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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긋 Sep 26. 2024

무도인의 자세

 무에타이를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나간다. 그동안 주 3회를 꾸준하게 나간 나 자신을 아낌없이 칭찬해주고 싶다. 드라마틱한 몸무게 감소나 눈바디의 변화는 아직 느낄 수 없지만 무에타이를 한다는 것 자체가 내 생활에서 많은 활력소가 되고 있다. 이 나이에 이렇게 멋진 운동을 한다는 것에 아직 1달 차 초보자지만 자부심을 느끼고도 있다. 점핑 다이어트, 줌바댄스, 에어로빅, 골프, 배드민턴 등 수없이 많이 도전했던 운동 중 무에타이가 운동량이 제일 많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건 기본이고 얼굴에 땀이 많이 안나는 체질임에도 불구하고 땀을 뚝뚝 흘리고 있다. 함께 운동하는 다른 10대 20대 수련생들은 땀으로 인해 바닥이 흥건히 젖을 정도라 수시로 수건으로 닦아낸다.


 요일별로 운동 방법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기초체력훈련이다. 일단 체육관을 시계방향, 반시계방향으로 각각 5바퀴씩 뛴다. 그렇게 크지 않는 장소이지만 숨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이후에 체육관을 직선 방향으로 왕복 3번씩, 6번씩을 뛴다. 이제 본격적으로 1라운드 3분 동안 자신의 역량에 맞게 계속 뛴다. 타이머를 맞춰두고 보통 왕복 25번-27번 정도를 뛰는데 이때 체력의 한계를 경험할 수 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지만 걸을지언정 멈추지는 않는다. 30초의 숨 고르는 시간을 가진 후 자신과의 싸움인 2라운드 3분이 시작된다. 3분이 이렇게 긴 시간이었나? 다리가 점점 무거워지지만 3분을 끝내고 나면 그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뛰는 내내 관장님과 코치님들의 에너지가 담긴 응원과 격려가 끊임없이 들린다. 타이머가 시작되면 여기저기서 '파이팅' 소리가 들리고 나도 함께 외쳐본다.


- 힘들 때부터가 진짜 운동의 시작입니다!

- 자, 1분 지났습니다!

- 절반 왔습니다!

- 파이팅! 파이팅!

- 배에 힘을 팍 주고, 무릎 더 높게 듭니다.

- 항상 자신의 컨디션에 맞게 운동해야 합니다.

- 자신의 가장 큰 적은 자신입니다.

- 부상 입지 않도록 합니다.

- 힘들 때 쉬는 것도 용기 있는 행동입니다.

- 몸이 건강해지면 마음도 건강해집니다!

- 조금만 더! 마지막 30초! 이때 전력질주!

- 달리기 할 때 사활을 걸어야 합니다!

- (기합소리) 쯔아짜자!! (?)


 빠른 댄스곡과 함께 관장님의 응원은 나에게 정신력을 강화시켜 주는 큰 에너지가 된다. 정말 힘들지만 중간에 멈추지 않는다. 물론 거리를 끝까지 가지 않거나 발에 힘이 빠져서 속도가 느려지기는 한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리기를 완수하는 나 자신이 기특하고 대견하다.


 약 10분간의 달리기가 끝나면 쉬지 않고 바로 기초체력다지기 훈련에 돌입한다. 2명씩 1조를 이루어 운동을 하는데 파트너는 매번 바뀔 수 있도록 관장님이 정해주신다. 나 같은 초보자는 주로 고수들과 만나는데 거의 대부분 자식뻘 되는 학생이거나 고문님이라 불리는 경력이 많은 분이다. 10대인 그들과 40대 아줌마인 나의 체력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지만 이 때도 관장님의 응원은 계속된다. 일단 누워서 상대방과 마주 앉아 발목을 낀 후 윗몸일으키기를 한다. 옆에서 큰 소리로 관장님이 숫자를 외치시는데 그 속도와 맞지는 않지만 열심히 윗몸일으키기를 하며 파트너와 손뼉을 친다. 20개가 끝나면 바로 허리를 비틀며 좌우로 윗몸일으키기를 한다. 바로 제자리 뛰기 100번을 하고 높이 뛰기를 10번 한다. 파트너가 하면 나는 그 숫자를 세어주고 힘을 북돋아준다. 파트너가 끝나면 내 차례가 되는데 이 과정을 2번씩 한다. 운동이 끝나면 서로에게 '나이스' '파이팅'같은 격려도 해주면서 서로의 에너지를 끌어내는 모습이 참으로 좋다.


