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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도 정말 고마워!

by 느긋

이상하다. 점심을 먹고 교실로 들어서는데 여느 때와 달리 교실 불이 꺼져있다. 뒷문을 열자마자 우리 반 아이들이 나를 반기며 큰 소리로 외친다.

선생님! 한 학기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받아 순간 눈물이 핑 돌 뻔했지만 가까스로 눈물을 참았다. 다행이었다. 칠판에는 아이들의 메모가 빼곡히 적혀있었고 하나하나 읽어보니 참으로 사랑스러웠다. 내 얼굴도 칠판 한쪽에 깨알같이 그려져 있어 아이들의 귀여움이 더해졌다.


- 선생님, 1학기 동안 고생 하셨어요!

- 2학기에도 잘 부탁드려요! 사랑해요!

- 1학기 동안 감사했어요.

- 저희들 잘 챙겨주셔서 감사해요.

- 감사합니다.

- 선생님 사랑해요!

- 언제나 우리 반은 럭키!

- 개학식 때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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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명의 아이들 중 방학식 때 체험학습을 낸 1명을 제외한 우리 반 친구들의 마음을 잘 읽을 수 있었다. 보통 이런 이벤트는 학년이 끝나는 겨울 방학식 때 주로 하는데 여름방학식 때 하는 경우는 20년 교사 생활동안 처음이어서 그 감동이 더했다. 평소 눈물이 많은 하율(가명)이는 나보다 감동을 받았는지 얼굴이 벌개져 눈물을 보이고 감정이 풍부한 현서(가명)도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여름방학을 해서 무조건 좋아만 할 줄 알았던 우리 반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나도 가슴이 뭉클해졌다.


작년에 이어 5학년을 2년 연속으로 해서 그런지 유달리 시간이 더 빨리 간 느낌이었다. 작년보다 학생 수가 3명 더 늘었지만 덜 힘들었던 이유는 우리 반 아이들이 유독 착하고 순한 이유였을 것 같다. 물론 크고 작은 스트레스와 민원들은 종종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밝고 긍정적인 아이들을 만나 나 또한 교사로서 럭키한 한 학기였다.


무탈하게 여름방학식을 맞이하는 건 당연한 일이 절대 아니다. 구성원 모두가 노력하고 배려했기 때문에 이루어진 기적 같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도 각자의 위치에서 재밌고 의미 있는 학교생활을 위해 노력한 것을 알고 있다. 학부모님들도 아이들이 학교 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격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무엇보다 교사를 믿고 아이들을 맡겨주셨기에 교사의 역량이 더 발휘될 수 있었다. 우주의 기운이 모여 우리 반 23명 전체가 건강한 여름방학식을 맞이한 것에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방학식을 하기 하루 전날 1학기 동안 우리 반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캔바'로 만들어 보았다. 캔바라는 디자인 플랫폼에서 교사인증을 받은 후 반을 개설하였다. 학생들을 초대하면 학생들이 디자인을 맘껏 할 수 있고 '교사에게 보내기'를 하면 학생들의 작품을 쉽게 수합하여 다운받을 수 있어 참으로 신기하고 편리하였다. 처음 캔바라는 에듀테크를 접할 때 이 과정 자체가 너무 복잡해 보여 도전을 망설였는데 아이들이 눈도 깜빡이지 않고 집중해서 하는 것을 보니 역시 배우고 적용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학기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각자 5가지를 뽑아 디자인을 하고 친구들과 공유하였다. 그동안 한 활동을 돌아보니 우리 5학년 1반이 학교생활을 열심히 했다는 게 한눈에 보였다. 아이들마다 기억에 남는 일이 조금씩 차이가 있었지만 주된 내용은 거의 비슷하였는데 아이들에게 좋은 기억을 줄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교사로서 효능감도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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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으로 많이 나온 내용은 학교에서 한 '물놀이'였다. 마을공동체와 협업하여 학교 운동장에 물놀이용 에어바운스를 설치해 학년별로 워터파크를 체험하였다. 친구들과 학교에서 슬라이드도 타고 물놀이를 즐기면서 얼마나 신이 났을지 활동 내내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던 게 기억에 남는다. 올해 아이들이 안전요원분들의 지시도 잘 따르고 질서도 잘 지켜서 한 명도 다치지 않고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게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체육대회'도 아이들 마음속에 좋은 기억으로 남았는지 많은 아이들이 이 내용을 넣었다. 학년별로 한 체육대회로 하루 종일 다른 반 친구들과 체육을 하니 얼마나 재미 있었을까. 역시 아이들은 뛰어놀면서 에너지를 발산할 때 제일 어린이다운 것 같다. 선생님들이 열심히 준비한 만큼 안전사고도 나지 않고 모두 다 열심히 참여했던 게 참 좋았다. 학교에서 아이스크림도 사주었는데 땀을 흘린 후 친구들과 먹는 '설레임'의 맛은 어른들이 먹는 그 맛과 분명 달랐으리라 본다.


