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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긋 Jul 17. 2024

대한민국 아줌마의 재봉틀 도전기

 중고거래 앱 '당근'에 설정해 놓은 키워드 알림이 뜬다. '재봉틀'이라는 알림이 뜨자마자 바로 구매자에게 채팅을 보낸다. 'brother'라는 브랜드의 재봉틀이 단돈 5만 원! 바로 구매 의사를 밝히고 답 오기를 기다린다. 그 사이 판매자에게 보낸 다른 사람들의 채팅 수가 좀 늘어난다. 판매자로부터 언제 올 수 있냐는 답장을 받고 바로 갈 수 있다고 서둘러 채팅창에 입력한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거래 약속을 성사시켜 마음이 콩닥콩닥 두근거렸다. 약속장소로 가니 어떤 중장년의 남자분이 나와계셨다. 친절하게 작동법까지 알려주시고 윗실과 밑실을 끼우는 방법도 직접 보여주신다. 재봉틀에 관해 일자무식이었지만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야무지게 재봉틀을 들고 집으로 향한다.


 집에 오자마자 재봉틀을 켜본다. 판매자분이 대충 설명을 해주셨지만 기계치인 나는 어떻게 하는지 도저히 생각이 나질 않는다. 유튜브에 제품 브랜드와 모델명을 치니 아주 친절하게 사용하는 법이 나온다. 역시 대단한 유튜브다. 없는 자료가 없다. 밑실과 윗실을 차분히 바꿔 끼고, 밑실을 감는 법도 연습을 해본다. 실 끼우는 것도 복잡하게 보였지만 생각보다 금방 손에 익혀져 자신감이 마구 샘솟는다.


 1년 전 지자체 평생학습관에서 운이 좋게 재봉틀 체험을 할 수 있었다. 드르륵하면 뚝딱 뭔가가 나오는 재봉이 참 매력적이었다. 생활에 필요한 파우치, 앞치마, 에코백, 필통 등을 내 손으로 만들어 보니 더 배워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평생학습관에서는 강사님이 시키는 대로 따라만 했을 뿐 온전히 내 것이 아니어서 혼자 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믿는 구석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유튜브이다. 재봉의 기초를 찾으니 친절하고 세세한 설명 영상이 많이 나와 있다. 간단한 생활 용품은 굳이 학원에 다니지 않고 집에서 독학으로 가능할 것 같았다. 일단 재봉틀은 구비가 되어 있고, 필요한 물품을 검색하며 이것저것 알아보고 준비를 한다. 그 과정 역시 유튜브 영상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고 하나하나 준비 해가는 맛이 새롭고 재밌었다.

 

 재봉틀 준비는 시작에 불과했다. 필요한 준비물이 엄청나게 많았다. 재봉용 방안자, 원단을 자르는 가위, 천에 표시를 하고 열이 가해지면 지워지는 수성펜, 시침핀, 지퍼, 라벨, 와펜, 자석단추, 지퍼머리 등 부자재가 무궁무진하였다. 지퍼만 해도 호수에 따라 크기가 달랐고 코일인지 메탈인지 재료에 따라 종류가 많아 공부할 게 많았다. 재봉틀은 단 돈 5만 원이었는데 부자재와 원단은 그 보다 몇 배나 더 들었다. 원단도 그 종류가 상상을 뛰어넘는다. 처음에는 소품에 맞는 원단을 고르는 것도 쉽지 않았으나 이제는 어느 정도 나에게 필요한 원단을 구분할 수 있다.


 내 수준으로는 에코백과 파우치, 필통 정도만 만들 수 있었지만 디자인에 따라 결과가 달라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밌게 만들었다. 남편을 위한 가방도 하나 만들어줬고, 아들은 이제 더 이상 필통을 사지 않게 되었다. 파우치와 에코백도 색깔별로 만들었다. 주변에 선물을 하나씩 하면 핸드메이드 제품이라 너무 신기해하고 고마워하여 뿌듯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남편은 직장에서 파우치 주문까지 받아온다. 몇 개를 선물하니 커피쿠폰이 답례로 와서 좋았다. 점점 나름의 실력이 늘어 에코백을 넘어서 지퍼가 달린 가방까지 만들어 볼 수 있었고 헤어밴드, 카드지갑, 휴대폰가방, 모자까지 영역을 넓혀갔다. 역시 유튜브를 잘 활용하면 평생학습을 혼자서도 마음껏 할 수 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파우치와 필통을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한번 뭔가를 시작하면 완전 몰입을 하는 성향이 있어 몇 개월동안 재봉에 빠져 살았다. 그러나 너무 많이 만들었는지, 욕심을 부려 많이 사놓은 원단에 질려버렸는지 한동안 재봉틀 소리는 우리 집에서 들리지 않게 되었다. 재봉틀 위에 먼지만 쌓여가고 있는 와중 우리 고장에서 '핸드메이드 페어'가 열린다는 현수막을 차를 타고 가면서 우연히 보게 되었다. 나와 취향과 성향이 잘 맞는 친한 동생 H에게 바로 전화해서 가자고 했더니 흔쾌히 약속시간을 정한다. 그녀도 재봉에 한창 관심을 올리고 있었던 터라 우리 둘은 기쁜 마음으로 핸드메이드 페어에 갔다. 그곳에는 다양한 수공예품을 전시하고 있었고 당연히 우리 눈에는 재봉틀과 원단이 들어왔다. 다양한 원단을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사서 집에 오니 잠자고 있었던 재봉에 관한 나의 열정이 다시 꿈틀대기 시작하였다.


이 많은 원단이 2만 원이라고? 완전 럭키 느긋이잖아!

 남들이 보기에 별거 아닌 파우치를 만드는 과정 자체가 나에게 기쁨을 준다. 내 손으로 뭔가 하나씩 만들어 내는 과정이 여전히 신기하다. 핸드메이드를 붙이고 라벨지로 소품의 완성도를 높인다. 주변에 선물을 할 때 사람들의 잠깐 반짝이는 눈도 또 하나의 설렘 포인트이다.


 재봉틀을 이용하여 소품을 만드는 것을 왜 좋아하는지 생각해 본다. 이것을 손바느질로 하면 몇 날 며칠 걸릴 것이다. 그에 비해 재봉틀을 이용하면 드르륵, 뚝딱이다. 역시 느긋하지 않은 나의 성격과 맞다. 또한 창구멍을 통해 뒤집으면 안으로 지저분한 실밥이나 못생긴 부분이 싹 가려진다. 뒤집어서 결과물을 확인할 때 그 쾌감은 해본 사람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몰입을 해서 시간도 엄청 빨리 간다. 내손을 통해 뭔가 탄생한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또 한 번 재봉에 대한 열정이 타올라 기계자수에도 관심이 간다. 내 삶의 지향성인 미니멀라이프와 멀어지고 있지만 자수미싱은 언젠가 꼭 하고 말 테다.


 이 세상에는 재밌고 신기한 게 너무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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