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사진 출처] 네이버 블로그 '돈생휴미', 아마존에서 90달러에 판매되고 있는 시지프스의 청동상
여름이라 빨랫감이 넘쳐난다. 가만히 있어도 흘리는 땀 때문에 아침저녁으로 하루에 2번씩 샤워를 해야 한다. 덕분에 입었던 옷들, 수건들이 빨래통에 금방 가득 찬다. 우리 집에는 3대 이모님이라고 불리는 가전제품인 로봇청소기, 식기세척기, 건조기 중 뒤에 2개가 없다. 건조기가 없으므로 세탁기에 빨랫감을 넣어 돌리고, 빼서 널고, 마르면 걷고, 개고, 제자리에 정돈을 해야 하는 빨래에 관한 모든 과정을 거쳐야 한다. 요즘엔 이 작업들을 이틀에 한 번씩하고 있다. 운동을 좋아하는 내 빨랫감도 많이 나오고, 샤워를 할 때 수건을 2장씩 쓰는 남편과 땀이 많은 아들 녀석이 내놓는 양도 제법 많다.
아이 방학이라 삼시 세끼 밥을 차리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왜 이리 밥때는 빨리 돌아오는지 살림을 해보는 사람이라면 다 공감을 할 것이다. 그냥 냉장고에 있는 반찬만 꺼내서 그릇에 조금씩 덜어 먹더라도 설거지 거리는 금세 쌓인다. 한창 잘 먹어야 하는 성장기 아들을 위해 매번 식사 준비를 대충 할 수 없는 노릇이므로 한 번씩 요리를 하는 등 신경 쓰기도 한다. 아무리 에어컨을 틀어도 폭염에 관한 안전문자가 계속 오는 요즘, 불을 쓰지는 않지만 인덕션 앞에 서서 요리를 하는 것도 꽤 어려운 일이다.
무선 청소기가 있어 예전보다 나아지기는 했지만 청소도 날마다 하지 않으면 먼지와 머리카락은 금세 우리 집을 잠식한다. 청소를 할 때면 집이 넓지 않은 게 고맙기까지 하다. 청소기를 열심히 돌려도 미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머리카락이 있어 돌돌이로 집안 구석구석을 밀어줘야 한다. 돌돌이에 묻어 나오는 먼지를 보면 약간의 쾌감도 살짝 느껴지기는 한다. 우리 집에 있는 로봇 청소기는 물걸레 전용으로 가끔씩 돌리는데 직접 바닥을 닦는 것보다는 훨씬 편하지만 준비하는 과정이 조금 귀찮기는 하다. 물을 넣고, 걸레를 장착하고 돌리면 그뿐이지만 그 후에 걸레를 빨아야 하고, 기계 충전도 바로 해주어야 다음에 사용할 때 좋다.
음식물쓰레기도 많이 나온다. 내가 과일을 좋아하기 때문에 과일껍질이 제일 비중을 많이 차지하고, 요리를 하기 위한 준비과정에서도 채소껍질과 같은 음식물 쓰레기가 제법 나온다. 우리 집은 주로 남편이 음식물쓰레기를 버린다. 음식물쓰레기를 처리하는 게 굉장히 귀찮았던 걸까? 몇 달 전에 미생물을 이용한 음식물처리기를 주문을 하더니 바로 설치까지 해버린다. 처음에 나도 생각보다 비싼 금액을 들여 굳이 이걸 사야 하나라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써본 결과 삶의 질이 확실히 상승하였다. 동물의 뼈나 양파 껍질, 달걀껍데기, 과일의 씨 등은 일반 쓰레기로 잘 구분하여 버리기만 하면 된다. 미생물을 이용하여 음식물쓰레기를 처리하니 1층까지 내려갈 일이 없게 되었고 1~2개월에 한 번씩만 내용물을 비우고 엄마의 텃밭에 뿌려주면 되니 환경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 뿌듯한 마음도 든다.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게 쉬워져서 싱크대의 수채구멍을 자주 청소를 하고 초파리도 작년 여름보다 많이 줄었다. 나름 쾌적한 주방을 위해 한몫 톡톡히 하는 것 같다.
로봇청소기, 미생물을 이용한 음식물처리기
분리수거도 제 때 하지 않으면 수거함이 넘쳐나서 다용도실을 어지럽게 만든다. 우리 집에서는 크게 비닐, 종이류, 플라스틱 이외의 것으로 구분을 하는데 방학 때라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서 그런지 수거함이 채워지는 속도도 빨라진 것 같다. 특히, 요리를 한 날에는 비닐류나 플라스틱류가 많이 나와 잘 헹궈서 분류를 해야 한다. 분리수거도 만만치 않은 집안일 중의 하나이다.
