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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긋 Jun 21. 2024

대한민국 아줌마의 골프 도전기

 주말에 텔레비전을 켜니 골프 라운딩을 즐기는 연예인들의 모습이 나온다. 지난 몇 년간 골프에 관한 프로그램이 전보다 많이 생겼다고 느낀 건 그냥 단순한 내 느낌이 아니다. 나 같은 대한민국의 지극히 평범한 아줌마도 골프를 시작한 걸 보면 골프 인구가 급속도로 늘어난 건 확실하다. 내가 골프를 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골프 프로그램을 보며 '허세스럽다, 재미도 없어 보이는 데 운동이 되나, 저 사람들은 돈 벌면서 그 비싼 골프를 쉽게 치네!'라고 생각하며 채널을 돌려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연예인들의 좌충우돌 골프 치는 모습을 보면서 잘하면 잘하는 대로 감탄을 하고, 못하면 못하는 대로 공감도 하며 재미있게 시청한다. 아, 물론 연예인들이 그늘집에서 엄청 비싼 메뉴를 여러 개 시켜 시간적, 비용적으로 여유 있게 먹고 즐기는 모습을 보면 약간의 위화감이 들기는 하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삶이 있으니 조금 부러워하고 만다. 어쨌든 뭐든지 아는 만큼, 관심 있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골프를 하기 전에 이 운동에 관한 선입견이 많이 있었지만 정작 내가 시작하고 나니 왜 사람들이 이렇게 골프에 열광하는지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골프에 관한 내가 가진 첫 번째 선입견은 다른 사람들도 흔히 생각하는 비용 문제이다. 돈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는 허세스러운 스포츠라 생각을 했었고 이게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운동이든 어떻게 접근하는지에 따라 비용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초기비용으로 골프채와 레슨비, 연습장 비용이 든다. 물론 남편같이 유튜브를 통해 골프를 독학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나는 동네의 저렴한 실내연습장에서 3개월 레슨과 연습장 이용이 묶여있는 패키지에 비용을 지불하였다. 그 기간 동안 15분~20분 정도의 레슨을 총 30회 받았는데 7번 아이언을 시작으로 드라이버, 우드를 다 다루었고 어프로치와 퍼팅까지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내 몸이 골프라는 운동을 익히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고 그 뒤로 6개월 동안 레슨을 더 받았다. 내 기준으로 적은 비용은 아니었으나 나를 위해 기꺼이 지불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골프채를 산 건 아니다. 연습장에 있는 공용채로 레슨을 받다가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중고거래 앱을 통해 풀세트로 구성되어 있는 골프클럽을 구입하였다. 골프에 관한 중고물품이 많이 거래되는 것을 보면 골프 인구가 많아졌음을 확실히 느낀다. 내가 직접 만난 판매자는 오랫동안 골프를 하신 고수의 느낌을 풍겼고, '어깨가 아파 더 이상 골프를 하지 않는다'는 멘트와 함께 그동안 본인이 필드에서 사용하였던 모든 장비들을 서비스로 주었다. 여성용 골프 캐디백에는 캐리어처럼 끌 수 있는 손잡이가 있으나 처음에 이것도 못 찾아 그 무거운 골프클럽을 낑낑대며 집까지 들고 올랐던 우스운 기억도 난다. 중고 골프채를 사서 그립만 바꾸었더니 골프에 관한 일자무식인 나도 나만의 골프채가 생겨 좋긴 하였다.

 무슨 운동이든 장비가 중요하지만 골프는 그 장비의 비용이 정말 하늘과 땅 차이다. 얼마든지 생각보다 비싸지 않게 배울 수도 있지만, 능력이 되어서 장비에 투자를 할 수 있는 경우를 보면 나 같은 서민 기준으로 그 가격이 상상을 뛰어넘는다.


