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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풀 Oct 18. 2023

클로징(Closing) 날 부동산 중개인과 나눈 칫챗

내가 깨달은 것 2가지



© matthewhenry, 출처 Unsplash


미드(미국 드라마의 줄임말)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 chit chat.


한 문장으로 '가벼운 대화(small talk)' 또는 '수다'를 뜻한다.



그동안 부동산 중개인과 집 계약 관련된 주제로는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클로징(closing) 날 나눈 칫챗(chit-chat)은 이전에 나눴던 대화 주제들과는 결이 달랐던 별개의 내용이었다.





드디어 대망의 클로징날,


타이틀 보험회사(title company)에 도착했을 때, 보험 회사 직원분의 인도를 받아 사무실 로비로 갔다.


우리를 안내해 주신 보험사 직원분은 나와 부동산 중개인 분에게 잠시 기다리라는 말과 반대편 사무실로 사라졌고 별다르게 할 게 없었던 우리는 잠시 붕 뜬 그 시간 동안 자연스레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잠깐 기다리라고 말씀하신 타이틀 보험회사 직원분은 그 뒤로 한참을 나오지 않으셨기에, 정확히는 약 2-30분가량 국경을 넘나드는 chit chat을 하게 되었다).



사실 본격적인 대화는
타이틀 보험회사로 가는
차 안에서부터였다.



부동산 중개인 분은 나에게 ‘지금 무슨 일을 하느냐’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대학교는 어디 나왔냐’ 등 보통 한국 어르신들이 하는 호구조사를 하기 시작했는데 본인의 결혼과 어릴 적 가정환경에 대해서도 스스럼없이 털어놓으셨다. 그분의 개인사를 들으며 내색은 안 했으나 속으로 깜짝 놀랐다. 그 이유로 첫째는 미국에서는 웬만하면 나이, 가정환경 등의 사생활은 어느 정도 친분이 있지 않은 이상 잘 얘기하지 않기 때문이었고 둘째는 지금까지 미국에서 지낸 시간 동안 실제로 이런 개인사를 비즈니스 관계로 만난 사람에게 쉽게 털어놓는 경우를 본 적이 없기도 해서였다.



그렇게 시작된 부동산 중개인 분과의 chit chat은 부동산 중개인 일을 언제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됐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먼저 부동산 중개인 분은 자신이 이 일을 하면서 겪게 된 여러 일들을 나에게 들려줬다. 그중에서 지금도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타 은행이 클라이언트로 의뢰한 빈 건물 계약 출장을 나갔을 때의 사건에 관한 에피소드다.


어느 날 사전 조사 겸 클라이언트가 의뢰한 빈 건물 안으로 들어갔는데, 건물 곳곳이 인분과 오줌으로 가득해 악취가 진동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분명히 빈 건물이어야 할 그곳이 마약을 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는 것. 부동산 중개인 분이 인분이라고 확신하게 된 이유도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이 사람들 때문이었다고 한다. 계약하기로 한 빈 건물이 한 동안 방치 되어 거의 버려지다시피 한 곳이었기에 갈 곳이 없던 노숙자들 중 마약중독자들이 그곳을 점거해 버린 것이었다.



이야기를 들으며 부동산업 관련 일에도 이런 다소 험난한(?) 일들이 있다는 것에 내심 놀랐다. 아무래도 평소에 깨끗하게 잘 다려진 빳빳한 흰색 와이셔츠에 광 나는 갈색 구두, 그리고 번쩍이는 금시계를 차고 다니는 모습으로 인해 내가 더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았기 때문이겠지. 그저 외적인 모습만 보고 ‘수완이 좋으신가 보다-',라고 어림짐작했을 뿐.



나의 편협했던 색안경을 벗은 건 이 에피소드 외에도 이후에 부동산 중개인 분의 앞으로의 커리어 고민을 들으면서부터였다. 주 내용은 아내분이 타 주(state)로 이사를 가고 싶어 하는데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 이 일을 시작한 지 10년이 넘은 이제야 부동산 관련 업무로 조금씩 인정받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찾아주는데 과연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아내의 의견을 따라 새로운 곳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 맞을지에 대해서 고민이 된다고 하셨다.



부동산 중개인 분의 이야기를 듣자니 ‘누구에게나 매 시기마다 일 관련 고민은 항상 존재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취업 준비에 여념이 없었을 때는 '일만 구하면 다 해결되겠지'라고 여겼던 나의 생각이 안일했다는 것은 직장생활 시작 일주일 만에 알게 되었는데, 다른 업종에서 일하는 분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동안 나의 고민에 뜻밖의 위로를 얻었다.



한편으로는 이제 집 매수의 모든 과정이 끝나갈 때쯤 이렇게 가벼운 듯 무거운 얘기를 하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큰 일을 매듭짓기 전 서로 가볍게 긴장된 마음을 훌훌 푸는 것 같달까.




