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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아 작가를 만나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by 느긋

말을 잘해야 소설가가 될 수 있나? 소설가들은 원래 말을 잘하나?


지난 17일 토요일 아침 일찍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정지아 작가님을 만나기 위해 전라남도 구례군으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교육연수원에서 진행된 문학 편 현장탐방 직무연수 공문을 보자마자 이 연수를 신청하기 위해 알람도 맞추고 시간에 맞게 대기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작가님의 책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가 궁금해 꼭 듣고 싶었던 연수였고 간절했던 만큼 수강신청에 성공할 수 있었다. 역시 인기 있는 연수라 2-3분 만에 마감되었다는 연구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유치하지만 내면의 기쁨이 더 커졌다.


구례군 매천도서관으로 가는 길은 전날 비가 와서 더없이 상쾌하였다. 5월의 싱그러운 녹음과 꽃들이 연수생들을 더 반겨주는 듯하였다. 2002년에 설립되어 2021년에 이전 개관을 한 매천도서관의 내부는 층고가 매우 높고 햇살이 잘 들어오는 아주 따듯한 공간이었다. 연수생들이 강의실에 착석을 하자 인상이 좋은 아주머니 한분이 들어오셨다. 꽤 유명하신 분인데 얼굴을 뵌 건 처음이었다. 작가에 대한 나도 모르는 선입견이 있었을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편안하고 평범한 겉모습에 높게만 생각되었던 지식인이자 유명인에 대한 벽이 순식간에 허물어졌다. 작가님이 가방을 한쪽에 두시고 멀리서 오시느라 힘들지는 않았냐며 우리의 안부부터 물으셨다. 근처 마트에서 수다를 떨다가 시간에 맞춰서 오셨다는 작가님의 첫마디에 살짝 있었던 긴장감이 온전한 반가움으로 바뀌었다. 작가와의 만남을 위해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막 읽고 온 터라 과연 무슨 이야기를 들을지 굉장히 설다.


매천 도서관 입구 전경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처음부터 이 제목이 아니었다고 한다. 작가님이 생각하신 가제는 '이웃집 혁명전사'였다.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지금의 제목과 이미지가 너무 달라 재밌었다. 출판사에서 제시한 '아버지의 해방일지'라는 책 제목은 '나의 해방일지' 드라마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하였다. 나 또한 손석구 배우를 좋아해 아주 몰입하며 드라마를 보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작가님 역시 손석구 배우를 아무리 좋아해도 왠지 남의 것을 가져온 느낌이라 처음에는 완강히 거절했다고 한다. 지만 출판사의 감각 있는 직원들의 권유로 자존심을 버리고 지금의 제목으로 결정하게 되었는데 무슨 일이 잘 되려면 모든 우주의 기운이 도와야 하는 것처럼 제목에도 그 기운이 닿았나 보다. 참고로 제목에는 저작권이 없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책의 표지를 정할 때도 작가님의 요구사항은 단 하나, '표지를 보고 책의 내용을 짐작할 수 없게 만들어달라'는 것이었다. 이웃의 푸근한 느낌을 가진 책 표지는 아마도 '이웃집 혁명전사'일 때 나온 것 같다고 한 에피소드도 너무 재밌었다.


작가님을 만나기 직전 책을 다시 한번 읽은 터라 이야기에 얽힌 그리고 내용에 나오지 않는 뒷배경의 많은 썰들이 2시간 강의를 20분 강의처럼 만들어 주었다. 렇게 크지 않은 강의실의 앞쪽에 앉은 나와 눈 맞춤도 잘해주셔서 시간이 더 순식간에 지나갔다. 아픈 역사에 관한 내용이 나올 때면 순간 눈물을 글썽거리기도 했지만 대부분 유쾌한 분위기였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소설로 풀었고, 자신의 변화된 모습도 어떠한 꾸밈없이 진정성 있게 이야기해 주셔서 더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작가라는 직업이 정말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섹녀'라는 단어를 인간으로 표현하면 정지아 작가일 것이다. 2시간을 꽂꽂하게 선 채로 모든 청중들의 몰입을 가능하게 하는 그녀가 너무 멋져 보였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첫 문장은 굉장히 강렬하다.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2008년 5월 1일 근로자의 날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이 소설을 구상했다고 한다. 작가님의 표현에 의하면 불경스럽게도. 일평생 노동자를 위해 살아가신 작가님의 아버님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5월 1일 00시 **분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라고만 보기에는 어려운, 의미를 충분히 부여할 수 있는 날짜와 시각이었다. 하지만 책이 출간된 건 2022년 가을로서 14년이라는 아주 긴 시간이 걸렸다. 책의 바탕이 되는 이야기는 이데올로기, 사상, 이념의 무거운 내용이었고 배경은 아버지의 장례식장이었지만 유쾌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전라도의 사투리를 써서 그런지 현장감을 생생하게 읽었고 단숨에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길 수 있었다. 작가님도 무겁지 않고 어찌 보면 웃음까지도 자아낼 수 있는 글을 쓰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셨다고 했다.


