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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긋 Jun 12. 2024

대한민국 아줌마의 피아노 도전기

쇼팽, 녹턴 9-2

 명절 때 가족들이 모이면 엄마가 아주 가끔씩 꺼내는 이야기가 있다.


 "OO이는 어렸을 피아노를 엄청 쳤어. 바이엘한 달 만에 떼어버리고 바로 체르니 30번으로 넘어갔다니까. 그런데 갑자기 그렇게 치던 피아노를 그만두겠다는 거야. 나중에 알고 보니 OO이가 우리 집에 돈이 없는 알고 피아노 학원을 자기가 관둔다고 직접 선생님한테 말을 했데. 참말로 그랬을까잉?"


 국민학교 중학년 시절 나는 남들이 다 다니는 피아노 학원 문턱을 자연스럽게 넘었고, 엄마의 기억대로 피아노를 곧잘 쳤다. 손가락도 길어서 피아노를 치면 피아노 선생님이 잘한다고도 했다. 어린 시절 엄마는 나의 긴 손가락을 보며 "손가락이 길면 나중에 게으르다고 한디 너는 하나도 안그렇다잉."라고 말씀을 자주 하셨다. 사실 피아노 기본 교재인 바이엘이 상, 하권으로 나뉘어 있었으니 엄마의 말씀대로 바이엘을 한 달 만에 떼어버렸다는 건 확실하지 않지만 나는 분명 피아노에 흥미를 가지고 열심히 했다. 어쨌든 남들보다 진도가 빨랐는데 이는 내게 재능이 있었다기보다 급한 성격 때문에 그러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피아노 학원을 다닌 지 얼마 안돼 좋아하는 피아노를 갑자기 스스로 그만둔 건 맞다.


 어린 나이에 나는 우리 집이 정말로 가난한 줄 알았다. 어른이 되어보니 공무원인 아빠의 외벌이로 아이 셋을 키우기에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던 건 맞지만 피아노 학원비를 못 낼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장남인 오빠에게 집중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는 엠씨스퀘어 기기도 사주고, 가끔씩 '초원의 집'이라는 이름의 식당에서 소고기 외식을 하곤 했으니까. 하지만 내가 학교 끝나고 집으로 오면 엄마는 마당에서 동네 아주머니들과 수다를 떨며 미역줄기를 다듬는 부업을 하시거나 거실에서 진주알을 꿰는 일도 자주 하고 계셨다. 이런 장면들을 보고 우리 집은 가난하다고 생각을 했을까? 엄마의 힘든 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피아노 학원을 내가 그만 다닌다고 말씀을 드렸을 때 나는 엄마에게 돈 이야기가 아니라 피아노가 재미가 없어 그만하고 싶다고 거짓말까지 했었다. 막내지만 속이 꽤나 깊었던 것 같다. 엄마는 한 번씩 이런 이야기를 하시며 굉장히 아쉬워하시는데 나는 별로 아쉽지 않다. 물론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피아노를 했었다면 지금보다 엄청나게 잘 쳤겠지만 어른이 되어서 내 힘으로  피아노를 다시 배우기 시작했고 지금도 어느 정도 치므로 아무렇지도 않다. 음악시간 코드를 보고 아이들을 위해 반주를 쳐주는 내가 자랑스러울 뿐이다. 컴퓨터의 음원에 맞추어 노래를 하는 것도 좋지만 담임선생님이 반주를 직접 연주해 주면 아이들이 더 열심히 하는 것 같긴 하다. 비록 전자 피아노이고 많이 서툴지만 나의 피아노 실력에 만족한다.  

 

