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동행 영화관람
지난 3월 '2025년 이주배경학생, 북한배경학생을 위한 드림멘토링 운영 계획' 공문을 받았다. 이 사업의 추진 목적을 살펴보니 다음과 같았다.
가. 정서 및 진로 지원 활동으로 국내 문화적, 교육적 제도에 대한 이해 및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이주배경학생 및 북한배경학생 지원
나. 사제간, 학생 간 소통과 공감의 기회 확대 및 관계 형성을 통한 이주배경 학생 및 북한배경학생의 학교 적응력 향상
다문화교육 담당자로부터 공람된 공문 내용을 살펴보자마자 우리 반 다문화가정 학생인 다빈(가명)이 떠올랐다. 베트남 국적의 엄마를 둔 다빈이는 학교 생활도 평소 재밌고 성실하게 잘하는 멋진 친구이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며 무슨 활동이든 열심히 하는 다빈이는 한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 왼쪽 귀의 외이도가 폐쇄된 채로 태어나 한쪽 귀 모양이 남들과 다르다. 이를 가리기 위해 얼마 전까지 여느 남자아이들과는 달리 머리를 단발처럼 길게 기르고 다녔다. 얼굴도 예쁘장하게 생겨 간혹 여학생으로 오해받는 경우도 있었다. 보기보다 운동도 잘하고 웃는 모습이 예쁜 다빈이와 함께 드림멘토링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머리를 짧게 쳐서 남들과 다른 모양의 한쪽 귀를 당당하게 드러내놓고 다닌다. 이런 모습을 보니 원래도 엄마미소를 짓게 하는 다빈이가 더 사랑스러워 보여 신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용으로 심리 정서 활동과 연계한 활동이 있었다. 현장 견학 등 교내외 체험활동과 사제간, 학생 간 관계 형성을 위한 문화 활동이 주된 내용이었다. 다빈이 멘티가 되고 담임인 내가 멘토로 활동하여 지원된 예산 안에서 많은 문화 활동을 할 수 있었다. 이를 위해 먼저 다빈이 아버님으로부터 학부모 동의서를 받아야 했다. 한국말이 쉽지 않은 어머님과는 소통이 어려워 주로 아버님에게 연락을 드린다. 이 사업에 대해 처음에는 어색함을 표하셨지만 충분히 잘 설명을 해드리니 동의서를 써주셨다.
"다빈아버님, 우리 다빈이와 드림멘토링을 하려고 하는데 별건 아니고 담임교사인 저와 방과 후에 영화도 보고 맛있는 것 먹으면서 다양한 활동하는 거예요. 한 달에 한번 정도 활동할 계획인데 동의하시면 다빈이 편으로 동의서 보내주세요."
"어떤 건지 잘 모르는데 일단 관련 서류 보고 확인할게요!"
학부모 동의서를 받고 담당자에게 드림멘토링 운영계획서를 제출한 후 얼마 뒤에 선정되었다는 공문을 받았다. 지난 몇 개월 동안 계획한 대로 멘토링을 잘 진행 했고 그때마다 좋아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신청을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다빈이와 영화를 보는 프로그램을 운영하였다. 드림멘토링 사업은 다문화가정의 학생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활동 시 학생에게 혹시나 있을 낙인효과가 발생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 멘티, 멘토 1:1 매칭이 원칙이나 필요시 이주배경학생을 포함하여 6명 내외로 활동이 가능하다. 물론 우리 다빈이는 자신이 다문화가정이라는 것을 전혀 숨기지 않고 우리 반 친구들도 다문화가정을 자연스럽게 접하고 있어서 낙인효과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그래도 다빈이와 친한 남자친구들과 함께 총 3명이서 영화로 보기로 하였더니 다빈이가 더 좋아하였다.
다빈이를 포함하여 다른 두 친구 혁주(가명)와 준서(가명) 어머님께 사제동행 영화관람 동의를 받았다. 며칠 전부터 아이들은 선생님과 영화 본다는 사실에 엄청 들떠있었고 학부모님들도 흔쾌히 아이들을 믿고 맡겨주셨다. 아이들을 태우고 운전을 하는 것이 안전상 엄청 부담되어 택시를 타기 위해 큰 길가로 나갔다. 카카오택시로 호출한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어떤 할머니께서 우리들을 보시며 매우 흐뭇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아이고, 너무 예쁘고 잘 생겼네! 건강하게 잘 자라라!"
"감사합니다!"
