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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긋 Jun 26. 2024

명랑한 할머니가 될 테야!

 휴대폰 사진첩에 꽃사진이 많으면 나이가 든 증거라더니 요즘 내 휴대폰은 꽃사진으로 가득하다. 어디 꽃뿐이랴. 멋진 풍경, 벌과 개미와 같은 곤충, 나무, 노을 진 하늘,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우리 반 텃밭 상자 등 자연에 대한 사진으로 도배되어 있다. 브런치 작가가 된 이후 사진 찍는 것에 많은 관심이 생겨 일상의 사소한 물건들에도 눈길이 간다. 예전에는 셀카도 많이 찍었는데 요즘은 내 얼굴보다 보기에 편안한 것들이 많이 생겼다.


치자꽃 향기로 가득한 우리 학교 화단, 활짠 핀 꽃과 활짝 피기 전의 모습이 신기하다.


 한 달 전만 해도 나는 나 자신이 글 쓰는 사람이 될 줄 미처 몰랐다. 우연한 계기로 브런치 스토리라는 글쓰기 플랫폼을 알았고, 여느 다른 것과는 달리 작가 승인을 받아야 하는 게 큰 매력으로 느껴졌다. 아무튼 운이 좋아 브런치 작가 타이틀을 한 번에 달았고, 지금까지 글 쓰는 설렘과 발행의 짜릿함, 구독자 수의 소소한 증가로 일상의 감사함을 자주 느끼고 있다.


  어느 주말 저녁, 작가의 서랍을 열고 글을 쓰는 나를 보며 남편이 입을 연다.

"이번에는 글쓰기야? 얼마나 갈라고?"

장난 섞인 말투로 아무 생각 없이 툭 던진 걸 알기에 전혀 기분이 나쁘지는 않지만 그를 한번 쳐다볼 뿐 딱히 대꾸도 하지 않는다. 그의 반응이 이해되는 것이 그동안 나는 수없이 많은 분야에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꽂히면 그 실행력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취미부자다. 나에게 딸이 없으니 노후를 미리 준비하기 위함이라고 말하면 그 뒤의 남편의 말은 항상 똑같다.

"자기는 딸이 있으면 더 했을 거야!'


 그동안 나를 거쳐가고, 지금도 하고 있으며, 앞으로 하게 될 수많은 취미들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 번째 공예 부분으로는 휴지곽과 같은 소품에 그림을 그려 넣는 포크아트, 3급이지만 자격증까지 딴 pop 예쁜 글씨, 켈리그라피, 교사 동아리에서 했던 파스텔화, 교실 환경정리를 위한 폼아트, 자격증 있는 라탄공예, 사이비 선생님을 만나게 했던 매듭팔찌공예, 수세미 뜨개질, 보석십자수, 재봉틀로 가방이나 파우치 같은 소품 만들기, 유화로 색칠놀이하는 피포페인팅, 그릇에 그림을 그리는 포슬린 페인팅, 코너장이나 스툴을 만드는 목공예, 산업 폐기물을 새활용하는 양말목공예, 딸은 없지만 리본핀이 만들고 싶어 독학을 한 리본공예, 대학생 시절 인기가 있었던 지금은 하지 않은 비즈공예가 있다. 소품을 하나씩 만들 때마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고 그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꽤나 큰 기쁨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두 번째 운동 부분은 자격증이 있는 점핑트럼플린, 지금도 재밌게 주 2회 하고 있는 줌바댄스, 음악이 좋은 스윙댄스, 다이어트를 위한 헬스 PT 조금, 나하고 맞지 않았던 필라테스 3개월, 2-30대에 했던 각종 댄스(다이어트 댄스, 재즈댄스, 벨리댄스, 에어로빅), 현재 체육시간에 잘 활용하고 있는 음악줄넘기, 코로나 전 2년 정도 했던 배드민턴, 남편과 함께 노후 대비용 골프, 대학시절 수영 잠깐, 집에서 가끔 하는 사이클 타기가 있다. 이렇게 많은 운동을 했어도 왜 뱃살은 점점 나오는지 의문이다. (사실, 이유는 너무나도 알고 있다. 많이 먹기 때문이다.)


 세 번째 악기 부분은 지금도 쭉 하고 있고 앞으로도 꾸준히 할 내 인생 악기인 피아노, 2학기때 다시 도전할 기타, 5학년 아이들 앞에서 꽤 폼나게 불 수 있는 단소, 음악 시간 준비를 위한 리코더, 기타를 배우기 전 잠깐 배웠던 우쿨렐레, 교육청 연수로 1년 정도 배웠던 바이올린, 10년 전 몇 개월 맛보았던 플루트 정도가 있겠다.


 이 밖에도 아주 느리지만 3*3 큐브 맞추는 것을 좋아하고, 청소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집 정리 정돈하는 것을 좋아하여 정리 수납 자격증까지 취득하였다. 또 꽃이 좋아 꽃꽂이에도 관심이 많고 아로마테라피에도 눈길이 간다. 이렇게 관심분야가 많고 넓어 초등학교 교사라는 직업이 적성에 아주 잘 맞다. 내가 많이 알고 배우는 만큼 그 경험이 우리 아이들에게 그대로 감을 알기에 교사로서 연수받기도 게을리하지 않고 항상 깨어있다고 자부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대한민국 교육 현실이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녹록지 않아 명퇴를 자주 생각하고, 남편과 함께 퇴직 후의 삶도 자주 그려본다.


 현재의 삶에 충실하고 있지만 노후를 위한 씨앗도 열심히 뿌리고 있다. 사람일은 모르니 혹시라도 하게 될 명퇴 후 나의 멋진 인생을 생각하며 노년에 꽃을 피울 수 있는 여건을 많이 만들고 있는 중이다. 내향인의 성격인 나는 나 혼자서 무언가를 할 때 힘을 얻는다. 물론 가끔 사람들로부터 얻는 에너지도 좋지만 그게 과하면 기가 빨린다. 친구가 별로 없지만 항상 바쁘고 외롭지 않은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남편과 함께 소소하고 행복하게 나이 들어가기 위해서 나 자신이 먼저 건강해야 하고, 그 건강함은 남에게 의지 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한다. 이런 거창한 말보다는 그냥 나는 인생을 즐기는 명랑한 할머니가 되고 싶다. 베풀 줄 알고 약간 철도 없으며 웃음이 많은 그런 할머니 말이다.


나는 꼭 명랑한 할머니가 될 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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