 골프웨어도 기능성 옷이라 비싸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나는 레슨 코치님의 편안한 옷이면 된다는 단순한 말씀을 잘 듣고 운동복이나 청바지를 입고 연습을 하였다. 한 번씩 중고거래앱에서 골프웨어가 나오면 싸게 구입하기도 해서 생각보다 의복에는 비용이 많이 들지 않았다. 골프신발도 대형마트에 가서 적당한 걸로 나의 수준에 맞춰 초기 필요 물품을 준비하였다. 그런데 생각보다 골프에 들어가는 부가적인 물건들이 많았다. 특히 필드에 나갈 때면 골프장갑, 골프공은 기본이고 골프티, 모자, 파우치, 네임텍, 가방 등 자질구레하게 준비할 것이 많지만 그래도 한번 준비하면 대부분 오랫동안 쓸 수 있다. 경제관념이 대충 잘 맞는 우리 부부는 다이소를 주로 이용하였다. 그냥 내 수준에 맞춰 준비하고, 허세 없이 다른 사람들 의식하지 않고 다가가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골프를 시작할 수 있다. 나에게 있어 골프는 예전의 편견처럼 전혀 허세스러운 스포츠가 아니게 되었다.


 골프에 관한 내가 가진 두 번째 선입견은 이게 과연 운동이 되는 것인가에 관한 내용이었다. 남편이 골프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연습 시 갈비뼈에 금이 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며 골프가 오히려 몸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칠 것 같았다. 욕심을 부려 힘을 많이 줬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아직도 잘은 모르지만 모든 운동이 그러하듯 골프는 몸에 힘을 빼고 쳐야 한다는 것은 깨달았다. 다마 몸이 안 따라줄 뿐이다. 연습을 하고 나면 몸에서 땀이 쭉 나고 필드 경험은 별로 없지만 한 번씩 라운딩을 다녀오면 그날의 만보기는 평소보다 큰 숫자를 가리킨다. 무엇보다 100에 1~2번씩 공이 잘 맞으면 기분이 정말 좋다. 신체적인 운동도 제법 되지만 큰 욕심만 내지 않는다면 정신적으로도 좋은 운동임을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다.


 이제 골프 구력 2년 차. 매번 칠 때마다 공이 다르게 가는 게 정말 신기하다. 한 번씩 좌절도 하지만 점점 골프의 매력을 알아간다. 처음에 시작할 때는 손에 힘을 너무 많이 줘 손가락이 너무 아팠다. 다음 날 아침 손이 부어 주먹이 안 쥐어진 경우도 많았다. 손의 근육을 풀어주는 파라핀 치료기도 구입하여 날마다 집에서 자가 치료도 하였다. 생각보다 운동신경이 없는 나를 보며 골프 코치님의 "외람된 말씀이지만, 몸이 많이 뻣뻣하신 편입니다." 말이 아직도 내 귓가에 생생하다. 나랑 맞지 않는 운동이라 생각했고 처음으로 나간 필드에서 공이 너무 안 맞아 민망함과 동시에  동반자에게 왠지 모를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았지만 포기하지 않으니 골프의 좋은 점도 하나씩 경험하곤 한다. 노후에 골프장이 있는 실버타운에 들어가는 게 꿈인 남편 덕분에 꾸준히 할 수 있어 고마움을 느낀다.


 골프의 가장 큰 장점 중의 하나는 나이가 든 사람이 유일하게 젊은 사람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스포츠가 신체적인 조건과 체력이 많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골프는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남편과 함께 부부 공동의 취미가 생겨서 좋다. 우리는 주로 스크린골프에서 시간을 보내는데 서로 '나이스'와 '굿샷'을 외쳐주고 하이파이프를 하면서 소소한 추억을 하나씩 쌓아간다. 가끔 골프를 먼저 시작하고 제법 점수가 좋은 남편의 '이래라저래라' 하는 잔소리도 꾹 참고 고개를 끄덕여야 할 때도 있지만 그 순간이 너무 소중하고 감사하다. 우리가 다니는 스크린 골프장은 평일에 가면 1인당 1만 원이니 우리 부부가 가도 2만 원이므로 이 정도는 나에게 부담 없이 투자할 수 있는 금액이다. 스크린골프는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듯하게 즐길 수 있고 저렴한 비용과 길지 않은 시간도 큰 매력이다. 물론, 라운딩을 가는 것도 엄청 좋지만 우리 부부가 한 번에 나가면 캐디비, 카트비, 그린피 등 만만치 않은 돈이 깨지므로 자주는 못 나간다. 분수와 상황에 맞게 해야 오랫동안 할 수 있다는 마음이 생긴다. 나에게 생긴 또 하나의 노후 대비인 골프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골프야, 미안해! 내가 널 오해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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