사는 경우가 많다. 나는 그런 목적보다 장기 거주하며 안정감을 가지길 원했다. 물론 집 가격이 떨어질 곳은 배제하고 알아봤지만 미국은 한국만큼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는 경우도 적을뿐더러, 내가 사는 지역은 특히 덜하기도 하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이익을 얻을 생각보다는 매일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처럼 빠져나가는 렌트비를 절약하는 것과 시간 상관없이 운동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번외: 우리 집 막내 고양이에게도 번듯한 리터박스가 생겼다. 그전까지는 거실 오픈된 공간에 있어서 아마 대소변 볼 때 살짝 민망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이제는 자기만의 공간에서 보고 오니 우리 고양이도 조금은 삶이 나아지지 않았을까 어림짐작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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