여름이라 화장실은 항상 물기로 넘쳐난다. 우리 집은 화장실이 2개인데 여기저기에서 샤워를 하고 나오면 물바다가 되어있다. 덕분에 화장실 타일의 군데군데 보이는 곰팡이가 눈에 거슬려 곰팡이 제거제도 검색을 하여 주문을 한다. 변기나 바닥, 수전도 금색 물때가 끼는데 왜 이런 건 내 눈에만 보이는 건지 참으로 의아하다. 샤워를 할 때 대충 바닥을 청소하고, 한 번씩 마음먹고 화장실 대청소를 주기적으로 해주어야 그나마 화장실이 쾌적하게 유지가 된다.
집안일이 이것뿐이라면 큰 오산! 한 번씩 이불빨래, 배게 커버 세탁하는 것도 큰맘 먹고 해야 하는 일이다. 창틀에 먼지는 왜 이리 잘 끼고 더러워지는지 미세먼지와 봄철의 송홧가루가 원망스럽다. 장마철이 오기 전에 제습제를 사서 각각의 옷장에 넣고, 기존의 제습제를 수거하여 안에 있는 물을 버리고 통을 헹궈서 분리수거를 하는 것도 정말 귀찮다. 냉장고도 정리 정돈을 수시로 해야만 안에 무엇이 있고, 무엇을 사고 사지 말아야 하는지 판단이 선다. 분무기에 소주와 레몬즙을 섞어 식탁과 상판등을 닦아내는 데 사용하고, 쓰레기통도 주기적으로 비워주어야 한다. 이번에도 남편이 센서가 달려있어 자동으로 문이 열리는 쓰레기통을 샀을 뿐 쓰레기통이 채워지면 비우는 것도 거의 내가 한다.
하루라도 안 하면 정말 티가 나는 게 집안일이다. 하지만 해도 티는 별로 나지 않는다. 날마다 해야 하는 집안일이 마치 '시지프스의 형벌' 같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지프스는 제우스와 하데스를 속인 죄로 바위를 산 정상까지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는다. 바위는 정상에 닿으면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지기 때문에 시지포스는 무한히 이 일을 반복해야 한다.(출처:네이버 블로그 '돈생휴미', 시지프스 신화, 삶이란 무엇인가) 누가 나에게 내린 형벌은 아니지만 날마다 집안일을 하고 다음 날이면 또다시 이 일을 반복한다. 더욱이 집안일은 성격이 급한 내가 주도적으로 해버리고, 남편과 아들은 내가 시키는 것만 한다. 시키는 것을 군말 없이 잘하는 걸 보면 고마운 생각도 드는데 몸이 피곤한 날이면 살짝 억울한 마음도 생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집안일을 할 수 있는 건강한 몸과 마음이 있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하다. 빨래를 한다는 것은 우리 가족이 오늘 하루 열심히 땀을 흘렸다는 증거이고, 설거지를 한다는 것은 우리 가족이 맛있게 내 요리를 먹었다는 뜻이다. 먼지가 쌓였다는 것은 우리 가족이 집 안에서 편히 잘 쉬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고, 요리를 한다는 것은 우리 가족이 건강한 집밥을 먹었다는 것이다. 집안일은 의미 없이 무한히 반복해야 하는 형벌이 아니고 나를 포함한 우리 가족들이 건강하고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도와주는 의미 있는 행위이다. 나 혼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남편과 아들도 나름 잘하고 있으니 크게 불만은 없다. 남편이 주로 설거지를 하고, 분리수거는 아들이 많이 한다. 요즘같이 빨랫감이 많이 나오는 날이면 아들이 빨래를 잘 널기도 한다. 내가 거실 화장실을 청소할 때면 남편이 안방에 있는 화장실 청소를 하고 나서 엄청난 생색을 내기도 한다.
시지프스가 그 무거운 바위를 힘겹게 산 위로 올리고, 다시 아래로 바위가 굴러 떨어졌을 때 어떠한 기분이었을까? 바위를 올리는 행위 자체는 의미가 없지만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면 그 행위들을 견디고 더 나아가 무언가를 깨달을 수 있기에 오히려 기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모든 일에는 의미의 유무가 정말 중요하다. 우리 가족이 건강하고 편하게 잘 쉴 수 있도록 해주는 집안일이 때론 귀찮기도 하지만, 하고 나면 뿌듯하고 개운함을 느끼는 것도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