책에 충분히 그려지긴 했지만 장례식에 오신 '비전향장기수' 열댓 분 이야기도 너무 재밌었다. 그때 당시, 전향서만 쓰면 감옥에서 나올 수도 있었으나 자신의 신념을 지킨 사람들은 최대 40여 년의 수감생활을 했다고도 한다. 모든 걸 버린 채 '사상의 순결'을 지키고 인생까지 남다르게 산 그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작가님의 표현에 의하면 '보통의 할아버지'였다. 작가님이 장례식에서 엄청난 기대를 가지고 만난 그들은 목소리도 크고, 술도 잘 마시고, 할머니를 두고 싸우는 그런 평범한 할아버지들이었다. 수없이 긴 세월 동안 감옥에서 성장할 기회가 없는 분들이었다. 감옥에서도 사상범들은 그들끼리만 생활하게 했다고 하니 세상의 변화를 상상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 분들이 3일 동안 하루에도 열두 번씩 장례식장에 들리셨다고도 하고, 애국의사라고 할지, 애국열사라고 할지 하루 종일 큰소리로 논쟁을 벌이는 모습을 작가님은 이 또한 유쾌하게 풀어내셨다.


소설가라면 누구라도 가지고 있다는 '소설적 자의식'에 대한 설명도 매우 재밌었다. '나를 보는 나'가 있다는 말에 매우 놀라웠다. 현실의 '나'가 있고 그걸 바라보는 '나'가 있으면 어떤 상황이든 좀 더 의연하고 담백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앞으로 나에게도 특별한 상황이 오면 그렇게 '나를 바라보는 나'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좋은 일이 있어도 겸손해질 수 있고 힘든 일이 있어도 이 또한 다 지나갈 거라고 '나'가 '나'를 위로해 줄 것 같았다. 아무튼 소설적 자의식이 있었기에 장례식장에서 소설도 구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일상을 살아갈 때 굉장히 큰 힘이 될 것 같은 예감이었다.


구례의 특수성에 대해 작가님께서 아주 자세하게 설명해 주셔서 책의 내용이 더 이해가 잘 되었다. 구례는 아주 작은 동네라고 한다. 면적도 우리나라에서 거의 2-3번째로 작고 인구도 2만 명이 조금 넘는다. 보도연맹사건이 유일하게 없었던 동네라고 하였다. 처음 들어보는 단어였는데 보도연맹이란 공산주의자였던 사람들이 더 이상 공산주의를 안 하겠다고 가입하던 단체였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정부에서 여기에 가입한 사람들을 모조리 잡아들이고 학살을 했다. 가입하면 쌀도 주고 식량도 준다는 말에 흘려서 가입한 민간인들도 많고, 그때는 이장들이 마을 사람들의 인감도 다 가지고 있을 때라 자신이 가입된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많았다. 구례경찰에서 그들을 막상 잡아놓고 보니 작은 동네인 만큼 얼굴도 다 아는 처지라 그때 당시 경찰서에 잡혀 들어온 480명 가량의 사람들을 경찰서장이 차마 죽일 수는 없었다고 한다. 경찰서장이 친일파 출신이긴 하였지만 그때 당시 구례사람들을 살린 건 사실이었다. 이 때문인지 좌익과 우익이 서로 총부리도 겨누지 않은 곳이었다.


여순사건의 피해를 많이 본 곳도 구례였다고 하셨다. 낮에는 군경으로부터 밤에는 빨치산으로부터 많은 고통을 받았다는 말에 가슴이 아려왔다. 사상이나 이데올로기 같은 것은 잘 모르고 자식새끼 밥 잘 먹이고, 등 따뜻하게 재우는 게 제일 행복이었을 사람들이 시대와 사회의 이념으로 희생을 당했다고 하니 마음이 아팠다. 그동안 역사에 대해 너무 몰랐던 것도 죄스러웠다. 이런 이유들로 정치와 무관한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이 강해 관여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다고도 하셨다. 구례에서 이장을 뽑으면 후보자들이 많이 나오지만 국회의원이나 판검사들보다 변호사가 실제로 많다고도 하셨다. 배경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원래 작가님은 시티걸(city girl)이셨다고 한다. 처음 듣는 용어라 너무 웃겼다. 울에서 수십 년 동안 생활하시고 올해 100살이 되신 어머님을 위해 수년 전 구례에 정착하였는데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과 자세가 많이 바뀌었다고 하셨다. 작가님의 개인적인 생활을 들으니 눈이 더 반짝반짝 해졌다. 처음에 구례라는 작은 시골에 내려왔을 때는 오지랖 때문에 너무나 힘들었는데 지금은 많이 편안한 생활을 누리고 계신 듯 보였다. 길을 가다가도 갑자기 본인 말만 하고 가는 할머니, 작가님이 잘 먹지도 않는 장아찌를 그냥 들이미는 이웃, 저장고 한편은 쓰라고 내어주신 주인아저씨, 갈치찜을 먹으러 갔는데 갈치가 없다고 동태탕을 먹으라고 하는 식당 등 다양한 에피소드에서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겼다. '서울 것'들이라 표현되는 작가님의 친구들이 가끔 구례에 놀러 오면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을 쉼 없이 재미있게 이야기해 주셨다.