타이틀 보험 회사 안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는
더욱 나의 살아온 배경에 대한 얘기가 오고 갔다.


처음에는 중국인으로 오해하시다가 내가 한국(south Korea)에서 왔다는 말에, 김정은이 있는 Korea가 어느 쪽이냐고 물어보셨다. 그 물음에 클로징 날이라는 중압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빵 터져버렸다. 경직되었던 얼굴이 미소로 번지면서 그쪽은 ‘North’고 만약 누군가가 북한(North Korea)에서 왔다고 하면 그 경우는 첩보물 영화처럼 흔치 않은 케이스일 거라고 대답했다.



내 대답에, 흔히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맑눈광(맑은 눈의 광인)’의 눈빛을 언뜻 비추시더니, 남북분단과 일제강점기에 대해서도 질문하셨다. 한국은 통일을 할 생각이 있느냐, 남한의 문화와 북한의 문화는 비슷하냐, 언어는 똑같냐 등등.



마치 고등학교 때 학교에서 열리던 ‘남북 분단의 통일’에 관한 세미 토론이 다시금 미국 이곳, 부동산 중개인 분을 심사위원으로 앞세워 열리고 있는 중이었다. 어떤 점이 남과 북의 통일을 가로막고 있고 현재는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에 대해, 그리고 남한은 영어를 많이 사용하면서 남과 북의 언어는 더 상이해졌다는 얘기를 프레젠테이션 발표하는 것처럼 설명드렸다. 부동산 중개인 분은 내가 한국의 역사를 조금씩 더 풀어 설명할수록 눈이 반짝였다. 관심 가지고 들어주시니 이야기를 하는 나도 신이 났다. 단지 내가 한국의 역사를 조금 더 자세히 생생한 표현으로 설명을 못하는 게 아쉬웠다.



그렇게 한국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나도 개인적인 나의 이야기들을 조금씩 나누게 되었다. 대학교를 조기졸업 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크고 작은 어려움들, 왜 이 나이에 집을 사고 싶은 생각을 했는지, 미국에 앞으로도 계속 살 계획이 있는지에 대해서.



내 이야기를 쭈욱 듣던 부동산 중개인 분이 나에게 한 첫마디 말은 “Your parents will be proud of you (너희 부모님이 자랑스러워하시겠다)”였다. 왜일까. 그 말씀 한 마디가 나와 부동산 중개인 분 사이에 있던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어트렸다(그렇다. 나는 칭찬 한 마디에 이렇게 약하다).




이 날 부동산 중개인 분과 나눴던
대화의 시간이
특히 인상 깊었던 이유는,
나의 선입견 때문이었다.



처음에 나에게 오퍼(offer)를 빨리 내야 한다고 밀어붙이는 것도, 오퍼 이후에도 계약서 수정이 언제나 가능한 것처럼 얘기하는 말투도, 너무 친절하게 알려주는 것과 동시에 이 모든 것을 빨리 진행하려고 하는 느낌에 괜히 나도 모르게 경계심이 생겼다. 그래서 부동산 중개인 분에 대한 신뢰보다는, 그저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내가 더 똑바로 정신을 차려야 된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렇기에 이 분과 클로징날 나눈 대화는 예상치 못한 시간이었다. 이런 인간미 넘치는 대화를 나눌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단순히 서류 작업을 마무리 짓고 악수 한 번 한 다음, 사무적으로 고맙다는 말과 함께 빠이빠이 하겠거니 - 했었는데.




클로징 이후 부동산 중개인 분과의 대화를 돌아보며 내가 느낀 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사람 사는 건 다른 것 같으면서도 비슷하다.


모두가 각자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이 길이 맞을지 아닐지에 대한 고민을 한다는 것. 그리고 그 결정을 내리기까지 치열한 시간을 보낸다는 것도.
 

나만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는지 모르는 것 같아 답답했던 시기가 있었다. 사실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 고민이 단순히 나에게만 한정된 것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어찌 보면 삶은 그런 시간의 연속성이기 때문에 더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닐까-라는 열린 질문으로 스스로를 보게 됐다.



두 번째, 겉모습으로 절대 그 사람의 인생과 삶을 알 수 없다.


부동산 중개인 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잠시나마 그분의 인생을 가볍게 가늠했던 내가 부끄러워졌었다.


가끔은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을 가지고, 여유롭게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 부러워지는 순간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비 온 뒤 나타난 무지개와 같은 찰나의 순간일 뿐, 저마다 그 안에 어떤 먹구름과 비바람과 폭풍의 시기를 지나왔을지는 모르는 것이었다.





내 생애 첫 집을 가진 날,

그날이 여전히 깊은 잔상으로 남아있는 것은

나와는 전혀 다른 삶과 배경으로 살아온 부동산 중개인 분과의 진솔한 대화 덕분이었다.




이 글을 빌어 다시 한번 나의 집 사기 여정에 함께 해 준 부동산 중개인 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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