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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을 내어서 무엇하나, 성화를 내어서 무엇하나

by 느긋

아침부터 혈압이 오른다. 단전에서부터 짜증이 올라온다. 자주 지각하는 우리 반 한 여학생 00 때문이다. 교칙은 8시 45분까지 등교하는 것인데 일주일에 2-3번은 기본으로 지각한다. 초등학생이 지각할 수도 있지만 이건 해도 너무한다 싶다. 8시 45분과 55분 사이에 오는 것은 집에 굳이 전화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1교시가 시작되기 5분 전까지 오지 않거나 심지어 시작되었는데도 올 기미가 없으면 어머님께 전화를 하는데 대부분 받지를 않는다. 하이콜도 해보고 휴대폰으로도 전화를 하지만 받지를 않는다. 아이 아버님께 전화를 하면 그래도 잘 받으시지만 패턴은 항상 똑같다.


"00 아버님, 00이 아직 학교에 오지도 않고 어머님이 전화도 받지 않으십니다."

"아, 그래요? 제가 지금 일을 하는 중이라.. 집에 전화해보겠습니다."


또는


"00 아버님, 00이 1시간 전에 학교 온다고 어머님과 통화했는데 아직도 학교에 오지도 않고 어머님께서 전화도 안 받으시네요."

"아, 네. 제가 집에 전화해보겠습니다."


아버님과 통화 후 얼마 지나지 않아 00이 교실을 아주 조심스럽게 들어온다. 1교시 수업도 해야 하고 아이가 학교에 잘 등교할까 계속 신경을 써야 하므로 머리가 조금 아프지만 그래도 무사히 학교에 도착하니 그것만으로 감사하다.


오늘은 1교시부터 이동수업이 있는데 00이 오지 않아 집에 전화하려고 보니 하이클래스에 톡이 하나 있다.

9시 1분에 보낸 톡이다. 순간 한숨부터 나왔다. 미리 연락을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선생님, 00이 발목이 아프다고 하여서 병원을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ㅜ.ㅜ'

바로 전화를 걸었더니 감사하게도 어머님과 연결이 되었다.



"네, 선생님."

"00 어머님, 00이 아픈가요?"

"발목이 아프다고 그러는데 학교는 제가 가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땅을 잘 걷지를 못하겠다고 해서 병원을 가봐야 할 것 같아서..."

"00이 많이 아픈가요? 그럼 병원을 가서 지각인가요? 결석인가요?

"우선은 병원을 갔다가 학교 갈 수 있으면 보낼게요."

"그럼 병원 가서 상황 보고 연락 주실 수 있나요? 어머님 그리고 평소에 연락을 좀 빨리 주시면 좋겠어요."

"(잠시 침묵) 아.. 알겠.. 저는 준비를.. 학교 보내려고 준비를 다 했는데 갑자기 아프다고 그래가지고.."

"알겠습니다. 그럼 병원 갔다가 상황보고 꼭 연락 주세요!"


또 올라오는 묵직한 기분을 누르며 전화 통화를 마쳤다. 아이가 물론 아플 수도 있고 지각할 수도 있지만 이 아이는 평소에 지각이 엄청 잦은 아이고, 지각 시 연락도 잘 되지 않아 다른 아이처럼 그냥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 힘들었다.


'서둘러 준비 좀 시키지. 그러면 아픈 건 빨리 발견할 수 있었을 텐데...'

'빨리 연락 주라는 말에 죄송하다는 말이 그렇게 힘드나?'

'5학년 아이는 그럴 수 있지만 부모님이 5분만 더 일찍 깨워주고 신경 좀 써주면 좋겠다!'



저번 주 생존 수영 전날에도 하루 전에 톡으로 연락이 왔다.

'선생님, 00이 교외체험학습신청서 작성했는데 아직 접수대기가 되어있어서요.'

'어머님, 체험학습은 안내해 드린 대로 학교 홈페이지에 제출해 주시고 미리 3일 전에 학생을 통한 구두나 톡으로 알려주시면 제가 승인해 드립니다. 아직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지 않네요.'

