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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긋 Jul 19. 2024

대한민국 아줌마의 버킷리스트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인생에서 내가 하고 싶은 건은 무엇일까? 내가 죽기 직전에도 후회가 남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지금 당장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연일 뉴스에서 안 좋은 사고들이 나오는 요즘이다. 인생의 허무함도 느껴지고 내가 뉴스의 주인공이 아니란 점에 감사함을 느끼고, 이런 감사함 속에 인간의 불편하고 못생긴 마음도 읽는다. 현재의 삶에 충실하면서 노후도 대비하는 삶은 정말 이상적일 것이다. 아직 오지 않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지나치게 희생할 필요도 없고, 현재의 삶만 바라보며 너무 안일하게 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우리 아빠가 항상 말씀하시는 중용(中庸)의 자세가 인생의 진리임을 또 한 번 깨닫는다.


 현재의 삶에 충실하고 보다 건강한 미래를 위해 나의 버킷리스트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막연하게 하고 싶은 것은 많았으나 막상 글로 정리하려고 하니 쉽지 않다.


1. 근육 짱짱 아줌마가 되기

 지금은 뱃살이 주체가 안 되는 중년의 아줌마이다. 사실 젊었을 때도 지금과 몸무게 차이는 별로 나지 않으나 확실히 뱃살이 많이 나오고 있다. 10년 전에 산 옷도 입기는 하지만 왠지 모르게 옷핏이 살지 않고 조금 불편하다. 다이어트에 성공하고 싶다. 정확히 말하면 근육 짱짱 아줌마가 되고 싶다. 지금부터 천천히 근육을 만들어 놓아야 나의 꿈인 명랑한 할머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흰머리에 레깅스와 탑을 입은 근육질 할머니가 나의 꿈이다. 40대부터 조금씩 준비를 해놓아야만 그 꿈을 이룰 수 있는데, 하.. 오늘도 먹는 건 쉽고 뛰는 건 어렵다. 오늘부터 스쾃 100개씩 100일간 도전을 시작한다.


2. 혼자 제주도 여행 가기 

 나 혼자 여행을 간 적은 한 번도 없다. 항상 가족들과 함께 다녀 혼자 여행을 하고 싶으나 엄두가 나질 않는다. 그동안 남편이 운전도 하고 무거운 짐도 들어주는 일상에 길들여져 있는 내가 혼자 여행을 하고 싶다는 것은 대단한 도전이자 모험이다. 아직 용기가 나질 않지만 혼자 제주도 티켓을 끊고, 차 렌트를 하고 마음 가는 대로 쉬고 먹고 놀고 싶다. 잉여로운 삶을 좀 살아보고 싶다. 언제쯤 나는 느긋해질 수 있을까?


3. 부모님 모시고 해랑 열차 여행 가기

 부모님을 모시고 효도상품으로 인기인 해랑 열차 여행을 가고 싶다. 현실을 즐길 줄 아시는 아빠는 흔쾌히 가자고 하셨고, 엄마는 '그 돈이면 집에서 편안히 맛있는 거 사 먹는 게 지!'라는 반응을 보이신다. 엄청 가시고 싶어 하는 아빠를 위해 마지못해 가겠다고는 하시지만 아무래도 돈을 아끼려고 주저하시는 엄마를 보면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 평생을 본인을 위해 제대로 돈 한번 못써보시고, 가족을 위해 희생만 하시는 엄마를 위해 해랑 열차 여행 예약에 꼭 성공하고 싶다.


4. 외국으로 어학연수 가기

 영어를 유창하게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매우 부럽다. 영어교담도 많이 해서 영어를 아주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영어실력은 교실영어에 매우 국한되어 있다. 영어를 좀 더 잘하기 위해 몇 달이라도 해외로 어학연수를 가고 싶다. 남편에게 말을 하니 '또 시작이군!' 하는 눈빛이 나온다. 예전에 하와이로 국외 심화연수를 25일 다녀온 것으로 만족하란다. 솔직히 나 혼자 국내 여행도 못하는데 해외로 어학연수를 가는 건 솔직히 나도 무섭다. 하지만 이 두려움을 깨고 날아오를 날이 있을 거라 믿고 목록에 과감히 넣어본다.