작가님도 서울에 살았을 때는 사람을 우열로 나누고 판단을 했는데 구례에 내려오면서 그러한 것들이 다 깨졌다고 하셨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데가 있고, 알맞은 곳에 쓰이면 된다는 말씀에 많은 것을 느끼게 하였다. 꼭 의사, 판사, 검사, 대통령만 훌륭한 건 아니다. 자기가 필요한 데서 어울리는 일을 하는지가 중요하다. 요즘 고등학교 1학년인 아들내미를 '커서 무엇이 될까?'와 같은 근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곤 했는데 작가님 말씀을 들으니 엄마로서 응원과 지지는 못해줄 망정 세상의 기대와 속도에 따라가지 못할까 봐 걱정만 한 나 자신을 반성하였다. 나도 모르게 우열을 나누고 한 길만 고집한 것 같아 아들에게 미안하였다.


일상을 견디게 해주는 힘은 '받아주고 이해하는 것'이라는 말씀도 하셨다. 가끔 우리 엄마가 엄청난 걱정과 내 기준에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면 못하게 하는 깐깐한 딸이었는데 받아주고 웃어주는 그런 딸이 되도록 노력을 해봐야겠다. 친구들한테 듣는 의미 없는 이야기는 한없이 다정하게 받아주면서 정작 소중한 엄마의 그런 말들에는 쓸데없이 과하게 논리적이 되어 버렸다. 완전한 내편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자존감이 높아가고 일상의 소중함을 알게 해 준다. 물론 옳고 그름, 세상의 이치는 있으나 그건 때에 따라서 적용하는 것이고 소중한 가족에게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한없이 많이 표현해주고 싶다. 5학년 아이들인 우리 반 귀염둥이들에게도 이런 마음을 가지고 좀 더 온화한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작가님의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나에게 큰 울림이 되어 오고 있었다.


작가님이 언제가 구례 장터 입구에서 크고 좋은 나물을 사려고 했는데 아는 아재가 작가님을 말렸다고 한다.

"이 할머니는 농약 친 곳이랑 길가에서 막 뜯어와, 저기 저 할머니는 산골에서 뜯어오니까 저기서 사소!"

이 말을 들은 작가님은 작고 볼품없지만 청정한 곳에서 수확된 나물을 사 오셨다고 하셨다. 이를 통해 외적인 것으로만 사람을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는 말씀에 나를 또 돌아보게 되었다. 나도 사람의 외형적인 모습, 직업, 그들이 가지고 다니는 차 등만 보고 쉽게 판단했는지도 모른다. 서울에서 온 지인들이 길바닥에 상추나 나물 등을 쭈그려 앉아 파는 할머니들을 보며 안쓰러워하는 모습을 본 작가님이 소위 '서울 것'들에게 한마디 했다.

"이 할머니들은 90% 이상의 확률로 집을 가지고 있어. 60%의 확률로 전답을 가지고 있고, 30%의 확률로 임야를 소유하고 계시지. 자식들이 의사, 변호사인 할머니들도 많으니까 너희들보다 더 부자여!"

진짜 사람들을 보고 쓴 소설이라는 표현이 어렴풋이 이해가 갈 것 같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작가님에게 궁금한 점을 질문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여러 질문 등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질문이 있었다.

"작가님은 부모님의 이념 때문에 힘든 시절을 보내셨을 것 같은데 글이나 지금 강의를 보면 유쾌함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 힘은 어디에서 왔나요?"

"고통은 잴 수 없고, 각자의 고통이 제일 큽니다. 제가 받은 고통은 사회적인 고통으로서 존재론적인 고통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정말 가장 가까운 부모나 가족으로부터 고통을 받은 사람이 많은데 저는 부모님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자랐습니다. 아버지가 무등을 태워주시고 사랑해 주셨어요. 그래서 고통스럽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시대의 아픔을 특유의 유쾌함으로 승화시키고 그것을 소설로 풀어낸 작가님을 보고 감탄만 나왔다. 다양한 질문이 계속 나왔지만 작가님은 낮 12시까지만 하는 약국에 어머님의 약을 타러 가야 하셔서 서둘러 자리를 마무리하셨다. 아쉬움이 있기에 다음 만남도 또 기약할 수 있겠지.


그동안 작가와의 만남, 작가와의 대화를 경험해 봤지만 오늘처럼 빠져든 건 처음이었다. 책으로 한번 나를 웃게 해 주셨고 강의로 또 나를 돌아보게 해 주셨다. 일상을 살아가는 힘을 위해 남편과 아들에게 보다 따뜻한 눈빛과 말투로 완전한 그들의 편이 되어주어야지. 그들로부터 반응이 바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서 서운해하거나 마음이 다칠 일은 없을 것 같다. 나를 바라보는 또 다른 내가 있다는 재밌는 발상이 나의 일상을 더 가볍게 만들어 주는 듯하다.


정지아 작가님과의 좋은 만남,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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