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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긋 May 31. 2024

대한민국 아줌마의 브런치 작가 도전기

내가 만들어 간 특별한 생일 선물

  동학년 선생님들과 추가 학습준비물을 사러 여비부지급 출장을 내고 학교 앞 문구점을 간 건 퇴근 시간을 얼마 남겨 두지 않았을 때였다. 5월의 마지막 날인 것을 알리고 싶어 하는 듯 오늘따라 햇살은 너무 강했고 문구점은 슬러쉬를 사 먹으려는 옆학교의 중학생 아이들로 조금 붐비고 있었다. 물건을 열심히 고르고 있을 때 무의식 중에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는데 우연히 브런치에서 온 알림을 보았다.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엥? 이게 무슨 말이지? 축하드립니다? 정신이 없던 와중에 알림을 읽어서 이게 무슨 말인지 제대로 이해되지 않았다. 게다가 그 사이 학부모에게 톡이 와있었고 그에 답을 하느라 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에이, 설마...라는 마음이 먼저 들었다.


 사실 어젯밤에 무슨 바람이 불었던 건지 작가의 서랍에만 있는 글을 이용해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다. 잠자리에 들려다가 노트북을 펼쳤다. 그동안 제대로 쓴 글은 글쓰기 연수의 숙제였던 에세이 하나밖에 없었고, 나머지 둘은 절반 정도만 써놓은 상태였다.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니 나머지 글들도 완성을 하는 건 시간은 꽤 걸렸지만 그래도 할만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작가의 소개와 앞으로 브런치 스토리에서 어떤 글을 발행하고 싶은 지 쓰는 대목이 나의 발목을 잡았다. 이 부분을 잘 써야 작가 승인이 난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부담감이 확 몰려왔다.

 글도 별로 안 써본 내가 첫 시도에 브런치 작가가 되는 걸 꿈꾸는 건 언감생심이지. 그냥 한번 실패를 해보고 재수, N수를 하더라도 호기롭게 도전해 보자는 생각이 강했다. 나에 대해 담백하고 솔직하게 한 글자씩 적어나갔다.


 작가님이 궁금해요


 저는 제가 남들보다 천천히 늙을 줄 알았어요. 오만이 가득한 생각이었죠. 40대 중반의 길목에 서있는 저는 지금 천천히 나의 노화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런 나를 온전히 이해하고 오롯이 나만을 생각하며 나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하고 싶어요. 19년 차 초등학교 교사라는 사회적으로 명확한 직업이 있으나 요즘은 학창 시절보다 나의 진로에 대해 더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지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기 위해서 나에 대한 연구를 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이제부터 내 연구 보고서를 작성해 볼까 해요.


브런치 스토리에서 어떤 글을 발행하고 싶으신가요?


  1. 글쓰기를 시작한 이유와 배경 : 40대 여자가 자신을 연구하고 싶어 하는 마음

  2. 나의 성격과 행동 : 나는 왜 일처리가 빠른가? 느긋해지고 싶다. / 교사인데 발표불안이 있으면 어쩌지?

  3. 내가 좋아하는 취미 : 나를 거쳐간 수많은 취미들 / 최애 취미인 나의 스윙댄스 일대기

  4. 자존심은 없지만 자기애는 충만해! : 나는 나로 태어난 게 정말 좋다!

  5. 나는 내가 늙지 않을 줄 알았다. : 오만함의 극치를 보여주마!

  6. 대한민국에서 19년 차 초등교사가 살아남는 법


 글자수 제한이 300자로 있어 여기에서 줄이고 다듬어 겨우 글을 올렸다. 그냥 올려버렸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노트북을 덮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수면시간이 짧아서였는지 다음 날 아침 스마트워치의 수면점수는 66점으로 보통이었다.


 5월의 마지막인 오늘은 나의 43번째 생일이다. 별로 큰 감흥도 설렘도 없는 그냥 보통의 날이었다. 물론 가족들의 축하도 받고 카톡에서의 형식적인 축하 메시지도 많이  받았지만 그냥 평범하고 감사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항상 그랬듯이 교실에서 수업을 하고 급식도 맛있게 먹고 학교 텃밭의 상추와 고추에게도 물을 듬뿍 주었다. 생일이라는 큰 기쁨 보다도 한쪽 구석에서 또 제대로 한 살을 먹는다는 우울감도 살짝 있었던 것 같다. 오랜만의 미세먼지가 없는 햇살 좋은 금요일이면서 내 생일인데 조퇴도 안하고 출장을 나가야 하는 나 자신이 조금은 안쓰러웠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갑자기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축하한다니!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브런치 작가란다. 글 발행에 앞서 프로필에 '작가 소개'를 추가해 주란다. 내가 작가라니! 나도 작가가 될 수 있다니! 아직도 실감이 나질 않았다. 뭔지 아직도 상황 파악이 덜 된 상태에서 그 알림을 누르니 프로필 편집을 할 수 있는 화면이 뜬다. 내가 진짜 한번에 승인을 받은 건가? 물론 한번에 브런치 작가 승인을 받은 수많은 훌륭한 작가님들이 많겠지만 글도 별로 안써본 햇병아리 같은 내가 한번에 승인을 받다니 "놀랠 노"자였다. 솔직히 나는 브런치스토리 앱 존재 자체도 안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았다. 교육연수원에서 글쓰기 연수를 받기 시작하면서 이런 앱도 있다고 소개를 받았고 유튜브에서 브런치 작가 되는 법을 검색했을 때 쉽지 않은 것만 파악을 한 정도였다.

 

 새롭게 태어난 기분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큰 생일 선물을 받았다. 브런치 스토리의 담당자분이 빨리 일처리를 해주어서 내 생일에 맞춰 선물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 감사했다. 하수인 나는 또 이 사실을 가족과 친한 동생에게 알리기 바쁘다. 자랑하고 싶어서 손이 근질근질했다. 나도 나중에 브런치북을 낼 수 있다는 미래가 순식간에 그려졌다. 내 생애 최고의 생일을 내가 만들어가는 모습에 나 자신이 기특하고 너무나 좋았다.


 정말 나란 여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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