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스포츠실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제일 좋아하는 과목을 물어보면 단연코 체육이 많이 나온다. 담임교사로서 안전사고 염려와 준비의 부담이 많지만 신체활동을 좋아하고 에너지 넘치는 5학년에게 체육은 제일 기다려지는 시간이다. 체육도 교과서와 잘 짜인 교육과정이 있는 정규 과목으로 학생들에게 단순히 노는 시간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 학기 초에 교과서를 훑어보고 제일 해보고 싶은 활동을 체크해보게 하는 과정을 꼭 거친다. 옛날 방식의 '아나공 수업(아놔, 여기 공 있다, 아이들에게 공만 던져주고 뒷짐 지고 있는 체육수업)'은 선호하지 않아 계속 체육 관련 연수도 받고 훌륭한 선생님들이 올려 놓은 유튜브 영상을 보며 공부를 하고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의 기본 체육 시간은 보통 일주일에 3시간 정도이다. 날씨나 이론 수업 같은 상황으로 아주 가끔 교실 체육을 하긴 하지만 거의 대부분 교실 이외의 장소에서 체육 활동을 하니 교실을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좋은 아이들에게 더욱 쏜살같이 지나가는 시간이다.
우리 학교는 강당과 운동장 이용 시간뿐 아니라 VR스포츠실 시간도 배정되어 있다. 작년에 처음 생겨 학생들이 새롭고 신선한 경험을 하고 있는 중이다. 스포츠 가상현실체험관으로 체육시간 중 학생들이 제일 재밌고 적극적으로 활동을 한다. 운동장과 강당에서 체육을 하는 경우 가끔 컨디션이 안 좋거나 발목이 아파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생기지만 VR 스포츠 활동은 모든 학생이 능동적으로 참여 한다. VR스포츠실은 여러 가지 활동을 실제로 하는 것처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즐거워 보인다. 테니스, 양궁, 볼링, 원반 던지기, 프리킥 등 평소 학생들이 경험하기 어려운 스포츠를 직접 해 볼 수 있다. 지정된 곳에 서서 양궁 화살을 화면에 있는 과녁에 맞힐 수 있고 볼링공도 굴리면 화면에 실제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 프리킥과 원반 던지기는 자신의 거리까지 분석을 해주니 아이들이 즐겨하는 활동 중 하나이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스포츠 규칙을 알 수 있고 다양한 경험을 편하게 할 수 있는 등 장점이 많아 이 시간은 꼭 빼놓지 않기 위해 노력을 한다. 스포츠놀이 부분에서는 풍선 터뜨리기, 미션과일농장, 도둑소탕작전 등 게임을 통해 신체활동을 재밌게 할 수 있다.
학생들이 활동에만 너무 과하게 집중하다 보면 크고 작은 안전 문제들이 생길 수 있으므로 학기 초부터 VR스포츠실 사용에 대한 규칙을 정하고 여러 번 지도를 한다. 우선 화면이 두 개이므로 A와 B팀으로 나누어야 한다. 우리 반에는 숫자가 적혀있는 탁구공을 활용하여 일명 '로또'방식으로 팀을 나누면 불만을 갖는 사람이 없다. 숫자를 뽑으면 번호대로 자연스럽게 팀이 선정된다. 1번부터 12번까지는 A팀이고, 13부터 24번까지는 B팀이다. 각팀에서 번호대로 운동팀과 건강팀으로 바로 나뉘고 번호 순서대로 활동순서까지 정해지므로 매우 효율적인 방법이다. 준비체조와 팀 선정은 교실에서 이루어지고 스포츠실에 가면 바로 활동을 할 수 있으므로 버리는 시간이 없이 착착 진행이 된다. 역시 5학년 같은 고학년은 한두 번만 알려주면 알아서 척척하는 맛이 있어 개인적으로 고학년이 나랑 잘 맞는다.