 아직도 기초 체력 단련이 끝나지 않았다. 깍지 낀 손을 머리에 대고 무릎을 옆구리 쪽으로 들어 올리는 것을 100번씩 한다. 파트너가 할 때 기운을 내도록 숫자도 더 크게 세어준다. 요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상대방의 어깨에 발을 올려 쭉 스트레칭을 하거나 서로를 업고 스쾃을 40번씩 2번 하기도 한다. 내가 제일 재미있어하는 놀이와 같은 수련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상대방의 다리나 등을 터치하는 것이다. 왼다리는 뒤로 하고 상대방의 왼쪽 다리를 터치해야 하는데 엄청 난 체력이 소모가 된다. 왼다리와 오른다리를 스위치하기도 하고 바꾸지 않을 때도 있다. 등을 터치할 때는 상대방의 등을 보며 터치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한번도 성공한 적은 없다. 생각보다 터치하는 게 어렵지만 여기저기 도망도 다니고 스텝도 밟으면서 아주 재밌게 하고 있다.


 어느 정도 체력 단련이 끝이 나면 글러브를 끼고 펀치를 연습하거나 킥을 찬다. 아직 용어와 자세를 잘 모르지만 원! 투! 잽, 스트레이트, 훅, 회피 등을 배웠고 로우킥, 미들킥, 하이킥, 플라잉킥도 한 번씩 연습을 한다. 관장님의 지도 아래 코치님들의 시범을 볼 수 있는데 펀치와 킥 소리가 아주 커서 처음에는 매우 놀랐다. 지금은 그 큰소리와 파워에 익숙해졌지만 볼 때마다 멋지다.

 

 수련활동 시간에 특별히 정해진 쉬는 시간은 없다. 자신의 역량에 맞추어 알아서 운동에 참여하면 된다. 관장님이 항상 '사람마다 체력이 다릅니다. 그 체력을 조금씩 키워나가면 되는 겁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과욕을 삼가라고 하신다. 무에타이는 자신을 보호하고 방어하기 위하여 배우는 것이고 내가 강해져야 한다는 말씀도 자주 해주신다. 체육관에 가면 인상 깊은 말이 쓰여있다.

무도에서는 무와 도가 수레의 양 바퀴와 같아서 어느 하나가 빠져도 안된다. 무만 수련하고 도를 소홀하면 이 사람을 갈수록 불한당처럼 인격에 문제가 생기게 되고, 넘치는 힘을 다룰 마음과 정신이 부족하여 결국 남을 해치게 되고 그 결과 자신을 망치는 일이 일어난다.


 몸만 단련하는 것이 아니라 인성과 마음까지 챙기는 글귀가 나의 마음에 와닿았다. 관장님의 이런 철학 덕분에 수련생들이 인사도 잘하고 성실하게 운동을 하는 것 같았다. 한 타임의 운동이 끝나면 수련생들이 집에 잘 안 가고 계속해서 개인 운동을 하는 것도 놀라웠다. 나한테도 관장님이 따로 킥이나 줄넘기를 하라고 알려주시고 운동을 너무 잘한다는 격려도 매번 해주신다. 남편에게 '관장님한테 운동 잘한다고 칭찬받았어!'라고 하면 남편의 반응은 '원래 체육관 관장님들은 회원관리를 잘해!' 하면서 으레 하는 겉치레 인사정도로 치부한다. 하지만 한 명 한 명 진심으로 회원들을 대해주는 관장님의 에너지를 나는 느낄 수 있다. 그 에너지가 무에타이를 꾸준하게 다닐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운동이 끝나면 한자리에 모여 관장님의 말씀을 듣고 합장을 하며 서로에게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한다. 이런 게 바로 무도인의 자세인 것 같다. 아직 초보자지만 욕심 내지 않고 꾸준히 무에타이에 다니고 싶다. 땀을 흘리는 그 순간이 너무나 행복하고, 끝난 후에는 더 행복하고, 끝나고 맛있는 걸 먹고 쉴 때는 훨씬 더 행복하다.


 요즘 평일에는 학교, 집, 운동만 다니며 삶을 단순화하고 있다.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도 운동을 하고 샤워를 하는 순간 풀린다. 늦은 감이 있지만 40대 초중반이라는 나이에 무에타이라는 멋진 운동을 만나게 너무나 감사하다. 30대에 시작했으면 아마추어 대회에도 나가보는 건데 아쉬운 마음이 살짝 든다. 내 몸을 잘 이해하고 욕심내지 않으며 꾸준하고 성실하게 운동을 하는 게 현재 나의 가장 큰 목표이다.


다치지 말고 내 몸에 맞게 운동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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