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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확실한 내향인

by 느긋

한 때 MBTI를 많이 묻고 다녔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관심 가는 사람들을 만나면 내가 먼저 그들의 성격유형을 묻곤 한다. 서로 묻고 답하는 성격유형에 나의 대답을 듣고 놀라는 사람들도 가끔 있다. 나는 ISFJ이다. 물론 정식으로 검사한 것은 아니고 인터넷에 많이 있는 문제지로 재미 삼아 검사를 한 것이지만 할 때마다 똑같이 나온다. '용감한 수호자'형으로 전체 인구의 13%나 차지한다고 한다. 특징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책임감 있고 주변 사람을 잘 도우며 믿을 수 있고 헌신적인 사람'이라고 나온다. 거의 맞는 말이다.


출처: 네이버 MBTI 심리 카페 MBTI & Health

ISFJ라고 성격유형을 밝히면 I부분에서 가끔 놀라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확실한 대문자 I이다. 내성과 내향, 외성과 외향이 비슷해 보여 가끔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으나 이는 엄연히 다른 뜻이다.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고 가끔은 즐겨하니 내성보다 외성에 가까운 성격이다. 하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나에게 집중하고 혼자 무언가를 할 때 에너지를 얻는다. 사람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너무 많은 만남을 가지면 피곤하고 나 혼자만의 힐링 타임이 무엇보다 중요하므로 내향적인 사람이다. 이 때문인지 40대 초중반인 나이에 비해 남들 다하는 친목모임하나 없고, 친구도 많이 없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으며 나의 이런 삶에 나름 만족한다. 친구가 많이 없다고 해서 전혀 외롭지는 않다. 나의 사정을 많이 알고 있고 내가 언제든 편히 연락할 수 있으며 가족끼리 허물없이 지내는 오래된 친한 동생 한 명이 내 인생에 있는 것만으로 너무나 감사하고 매우 충분하다. 나의 성향상 두루두루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한두 명의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는 게 더 의미 있다. 독립적인 성향이 매우 강해 혼자서 무언가를 하고, 배우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느긋하게 살고 싶지만 항상 바쁘다.


무엇인가 끊임없이 배우고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혼자서 연수도 많이 받으러 다닌다. 지난 5월에는 OO교육연수원에서 실시하는 '동학농민혁명, 130년의 발자취'라는 이름의 연수를 1박 2일 동안 전주에서 받았다. 나처럼 혼자서 연수를 받으러 오신 분들도 꽤나 많았다. 오전과 오후 내내 연수를 받았고 저녁에는 자유 시간이 좀 주어졌다. 짐을 풀고 산책을 나가는 엘리베이터에서 다른 지역에서 오신 선생님을 만났다. 그분도 저녁 산책을 나가시는 길이어서 자연스레 나도 길동무로 합류하게 되었다. 그 선생님에게는 다른 산책동무가 이미 한분 있었고 우리 셋이 전주한옥마을을 돌아보기로 하였다.


길을 나서자마자 후회가 밀려왔다. 나 이외의 두 분의 선생님들도 이 연수에서 새로 만나신 듯하였는데 그중 한 분의 말씀이 너무 많으셨다. 좋으신 분 같았으나 잠깐 걷는 사이에도 자신의 가족관계, 딸의 직업, 본인의 성격 등 쉴 새 없이 말씀을 하셨다. 약간 머리가 아파왔다. 계속 들어주고 리액션도 해주어야 하는 앞으로의 산책시간이 아찔하게 다가왔다. 죄송하지만 발길이 닿는 대로 천천히 혼자서 다닌다고 하고 그분들과 헤어졌다. 드디어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길가의 들꽃을 보며 사진 찍는 여유도 누려보고, 전주 남부시장의 야시장에 들러 유명한 육전과 전주의 모주를 천천히 맛보며 그 순간을 즐겼다. 혼자 전주한옥마을 주변을 돌아보며 낮과는 다른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를 느끼니 나의 마음에 안정감이 스며들었다.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나 혼자서 여유롭게 즐기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을 보니 확실한 내향인이다. 상황에 따라 나를 표현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전반적으로 나서는 것에 대해 부담감을 느낀다.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좋아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수다쟁이가 된다. 누구나 그렇듯 상황에 따라 진짜 내 모습이 나오기도 하고, 나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도 한다. 관계의 크기보다 깊이에 집중하고 무엇보다 나 자신과 함께 하는 시간이 너무나 좋다.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쓰는 것도 나와 함께 하는 시간으로서 이 시간을 즐기고 있고 감사하다. 라이킷도 눌러주시고 댓글도 달아주시는 분들을 통해 관계의 중요성과 감사함도 매번 깨닫는다.


모든 게 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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