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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긋 Jun 16. 2024

나는야 이 구역의 말벌아저씨!

선생님의 신경은 온통 너희들이야.

 오늘도 아주 흡족한 급식을 두둑이 먹고 4층에 있는 5학년 연구실까지 계단을 이용해 단숨에 올라간다. 후식으로 나온 과일 화채까지 남김없이  먹은 내 뱃살에 대한 최소한의 양심이다. 요즘 우리 반 텃밭상자에서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잘 자라는 상추를 급식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나눠 먹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고, 생각보다 상추를 좋아하는 아이들의 모습도 귀여워서 웃음이 난다. 역시 막 수확한 상추의 참 맛을 잘 아는구나.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는 상추를 보고 어떤 브런치 스토리 작가는 '무섭다'는 표현을 썼는데 우리 반 아이들에게는 상추가 벌벌 떨고 있다. 집보다 학교에서 먹으면 왜 뭐든지 더 맛있을까?


 열심히 계단을 올라 4층의 5학년 연구실에서 양치를 하고 의자에 잠깐 앉아 동학년 선생님들과 곧 있을 수련활동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연구실 문에 나 있는 조그마한 유리창에 내가 앉아있는 자리에서 보이면 안 되는 다른 반 남학생의 머리가 쓱 지나갔다. 성인 키 정도 되어야 보이는 위치인데? 당장 어제 있었던 일이 내 머릿속으로 0.01초 만에 소환되었다. 


 어제도 급식을 먹고 열심히 계단으로 올라가는 도중 3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우리 반 A군이 3반 B군의 목마를 태워주고 있는 게 아닌가? 이번 수련활동의 여행자 보험 비용에서 왜 남학생이 조금 더 비싼 지 또 한 번 느낄 수 있는 장면이다. 두 남학생 모두 5학년치곤 왜소한 체격인데 목마를 태워주다니... 떨어지거나 목이라도 다치면 어쩌려고 이런 행동을 하는 건지 당최 이해가 되질 않았다. 당장에 내려오라고 하고, 그 위험성에 대해 지도 후 다시는 목마를 태우거나 타지 않겠다는 다짐도 받아 내었다.


 하지만 오늘 다시 연구실 문 유리창을 통해 보인 건 목마를 하고 복도를 지나가는 3반의 B 군이었다. 나는 선생님들과 이야기 도중 우사인 볼트보다 빠르게 그 친구에게 갔다. 올림픽 경기 중 출발 신호를 듣고 폭발적인 순간의 힘으로 그 누구보다 재빨리 튀어나가는 그 육상선수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내 눈은 틀리지 않았다. 어제 나와 한 약속은 국에 말아 맛있게 먹었나 보다. 아무리 우리 학교 급식이 맛있어도 이건 아니지. 이번에는 같은 반 C군이 B군 목마를 태워주고 있었다. 3반 담임 선생님이 놀라서 따라 나오셨고, 3반 선생님이 옆에 계신데도 담임이 아닌 내가 아이들에게 엄하게 훈육을 했다. 위험하게 이게 무슨 짓이냐고. 잘못하다 떨어지면 크게 다칠 수 있다고. 어제에 이어 오늘도 B군이 목마를 타고 있었고 이번에도 다시는 안그러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두 번 다 나에게 걸렸으니 3번째는 없을 거라고 한번 더 믿고 싶다. 어쨌든 앞으로 그러지 않겠다는 아이들에게 더이상 무슨 말을 할 수가 있을까? 한번 더 절대 위험한 행동은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 교실로 돌려보냈다.

 

 연구실에 돌아오자 다른 동학년 선생님들이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시길래 이번에는 래퍼 에미넴이 되어 속사포로 그 내용을 말한다. 이야기를 다 들은 2반 선생님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 나를 보고 말을 꺼내신다.


(2반) "선생님, 방금... 그분 같았어요."

(1반, 나) 혹시 말벌 아저씨?

(2반) 푸하하, 맞아요! 맞아.

(4반) 하하, 맞아요! 말벌 아저씨!! 


 우리는 순식간에 말벌 아저씨로 하나가 되어 큰 소리를 내며 웃었다. 요즘은 집보다 학교에서 소리 내어 웃는 순간이 더 많은 것 같다.


(3반) 말벌 아저씨? 뭐야? 나만 몰라요?

(2반) 말벌 아저씨 몰라요? 자연인에 나오셨던 말벌 아저씨!

 

 궁금해하는 3반 선생님을 위해 2반 선생님은 바로 유튜브에서 검색을 했고 우리는 그 동영상을 보고 또 한번 박수를 치며 눈물 나게 웃었다.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MBN 프로그램에서 농사와 양봉을 하시는 자연인이 오래전에 소개되었는데 지금은 레전드 영상이다. 꿀벌통 근처에 말벌이 나타나면 무슨 일을 하고 있든 간에 말벌을 잡으러 가는 모습이 많은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어서 나도 잘 알고 있는 분이었다. 꽤 먼 거리였는데 어떻게 말벌을 보실 수 있지? 눈이 정말 좋으신가 보다. 후다닥 뛰쳐나가시는 순발력과 근력이 대단하시고 무엇보다 꿀벌을 지키고자 하는 자연인의 순수한 마음이 돋보였다. 평소 인터뷰를 할 때는 엄청 수줍어하시는데 말벌을 잡을 때만큼은 반전이 있었고, 이게 반복되니 자연인이 말벌을 잡기 위해 뛰쳐나갈 때 연예인이 쳐다보지도 않는 장면은 너무 재밌었다. 고추를 다듬고 있어도, 깨를 털고 있어도, 연예인에게 등목을 해주고 있을 때도 온통 신경이 꿀벌통에 가있는 자연인의 모습을 보고 나는 감동까지 받았다.


자연인의 말벌 잡는 모습 <출처: 유튜브 MBN Entertainment , 윤택 X 말벌아저씨 '자연인 레전드 영상'>

 

 나도 이 말벌아저씨와 비슷하게 온통 신경이 학교에서 만큼은 우리 아이들에게 가 있는 것일까? 5월이 지나 6월 중순에 들어서자 아이들의 에너지가 더 발산을 하는 것 같다. 혹시라도 안전사고가 날까 우리 5학년 선생님들은 항상 주의 깊게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특히 7월 초에 있을 수련활동을 대비하여 사전안전교육에 힘쓰고 있다. 엄마이기도 한 나는 모든 엄마들이 그러하듯 아이를 키울 때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학교에서 우리 아이들을 대할 때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학교는 많은 아이들이 함께 생활하는 곳으로 작은 일도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항상 긴장을 하고 있어야 한다. 안전불감증이 곧 사고를 뜻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내가 우리 반을 넘어서 다른 반까지 오지랖을 부리는 너무나도 당연하다. 오늘 1반 선생님인 나에게 잘못 걸려 혼이 났다고 생각할지도 모를 3반의 그 친구가 선생님들의 마음을 몰라주어도 괜찮으니 안전하게만 학교 생활을 하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꿀벌들을 지키기 위해 언제 어디서든, 무엇을 하고 있든, 거리가 아무리 멀든 말벌만 보고 뛰어나가는 자연인의 모습에서 안전한 학교 생활을 위해 아이들만 지켜보고 있는 우리 선생님들의 모습이 순간적으로 보였다. 학교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작은 일이라도 예민하게 생각하는 선생님들을 보고 문득 '응답하라 1988' 드라마의 대사가 떠올랐다.


내 신경은 온통 너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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