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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 가게

의류 교환 파티 '바꿔 입장'

by 느긋

3년 전 나 혼자만의 프로젝트를 한 적이 있다. 그건 바로 '1년간 옷 안 사기'이다. 한창 미니멀라이프와 기후위기에 관심을 갖던 시절이었다. 우선 옷장에 꽉 찬 옷들을 당근에 팔고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을 비워냈다. 처음에는 너무 재밌었지만 중고거래를 할 때 사용되는 시간과 신경 쓰는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들어가 얼마 가지 못했다. 그 대신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를 하니 몸도 마음도 더 편안해졌다. 연말정산 시 기부금 세액공제도 된다고 하니 1석2조였다. 한차례 폭풍 같은 비움이 지나고 집은 상당히 정돈되었지만 옷장 속의 많은 옷들은 여전했다. 그동안 저렴해서, 이뻐서, 스트레스 풀기 위해 산 옷들이 얼마나 많은 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새로 산 옷들은 몇 번 입지 않은 채 옷장에 방치되기 일쑤였다. 1년간 새 옷을 사지 않아도 충분히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프로젝트를 실시하는 1년 동안 옷을 사고 싶은 유혹들이 있었지만 결국 성공한 나 자신이 너무 대견하였다. 하지만 한동안 참아왔던 나의 쇼핑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다시 새 옷에 눈이 가기 시작했고, 직장인으로서 이 정도는 사도 된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그즈음 [KBS 환경스페셜-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의류 수거함에 넣었던 옷들이 거대한 쓰레기 산으로 변해 있었다. 그동안 아주 쉽게 사고 버렸던 그 옷들은 바다를 건너 멀리 있는 나라의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었다. 더 나아가 우리가 살고 있고,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지구를 너무 아프게 하고 있었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옷 하나를 만들 때 엄청나게 많은 물이 들어가고 탄소가 발생됨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너무 무지했다. 다시 한번 새 옷을 사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쇼핑 욕구를 억지로 누르는 전과는 달리 자연스럽게 옷을 사고 싶은 마음이 안 생겼다. 친한 동생 H와 옷을 바꿔 입는 것에 재미도 생겼다. 물론 가끔씩 사고 싶거나 필요한 옷은 샀다. 프로젝트 기간처럼 억지로 참지 않으니 지속적으로 새 옷을 덜 살 수 있게 되었다.


H가 어느 날 톡을 보내왔다.

-언니, 여기 갈래?

-H야, 너무 재밌겠는데? 당장 신청하자!


이미지 출처 : 인스타그램 한걸음가게


'의류교환파티'에 관한 메시지였다. 아주 미약하지만 나름의 환경지킴이로서 눈이 번쩍 뜨이는 메시지였다. 옷을 바꿔 입는다니, 너무나 신선하고 좋았다. 당장 옷장에서 상태는 괜찮지만 평소 잘 입지 않는 여름옷 2벌을 꺼내왔다. 행사 당일 파티장소에 도착하니 안 입는 옷으로 입구를 표시해 놓았다. '바꿔 입장' 이런 네이밍센스는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감탄을 안 할 수 없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길에 붙어있는 많은 포스터가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고 입구에 들어서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행사에 참여하고 있었다. 나 같은 분들이 많아서 동지애도 느껴졌다. 신이 났다.


예약자 명단에 사인을 한 후 가지고 간 옷 두 벌을 보여드리니 쿠폰을 두 개 받을 수 있었다. 다른 중고옷을 두 벌 가져갈 수 있다는 뜻이었다. 관계자 분이 처음으로 방문한 우리를 위해 친절히 설명해 주신다.

"저쪽 테이블로 가셔서 라벨 작성해 주시고 옷걸이에 걸어 품목에 맞게 걸어주세요"


안내를 받은 대로 테이블로 가서 나의 옷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다른 좋은 주인을 만날 수 있도록 친절하게 설명을 했다. 일종의 의식 같아서 너무나 재밌었다. 내가 가져온 두 개의 옷에 대한 정보를 새 주인을 위해 정성껏 작성한다.

'이젠 안녕? 아이보리 셔츠야. 우리는 2년 전 보세 가게에서 처음 만났지. 편해 보이고 어려 보일 것 같아 널 구입했지만 3~4번 밖에 못 입었어. 생각보다 나한테 어울리지 않아 널 보낸다. 부디 너와 잘 맞는 주인을 만나 잘 입혀지길 바라!'


내 옷을 옷걸이에 걸고 다른 옷들을 살펴보았다. 한 번도 입지 않은 옷들도 많았고 무엇보다 다들 깨끗하고 상태가 좋았다. 옷을 고르는 내내 쇼핑하는 느낌이라 기분이 좋았지만 새 옷이 아닌 중고품을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에 더 뿌듯했다. 쿠폰에 쓰여있는 '21% party'처럼 정말 파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옷장에 사놓고도 자주 입지 않은 옷의 비율이 21% 정도라고 한다. 안 입는 옷을 서로 교환하여 재사용의 가치를 실현하는 '지속가능한 의생활' 캠페인이라고 한걸음가게 인스타그램에 소개되어 있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보통 싫증이 나거나 크기가 안 맞아 버려지는 옷들이 많은 요즘인데, 버려지지 않고 다른 사람에 의해 다시 재사용되는 공유 옷장의 아이디어가 너무나 멋져 보였다. 행사를 주최하는 관계자뿐 아니라 참여하는 사람들도 표정이 다 밝았고 나 또한 그 사람들 중 한 명이라는 게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의류 교환 외에도 다양한 쓸모 워크숍이 함께 열렸다. 입지 않은 티셔츠를 활용하여 티셔츠얀 만들기 워크숍과 릴레이 매트 직조, 한땀클럽(수선 바느질 자율 모임) 등이 열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온 어린이들에게 환경감수성을 기를 수도 있을 것 같아 매우 의미 있어 보였다. 또 한쪽에서는 텀블러를 가져오면 무료로 마실 수 있는 음료가 준비되어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작은 채소 마켓도 열려 볼거리가 매우 다양했다. 남겨진 옷들은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도 된다고 하니 정말 뜻깊은 행사라고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이 마구 샘솟았다.


평소 텀블러와 장바구니는 항상 가방에 넣고 다니며 플라스틱과 비닐의 사용을 줄여보고자 아주 미약하게나마 꾸준히 노력을 하고 있다. 샐러드 가게에 밀폐용기를 가지고 가서 포장을 해오면 가게 사장님이 샐러드를 더 담아주시기도 하여 그때마다 조금은 귀찮지만 용기(容器)를 내민 용기(勇氣) 있는 나 자신을 칭찬하게 된다. 내일은 새로 만난 옷을 입고 우리 반 아이들에게 가서 자랑해야겠다.

선생님 옷 어때? 이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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