5. 마라톤 5km 도전하기

 러닝을 한번 시작해볼까 한다. 요즘에 유행이라 관심이 생겼다. 러닝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멋지다. 나도 멋진 아줌마가 되고 싶다. 덕분에 운동복을 몇 벌 사놓고 러닝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지만 날씨를 핑계로 시작조차 하지 않고 있다. 열심히 몸을 만들어 러닝을 하며 내 안의 잡념과 고민을 털어버리고 싶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살도 빠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한다.


6. 몸무게 55kg 만들기

 만삭 때 몸무게가 62kg이었는데 지금은 키 164cm에 58kg이라는 스펙을 가지고 있다. 이대로 내 몸을 가만히 두어서는 안 된다. 앞으로 여성호르몬이 떨어지면 더 살이 찔 텐데 내 몸을 방치하면 안 된다. 나름대로 운동은 하고 있지만 식단이 다이어트에서 매우 중요하므로 이를 좀 신경 써야 한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게 육아와 다이어트 같다. 자식과 남편은 내 맘대로 되지 않지만 내가 내 몸 하나 마음대로 조절 못하면 다른 일을 어떻게 잘할 수 있을까? 몸무게를 좀 줄여서 몸과 마음도 가벼워지고 싶다. 자신감이 올라가는 건 덤이겠지!


7. 쇼팽의 녹턴 악보 없이 피아노 치기

 악보를 보고 치는 것도 어려운데 외워서 치겠다는 마음을 먹다니! 정말 나란 여자 대단하다. 하지만 이 세상에 불가능이란 없는 법이다. 꾸준히 하면 20년이 걸려서라도 칠 수 있을 거라 본다. 쇼팽의 녹턴을 우아하게 칠 수 있는 할머니가 된 나 자신을 상상하며 입에 살짝 미소가 머금어진다. 포기하지 않고 아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 보자.


8. 골프 스코어 100 만들기 

 필드 성적 100을 만들고 싶다. 일파만파 없이, 멀리건 없이, 드롭 없이 순수하게 경기 스코어를 100으로 만들고 싶다. 지금 상태로는 아주 먼 이야기지만 이것 역시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연습하면 언제가 이룰 수 있을 거라 본다. 솔직히 자신은 없지만 그냥 질러본다. 골프를 좋아하는 남편과 나이 들어서도 함께 할 수 있는 취미를 만난 거에 감사함을 느끼고 오늘도 퇴근 후 묵묵하게 연습장으로 향한다.


9. 자수미싱 사기 

 요즘 나에게 제일 큰 관심사는 자수미싱이다. 네임텍을 만들어 선물도 하고 싶고, 온갖 것에 자수를 새기고 싶다. 비싼 가격의 자수기계를 선뜻 사지 못하고 있지만 정보를 조금씩 모으고 있다. 왜 이렇게 손으로 사부작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지 내가 나 자신을 생각해도 흥미롭다. 유튜브에서 자수기계에 영상도 살펴보며 능숙하게 기계를 다루고 퇴직 후 창업을 하는 장면도 잠깐 상상해 본다. 이 정도면 MBTI에서 S가 아니라 N인것 같다.


10. 친한 동생 H와 1박 2일 여행 가기

 내가 제일 좋아하고 성향이 잘 맞는 친한 동생 H가 있다. 그녀와 함께 먹고 싶은 거, 가고 싶은 곳이 굉장히 많다.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우리는 성향과 성격이 잘 맞아 그녀와 함께 있으면 재미와 편안함을 동시에 느낀다. 둘 다 일상에 치일 때도 많지만 서로에게 유쾌함과 정보를 주며 의미 있는 존재가 되어 있다. 둘만의 여행을 다녀오고 싶다. 그리고 정보왕인 그녀와 이케아를 꼭 한번 가야 하는데 빨리 그날이 오면 좋겠다.


  내가 뭘 좋아하고 원하는지 그동안 많이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잘 모르겠다. 뭘 알아야 쓰는데 생각보다 경험을 많이 한 것 같지만 딱히 떠오르지 않는 것은 100% 경험부족이다. 담대하지 못한 성격도 과감한 무언가를 생각하지 못하는 것에 영향을 끼친다. 거창한 버킷리스트 보다 소소한 행복을 주는 리스트를 찾는 과정을 통해 나의 취향을 더 알아보아야겠다. 역시 나를 이해하고 알아가고 발견하는 것은 늘 짜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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