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느긋 Oct 21. 2024

무에타이 교범님과 사범님

 무에타이에 다닌 지 만으로 2달이 되었다. 관장님이 총괄적으로 수련을 지도하시고, 기초 달리기를 할 때부터 둘씩 짝을 지어 운동을 함께 한다. 나 같은 경우는 완전 초보이기 때문에 수련을 할 때마다 짝은 달라지지만 고수들과 주로 한다. 2달 전 무에타이 체험을 하러 갔을 때 나의 첫 운동 메이트는 중2 여학생이었다. 탄탄한 근육질 덕분에 첫인상은 완전 무에타이 고수였다. 관장님의 설명 아래 그 학생이 시범을 보였을 때 킥과 펀치가 여느 남자들 못지않아 멋있어서 매우 인상적이었다. 첫날의 그 힘듦은 아직도 잊지 못하는데 그 친구가 계속 응원을 해주어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잘 해낼 수 있었다. 이런 운동을 날마다 하는 게 신기하였고 너무 대단한 생각이 들었다. 첫날 서로를 등에 업고 스쾃을 할 때 저질 체력의 나를 많이 배려해 주어서 등에 업히는 척만 해준 게 너무 고마웠다. 나중에 물어보니 6학년 겨울 때부터 무에타이를 시작해서 대회도 몇 번 나간 것 같았다. 그 뒤로도 한 번씩 운동 메이트로 만나면 자세히 알려주고 재밌게 운동을 할 수 있어 평소에도 매우 고맙고 예쁜 학생이다. 


 체육관에 안내된 교육 시스템을 보면 매우 체계적인 걸 알 수 있다. 그동안 다닌 기간과 수련 과정에 따라 초급, 중급, 고급, 상급, 부사범, 사범으로 나뉘는데 우리 체육관의 사범님은 군대를 제대한 지 얼마 안 되는 매우 젊은 분이다. 가끔 관장님이 안 계실 때 사범님이 수련을 총괄적으로 이끌어 가는데 매우 듬직하고 친절하다. 수련시간에 초등학생과 같은 어린이가 많으면 따로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사범님이 어린이들을 지도를 한다. 


 사범님과 한 번씩 운동 파트너가 되면 매우 신이 난다. 리액션이 기가 막히게 좋기 때문이다. 사범님의 리액션으로 인해 없던 힘도 짜서 끝까지 미션을 완수할 때도 많다. 주로 사범님이 하는 리액션은 내가 펀치나 킥을 찼을 때 일단 놀라워하는 것이다.  '어우야~!'  '누님, 대단하십니다!'  '나이쑤!'  '잘하고 계십니다!' 등이 있다. 이런 응원을 받으면 내가 잘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기도 하여 운동이 매우 재미있다. 체력단련을 할 때 서로의 왼다리를 터치하는 활동이 있는데 나의 수준에 맞추어 적당히 져주기도 하는 매우 스위트한 사범님이다. 리액션이 매우 좋아 초등학생들에게도 인기가 매우 많다. 관장님이 회원들을 일일이 챙겨주시고 말 한마디도 따뜻하게 건네주시는데 사범님이 관장님의 이런 면을 많이 본받은 것 같아 보기가 매우 좋다. 운동이 끝났을 때 '누님, 고생하셨습니다'라는 말도 항상 해주고 평소에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아 자연스레 믿고 따르게 된다. 


 이번에 무에타이 대회에 나가는 고등학생 교범님과도 한 번씩 짝이 된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깡마른 근육질 몸의 소유자로서 삭발머리 때문에 더 강해 보이는 인상을 가지고 있다. 이 교범님은 원칙 그대로의 수련을 하는데 사범님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 원투펀치를 10개씩 4번 하는 경우 중간에 힘들어서 가드를 내리거나 쉬면 처음부터 다시 숫자를 세는 교범님이 때로는 야속하기도 하다. '중간에 쉬셔서 처음부터 다시 합니다', '뒤꿈치 더 세웁니다' 이런 식의 '다나까' 말투도 아직 적응 중이다. 중년의 아줌마가 죽을힘을 다해서 운동을 하고 있는데 리액션도 많이 약하다. 원투 훅, 회피 등을 할 때 내가 가드를 살짝이라도 내리면 바로 내 머리를 살짝씩 치면서 가드를 올리라고도 한다. 힘을 많이 조절하는 거겠지만 서로 밀 때도 나의 상황을 절대 봐주지 않는다. 보다 못한 관장님이 한 번씩 '누님은 더 천천히!'라는 말로 거들어 주기도 하신다. 