'샌드위치 만들기'는 교사인 나도 기억에 많은 남는 내용이다. 실과시간에 '건강한 간식 만들기'가 나오는데 아이들은 며칠 전부터 설레어했다. 23명 분 샌드위치 만들기 재료를 사기 위한 장을 보는 게 쉽지 않았지만 아이들이 직접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는 것을 보니 스스로 뿌듯함도 느낀 것 같았다. 집에서 부모님이 만들어 주는 것을 그냥 먹는 것도 좋지만 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 만들어 먹으니 더 행복해 보였다. 왜 학교에서 친구들과 먹는 건 항상 맛있는 거지? 체험과 활동은 공부라고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좋아하는 것 같다.


'생존수영'도 많은 아이들이 답변을 하였다. 올해 6학년은 여러 가지 이유로 생존수영은 이론만 진행이 되어 우리 5학년은 초등학생으로서 마지막 생존수영 실습을 하는 학년이 되었다. 몇몇 친구들은 개인적인 이유로 참관만 하였지만 대부분 아이들이 생존수영 실습에 잘 참여하였다. 생존수영 실습을 끝낸 후 약간의 물놀이 시간을 주셨는데 이때 아이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교실에서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생존수영과 같이 실제적으로 꼭 필요한 수업이 소중한 경험이 되었으리라 본다.


'도덕 시간 춤추기'도 우리 반이 열심히 참여하였다. '긍정적인 생활'이라는 주제의 단원에서 '넌 할 수 있어, 포기하지 마' 춤을 한 달 동안 틈틈이 연습한 후 모둠별로 발표를 하였는데 생각보다 아이들이 열심히 준비하여 좋았던 기억이 있다. 이 과정에서 모둠별로 잘 참여하지 않거나 연습을 게을리하는 모둠원을 잘 챙기는 모둠장의 모습과 연습을 하며 발전되는 본인들의 모습을 느끼는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발표 당일에는 동영상으로 촬영하여 다 함께 감상하였는데 확실히 올해 아이들은 이런 춤이나 노래 등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모두 다 잘 참여하고 서로를 격려하며 박수를 쳐주는 모습이 좋았고 동영상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감상하며 즐긴 모습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 밖에도 공기정화 식물 심기, 장수풍뎅이 키우기, 캔바 하기, 자원 순환의 날, 급식 잔반 남기지 않기 등 다양한 일들을 손꼽았다. 선생님과 만난 개학 첫 날도 많은 아이들이 쓴 걸로 보아 나 또한 개학 첫날의 떨림도 상기되었다. 선생님과 인사하며 주먹인사를 한 게 이제는 자연스러운 5학년 1반의 교실 풍경이 되었지만 처음 맞댄 두 주먹의 온기를 잊지 않은 아이들이 참으로 고마웠다.


나름 열심히 한다고 하였지만 부족한 게 많은 담임 선생님을 만나 힘든 점도 있었을 텐데 좋은 것만 기억해 준 우리 반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정말 진심으로 고맙다. 기질이 다 다른 23명의 아이들이고 그중 장난꾸러기도 많이 있어 잔소리도 많이 하였지만 무사히 여름방학을 맞이하게 도와준 우리 반 착한 아이들에게 한없이 고맙다.


여름방학 전 수없이 많이 했던 안전교육을 벌써 까먹었을 테지만 안전하고 무탈하게 방학 잘 보내고 건강한 모습으로 개학식날 모두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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