 대학교 시절 피아노 수업을 듣고 시험을 잘 보기 위해 학교 앞 피아노 학원을 한 달 정도 다녔다. 정말 오랜만에 피아노를 쳐보는 거라 많이 낯설었지만 재미있었다. 대학교를 다닐 때 피아노 연습실에서 열심히 연습했던 기억도 오랜만에 떠오른다. 나름 열심히 연습했지만 피아노 시험을 볼 때 긴장한 탓인지 계속 페달을 밟고 있어서 교수님께 혼이 났던 장면도 내 머릿속을 스쳐간다. 그로부터 한참 후 직업을 갖고, 결혼을 하고 아이가 어느 정도 컸을 때 나는 피아노 개인레슨을 다시 받기 시작하였다. 아이가 5~6살쯤이었으므로 한창 육아에 찌들고 학교생활도 열심히 못했을 시절인데 무슨 에너지가 있어서 피아노를 다시 시작했던 건가? 1년 넘게 피아노 선생님이 우리 집으로 방문을 하면서 어린 시절 하다 말았던 부르크뮐러, 소나티네, 체르니 30번을 드디어 뗄 수 있었다. 나는 나에게 쏟는 그 시간과 기운을 사랑했다. 피아노를 치며 잠시동안 힐링도 하였지만 무엇보다 오롯이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것에 큰 힘을 얻었다. 그때 당시 피아노 선생님의 전공은 플루트이었는데 어느 날 플루트를 나에게 권하셨다. 악보도 빠르게 읽고 왠지 잘할 것 같다는 피아노 선생님의 말씀에 중고였지만 전공자용 플루트로 구입 하였다. 한창 배우다 플루트과 같은 관악기는 내 길이 아닌 것 같아 악기도 다시 팔고, 이사를 하면서 자연스레 피아노 레슨도 관두게 되었다.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피아노방문 레슨을 시켜주었다. 아이는 별로 하고 싶어 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3년 이상을 꾸준히 한 결과 피아노 트로피도 3개나 전시할 수 있었다. 엄마 마음으로는 계속 피아노를 시키고 싶었지만 억지로 시킬 수는 없었다. 선생님께서 아이 수준에 맞게 잘 지도해 주셔서 그만두는 게 너무 아쉬워 마지막 아이의 레슨 때 내가 눈물을 흘렸었다. 그즈음에 나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교육청에서 하는 바이올린 연수를 신청하여 한창 바이올린을 연습하고 있었다. 같은 학교 교무부장님이 연습용 바이올린을 나에게 그냥 주셨는데 줄도 좋은 걸로 바꾸니 꽤나 쓸만하였다. 동네 언니로부터 저렴하게 바이올린 레슨을 받을 수 있는 곳을 소개받았고 일주일에 한 번 열심히 바이올린 레슨을 받으며 스즈끼 3권의 초반까지 연습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바이올린과 같은 현악기는 생각보다 실력도 늘지 않고 나에게는 너무 지루했다. 무엇보다 1년 넘게 바이올린을 했지만 소리가 내가 듣기에도 예쁘지 않았다. 고급 줄로 교체를 한 지 얼마 안 되어 중고거래사이트에 바이올린을 팔았을 때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한창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하고 집에 있는 물건을 비우는 데 정신을 쏟고 있었을 때라 창고 한구석에 먼지가 쌓인 채 방치되고 있던 바이올린을 처분하는 것은 나에게 큰 어려움이 아니었다.


 한참 치지 않았던 피아노에 눈이 다시 가 아이 피아노 레슨 선생님이 그대로 나의 선생님이 되었다. 예전에 배웠던 체르니 같은 건 하지 않고 성인 어드벤처 교재를 통해 이론도 배우고 반주법도 접했다. 무엇보다 다시 피아노에 관심을 가져서 좋았던 건 멋진 곡을 따로 연습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내가 좋아했던 피아노 레슨 선생님이 학원을 차려 더 이상 개인 레슨을 못하신다고 했을 때 너무나 아쉬웠다. 새로 소개받은 선생님께 1년 정도 더 레슨을 받았는데 이때 쇼팽의 녹턴 9-2를 만났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접한, 녹턴을 연주하는 조성진 피아니스트의 감미로운 피아노 소리에 반했고, 나의 피아노 실력은 녹턴을 치기에 턱없이 부족했지만 대한민국 아줌마의 무모한 용기로 결국 도전을 하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진도를 나간 게 몇 개월이 걸렸고 계속해서 연습해도 너무나 어려웠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레슨을 받으니 선생님 도움 없이 악보를 보고 끝까지 더듬더듬 칠 수는 있게 되었다. 남들이 듣기에 아주 많이 서툴지만 피아노 레슨을 그만둔 지금도 혼자 한 번씩 연습을 하고 있다. 느리지만 꾸준히 연습한다면 내 꿈인 피아노 치는 할머니가 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가끔 남편에게 나는 딸이 없으니까 이것저것 취미생활을 많이 해서 노후 준비한다고 말을 하면 날 어이없게 바라본다. 나에게 딸이 있었으면 더 했을 거라면서.


  플루트, 바이올린, 기타, 우쿨렐레, 단소, 소금, 리코더 등 수많은 악기가 나를 거쳐갔지만 피아노 하나만은  평생 친구로 가져갈 것이라 단단히 결심하는 나를 발견한다. 피아노를 찾지 않는 날에도 항상 그 자리에서 묵묵히 기다려주는 나의 오래된 피아노에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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