일단 VR스포츠실로 가면 A팀과 B팀이 각각 동그랗게 자기 자리에 앉는다. 팀장을 뽑고 어떤 활동을 할 것인지 의사결정을 하는 단계를 위함이다. 이 과정이 빨리 끝날수록 활동 시간은 더 길어지기 때문에 팀원의 협조가 매우 필요하다. 교사는 이 과정에서 학생들의 개인적인 성향도 잘 파악할 수 있다. 팀장을 하고 싶어 하는지, 발언권은 얻고 말을 하는지, 자신의 의견만 고집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는지, 규칙과 순서는 잘 지키는지 등 다양한 모습을 관찰 평가할 수 있다. 리더십이 있는 아이들은 팀장을 하고 싶어 하고, 다함께 안전수칙과 규칙을 잘 지켜야 활동 시간이 늘어남을 알기에 이 단계도 대부분 잘 넘어간다. 이 시간에 교사는 프로젝트 화면과 컴퓨터를 켜고 활동 준비를 한다.
어떤 활동을 할 것인지 교사 확인이 끝나면 학생들이 알아서 준비물도 잘 챙기고 활동을 시작한다. A팀과 B팀의 활동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특히 공을 많이 사용하는 활동을 할 경우 공이 넘어가지 않도록 사람들이 서 있어야 한다. 배려와 규칙을 몸으로 익힌다.
A팀은 프리킥과 풍선 터트리기를 선택하였다. 공을 일정한 공간에 두고 차면 속도, 캐리, 거리까지 한눈에 쉽게 분석이 되고 이를 통해 어디를 어떻게 공을 차야 멀리 나가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으니 좋다. 이 과정에서 팀장은 운동팀과 건강팀 팀원들의 활동 순서도 챙겨야 하므로 팀장의 역할이 쉽지만은 않다. 멀리 차는 친구가 있으면 호응도 해주고 어느 부분을 차라고 알려주는 모습이 매우 예쁘다. 풍선 터트리기는 제한 시간 안에 화면에 공을 던져 풍선을 터트리면 되는 활동으로 풍선마다 색이 달라 잘 조준을 해야 한다. 아이들이 쉽게 흥분할 수 있으므로 공을 사람에게 던지지는 않는지, 화면에 잘 던지는지, B팀 영역에 공이 넘어가지는 않는지 잘 확인해야 한다. 너무 의욕이 앞선 나머지 소리를 질러 다른 사람에게 피해는 주지 않는 것도 주의사항으로 일러두어야 한다.
이번에 B팀은 양궁과 풍선 터트리기를 선택하였다. 처음에 양궁 화살 세팅하는 걸 어려워하더니 1학기가 마무리될 쯤에는 아이들이 교사인 나보다 잘한다. 서로 알려주고 도와주는 모습에서 협동의 중요성도 깨달아 나간다. 힘이 좋은 아이들은 화살이 슝슝 잘 지나가지만 방향이 안 맞으면 점수가 낮다는 것도 알게 되므로 신중하게 화살을 한발 한발 쏘는 발전된 모습도 나를 흐뭇하게 만들었다. 볼링의 경우는 실제 볼링과 달리 스트라이크가 많이 나와 아이들의 동기도 유발시킨다.
활동을 정리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면 아이들은 항상 아쉬워한다. 그만큼 활동에 몰입하고 재미있었다는 뜻이다. 교사가 컴퓨터와 프로젝트를 정리하는 동안 아이들도 사용하였던 물품을 알아서 제자리에 갖다 둔다. 이 과정에서도 책임감 있게 정리를 잘하는 지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체육활동은 단순한 신체활동이나 놀이 시간이 아닌 학생들의 전반적인 성향과 인성까지도 알아볼 수 있어 학기말에 종합의견을 작성할 때도 많은 도움이 된다.
학교의 VR스포츠실를 이용해 아이들이 활동을 재밌게 잘하는 것을 보면 정말 시대가 많이 변했음을 실감한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학습의 효율성을 높이는 에듀테크를 활용한 수업도 많이 있어 계속 연수를 받지 않으면 급변하는 사회와 교육현장을 따라가기 힘들다. 교실에도 가상체험이 들어오고 AI를 활용한 교수법이 소개된 지 이미 오래이다. 앞으로 또 어떠한 기술이 교육에 접목될 지 상상하기 어렵다. 몇 년전만 해도 오늘날과 같은 다양한 에듀테크를 상상하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기존에 있는 교육방식도 훌륭한 것들이 많지만 미래를 살아갈 우리 아이들에게 새로운 것을 소개해주고 경험하게 해 주기 위해서 교사인 내가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
오늘도 12살 아이들과 44살 선생님이 살아가는 교실은 다채로운 색깔을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