'아~~ 나이스에 올리는 게 아니었군요. ㅜ 거기에 올려뒀는데 홈페이지에 다시 올려놓을게요.'

'네, 확인하고 승인하겠습니다. 그럼 내일 00이 생존 수영 못 가네요.'


학기 초부터 체험학습은 학교 홈페이지에 올리고 구두로 최소 3일 전에 말을 해달라고 여러 번 말을 하고 알림장에도 써놓았지만 안내를 잘 숙지하지 않았나 보다. 올해부터 결석신고는 학부모 나이스 서비스에 올려야 하고, 개별 체험학습은 학교 홈페이지에 올려야 해서 헷갈릴 수도 있겠다 싶지만 기분이 좋지는 않다. 수많은 e알리미 안내장 발송과 알림장 안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생존수영에 안 가는 사람과 참관하는 사람을 미리 조사 했는데 그 전날까지 00은 아무런 표현을 하지 않아 당연히 가는 줄 알고 있었다. '그럴 수 있다'를 하루에 몇 번이고 주문처럼 외운다. 이런 일이 있어도 화가 진정으로 나지 않은 좀 더 유연한 담임교사가 되고 싶지만 나는 아직 한참 멀었나 보다.


3월부터 계속 지각이 잦은 00이를 데리고 사제동행 쿠키 만들기도 하며 여러 대화를 해보며 라포관계를 쌓기 위해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했다. 쉬는 시간에도 자기 자리에서 그림을 조용히 그린다던지 꼼지락꼼지락 하고 있으면 몇몇 여자 아이들이 다가가 말을 건네기도 한다. 워낙 공예를 좋아하는 친구라 교실 뒤편 한쪽에 자리 잡은 양말목공예 코너에 가서 아이들과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며 방석을 만들기도 한다. 워낙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하지 않고 덩치가 엄청 큰 편이라 혹시나 소외되지는 않는지 우리 반에서 제일 신경이 쓰이는 친구이다. 그런대로 학교 생활은 잘 하고 있지만 역시 지각을 많이 한다는 것은 특히 1교시 수업이 시작되고 교실 문을 연다는 것은 아이의 이미지에도 나쁜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까 우려가 된다.


지난 5월 학부모 공개수업 때 00이 똑 닮은 표정이 밝은 어머님의 얼굴을 보고 안심을 했었다. 하지만 때로 협조가 잘 되지 않으니 불필요한 에너지가 많이 소비된다. 그때도 지각을 좀 하기는 했으나 많이 좋아진 상태라 내가 먼저 말을 건넸다.


"어머님, 요즘 00이 지각을 잘 안 하네요!"

"(웃으며)네~"

"00이 양말목공예를 너무 잘해요!"

"그렇죠~ 너무 잘하죠."

다음 날 말이 무섭게 지각을 또 하기는 했지만 1교시 전에만 들어온다면야 '00아, 5분만 좀 빨리 하자!'라며 가벼운 잔소리를 하고 넘어갈 수 있다. 학교에 결석은 하지 않으니 매우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제는 00이 하교 할 때 나에게 조그만 무언가를 내민다. 얼마 전에 만든 건데 선생님 줄려고 계속 가지고 다녔단다. 아주 작은 꽃다발이다. 일일이 그림을 그리고 테이핑으로 바구니 모양까지 만들었다. 지각을 자주 하고 내야 할 서류나 시험지도 제출기한을 잘 어기는 00이지만 선생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다. 그래,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지.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다.

이런 생각이 드니 모두에게 사정이라는 것이 있고, 나 또한 가끔씩 안내 사항을 제대로 읽지 않고 놓치는 적이 있으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비로소 화가 누그러진다. 결국 이 날 우리 00이는 발목 인대가 늘어나 학교에 못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짜증을 내어서 무엇하고, 성화를 내어서 무엇하냐. 나만 손해지. 화가 진정으로 나지 않는 사람이 되려면 얼마나 책을 읽고 수행을 해야 하나? 느긋한 마음을 가지려면 무엇을 더 노력해야 하나?


오늘도 [초역 부처의 말]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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