 서로의 왼다리 터치를 할 때 고등학생 교범님 때문에 약이 오르기도 한다. 교범님 입장에서는 많이 봐주는 거겠지만 그 긴 다리로 요리조리 피하면서 나에게 일말의 희망도 주지 않는다. 당연한 결과이긴 하지만 너무나 실력 차이를 너무나 쉽게 느끼고 체력을 빨리 방전하게 만들어 얄미운 생각이 든다. 서로를 업고 스쾃을 할 때 나에게 더 내려가라도 말을 할 때면 정말 내동댕이 치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든다. 이렇게 열심히 하는 교범님과 수련을 할 때 모르는 것을 물어보면 자세히 알려주고 운동에 진심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어 너무나 멋지다. 하지만 나를 너무 강하게 키우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잠시 머릿속을 스쳐간다. 


우리 체육관의 교육 시스템 

 

 수련이 끝나면 아래층에 내려갔던 초등학생들도 올라와서 한자리에 모인다. 이때 나는 누구보다 관장님의 주옥같은 말씀들에 귀를 기울인다.


 "킥복싱과 인생은 똑같습니다. 무엇인가를 시도해야만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첩성, 적극성 등이 요구됩니다. 대회에서도 서로만 보고 공격을 하지 않은 경우도 많은데 그러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운동을 넘어 인생에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관장님의 말씀 중에 초등학생들이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입에 물고 짝다리를 짚었다. 이를 본 관장님이 무에타이에 대한 예의에 대해서 말씀하셨고 그 말을 들을 초등학생들도 자세를 바로 잡았다. 


 "저는 우리 체육관이 마지막 자존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에 학교에서나 가정에서도 아이들에게 강하게 말을 못 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우리 체육관에서만큼은 다릅니다. 인사 잘해라, 자세 바르게 해라 등 아닌 건 아닌 것을 확실히 말합니다. 요즘에 학교에서도 조금만 세게 말하면 힘든 상황이 생긴다는 것을 잘은 모르지만 알고는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체육관에서는 더 예의와 인성을 중요시 여깁니다."



 관장님의 철학과 사고가 너무 멋있었다. 나도 학교에서 혹시라도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까 봐 '적당히' 지도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 사람에게 민폐만 끼치지 않으면 아이들의 안 좋은 습관을 흐린 눈으로 보기도 한다. 쉽지 않은 교육환경에 처해있어 현실과의 타협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교사로서의 나의 모습과 대비되며 관장님의 일관적이고 건강한 철학에 또 한 번 감탄을 하였다. 그래서 우리 체육관에 다니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예의도 바르고 인사성도 좋은가 보다. 내향적인 나도 이제는 내가 먼저 인사를 하고 열심히 하려고 한다. 


 내가 무에타이를 다니는 이유는 '몸의 건강'이 1순위지만 몸이 건강하면 자연스레 '건강한 마음'이 따라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왕초보지만 아줌마로서 무에타이를 배우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10대 20대들과 같이 운동하면서 그 에너지를 받고 '살아있음과 운동할 수 있음'에 무한한 감사도 느낀다. 물론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지만 땀을 뚝뚝 흘릴 때는 기분이 정말 좋다. 평소 땀이 별로 없는 체질로 알고 있었으나 무에타이 수련을 시작하면서 몸뿐만 아니라 얼굴에도 땀을 많다는 체질이라는 것을 알아버렸다. 40살이 훌쩍 넘어 얼굴에 모공이 열리고 노폐물이 빠져나가는 맛을 조금씩 맛보고 있다. 


 정말 유쾌한 경험이다.


이전 03화 무에타이 관장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