갑자기 훅 들어온 처음 본 할머니의 칭찬에 놀랐지만 아이들이 얼마나 예뻐 보였으면 그러셨을까 이해도 되었다. 택시가 곧 도착하고 차에 올라타니 기사님이 반갑게 맞이해주신다. 아이들도 인사를 예의 바르게 하니 정말 뉘 집 아들들인지 진짜 예뻤다. 뒷좌석에 쪼르르 탄 아이들이 안전벨트를 맨 것을 확인하고 호출 시 입력하였던 목적지를 다시 한번 말씀드렸다.
"롯데시네마 부탁드립니다."
"(아이들에게) 선생님하고 영화 보러 가냐?"
"네~!"
"너무 좋겠다!"
뒷자리에서 장난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아이들이 기사님 눈에도 예뻐 보였나 보다. 갑자기 자유시간 초콜릿을 아이들에게 하나씩 나누어주신다. 조수석에 탄 나에게도 초콜릿 선물을 잊지 않으신다.
"감사합니다!"
예의 바르게 인사도 잘하고, 어린이다운 순수하고 밝은 기운이 차안 가득 채워져 참으로 좋았다. 택시에서 내린 후 영화관에 가기 전 근처 편의점에서 팝콘 과자와 음료수를 하나씩 사줬다. 1인당 4000원씩만 간식 예산을 책정하여 영화관 팝콘은 사주지 못하였지만 아이들은 정말 좋아하였다. 작은 것에도 감사를 느끼는 아이들 모습을 보니 보람을 느꼈다.
영화관으로 걸어가는 길에 평소 말이 없는 혁주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선생님, 저 영화관 처음으로 와봐요!"
"어, 진짜?"
"넷플릭스에서만 영화 봐서 영화관은 처음이에요."
대화를 듣고 있던 준서가 본인도 영화관이 처음이라고 하였고 다빈이는 두 번째라고 하였다. 영화를 집에서 편히 보는 시대긴 하지만 영화관에서 보면 몰입이 더 잘되므로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오늘 볼 영화는 '드래곤 길들이기' 실사판이다. 애니메이션으로도 재밌었는데 실사판이라니! 이런 류의 영화를 좋아하는 나의 취향도 반영되었지만 5학년 남학생들이 좋아할 영화라는 것에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영화관으로 들어가기 전 화장실도 다녀오고 앞에서 기념촬영도 하였다. 평일에 학원도 빠지고 영화를 보다니 얼마나 신이 날까? 리클라이너 좌석을 보고 좋다며 놀라는 아이들이 귀여웠다. 버튼을 누르자 다리가 올라가며 편안한 자세로 바뀌니 감탄을 하는 모습도 보였다. 일찍 자리에 앉아서 영화관 안에는 우리밖에 없어 신나게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한둘씩 들어오자 자연스레 목소리도 줄였다. 기특하였다.
"과자 터서 음료수랑 먹어!"
"미리 먹으면 영화 볼 때 먹을 게 없어요."
영화가 시작되자 조심스럽게 과자 봉지를 뜯는 아이들이었다. 직장인으로서 만성피로를 가진 나는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조금 졸았는데 아이들은 영화를 아주 신나게 본 모양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오면서 '진짜 재밌었다'는 피드백을 아이들로부터 받으니 기분이 좋았다. 밖에 나오니 오후 5시쯤 되었고 우리는 바로 햄버거 가게 '버거킹'으로 갔다.
"선생님, 저 버거킹 처음 와봐요. 롯데리아는 와봤어요."
"저도요."
순수하게 잘 표현하는 아이들을 보니 나도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불고기 와퍼 세트 양이 꽤 많아 다 먹을 수 있는지 물어본 나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한창 먹성 좋은 세 녀석들은 버거와 감자칩 그리고 콜라를 수다 떨며 남김없이 맛있게 먹었다.
배를 두둑이 채우고 택시를 탔는데 이번 택시 기사님도 아주 좋으셨다. 아이들이 시끄럽게 계속 이야기해도 별다른 말씀을 하지 않으셨고 인사도 잘 받아주셨다. 학교 앞까지 무사히 잘 온 후 아이들과 헤어지고 사제동행 영화관람도 무사히 잘 마쳤다. 드림 멘토링 멘티인 다빈이뿐만 아니라 혁주, 준서와도 좋은 추억을 쌓아 교사로서 참으로 흐뭇하였다. 학부모님께 사진을 보내드리니 매우 감사해하셨고 나도 보람을 느꼈다. 그냥 단순히 담임선생님과 함께 영화 보고 햄버거 먹은 게 전부였지만 아이들 마음속에 좋은 기억으로 남으면 좋겠다. 우리 다빈이가 건강하고 밝게 잘 자랄 수 있도록 드림멘토링 활동이 아주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반짝 반짝 빛날 너의 내일을 응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