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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긋 Oct 14. 2024

공포의 무에타이 줄넘기

 친한 동생과 주말 동안 꽉 찬 여행을 다녀온 바로 다음날 여독이 풀리지 않은 채 직장인 학교로 향했다. 평소 커피를 잘 마시지 않지만 카누블랙커피 반봉지를 따듯한 물이 있는 컵에 부으니 커피 알갱이가 금세 녹는다. 아이들이 과학교담시간에 간 터라 여유롭게 교실에서 커피 한잔을 마실 수 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담임을 하면 수업은 늦게 끝나지만 황금 같은 교담시간을 이용하여 중간중간 업무도 처리하고 차도 한잔 할 수 있다. 엄청 연한 커피를 마셨지만 기분 탓인지 눈이 번쩍 뜨이는 느낌이었다. 덕분에 오늘 하루도 무사히 수업을 마치고 정시 퇴근을 하였다.


 집으로 돌아와 바로 안마의자에 몸을 누이고 30분간의 급속충전을 시작했다. 무에타이 운동을 가기 위해서 지친 나의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끌어올려야 할 때 안마의자만 한 게 없다. 하물며 비까지 오는 날씨 때문에 운동을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오늘 아침 몸무게를 본 이상 양심상 도저히 운동을 쉴 수 없었다. 여행 내내 맥주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행복한 시간을 맘껏 누렸던 터라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결국 아침 몸무게로 60.0kg을 찍어버렸다. 급찐급빠! 급하게 찐살은 급하게 빼주어야 한다. 안마의자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일어나니 한결 컨디션이 좋다. 서둘러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무에타이로 향한다.


 비도 오고 집에서 살짝 늦게 출발한 까닭에 계단을 올라가니 벌써 운동이 시작된 소리가 들린다. 미리 가서 몸을 풀고 스트레칭을 했어야 하는데 이러지 못해 반성을 하고 다음부터 좀 더 서두르자는 마음을 먹는다. 서둘러 겉옷을 벗고 몸을 간단히 푼 후 기초 달리기에 합류를 한다. 원래는 체육관을 시계방향, 반시계방향으로 각각 5바퀴씩 돌고 직선으로 왕복 3번, 6번씩 뛰는 게 루틴이다. 원으로 뛰는 것은 스트레칭하느라 못했고 직선으로 뛰는 것에 합류하였다. 왕복 3번, 6번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후 3분의 시간 동안 자신의 역량에 맞게 파트너와 계속 뛰어야 한다. 오늘 나의 운동 파트너는 아주 깐깐한 고등학생의 코치님이다. 곧 시합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몸에 독기가 바싹 올라와 있고 삭발한 모습도 아주 멋있다. 코치님과 달리기를 하면서 민폐가 되지 않도록 속도를 맞추고 싶으나 욕심을 부리지 않고 중간정도만 왔다 갔다 하면서 몸에 열을 내었다. 1,2라운드 두 번을 뛰는 것은 정말 힘든 과정이다. 휴대폰을 할 때면 3분이 정말 짧은 시간인데 3분 동안 계속 뛰는 것은 정말로 해본 사람만 그 힘듦을 알 수 있다. 3분 동안 뛰고 30초 쉬고 또 3분을 뛴다. 관장님과 코치님이 '1분 지났습니다',  '1분 남았습니다',  '마지막 10초!' 등과 같이 끊임없이 옆에서 말해주고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신다. 발은 점점 무거워지지만 멈추지 않고 2라운드를 뛰어낸 나 자신도 정말 대견하다.


줄 안에 두꺼운 철심이 들어있다. 공포의 줄넘기!


 달리기가 끝나면 평소처럼 윗몸일으키기 20번, 트위스트 윗몸일으키기 20번을 한다. 오늘 운동 메이트인 코치님과 속도는 맞지 않지만 나도 최선을 다해서 한다. 운동한 지 10분밖에 안지났는데 얼굴에서 땀이 뚝 떨어진다. 보통은 제자리 뛰기 100번에 제자리 높이 뛰기 10번을 3세트 하는데 관장님이 오늘은 줄넘기를 시키셨다. 2달째 운동을 하지만 정규 수련 시간에 줄넘기를 하는 건 처음이었다.


 "100개씩 4번 합니다. 빠르게 뜁니다!"


 전에 체육관 쉬는 시간에 줄넘기를 해봤던 경험이 있어서 줄넘기가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었다. 우리 체육관의 줄넘기는 관장님이 특별히 제작한 아주 무거운 줄넘기이기 때문이다. 줄넘기를 가지고 와 나부터 100개를 시작한다. 빠르게 뛰기 위해서는 줄을 빠르게 넘겨야 하는데 너무 무겁기 때문에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처음 백개는 그리 어렵지 않게 하고 다음 주자인 상대방이 줄넘기 100개를 하는 동안 숫자를 큰 소리로 세어주어야 한다. 줄넘기 100개를 막 끝낸 직후라 호흡이 가파 숫자 세는 게 어려워 손으로 하나씩 펴서 보여주었다. 코치님은 줄넘기도 빨리 하여 내가 쉬는 시간이 별로 없다. 바로 두 번째 100번 줄넘기를 시작한다. 점점 전완근과 손목에 힘이 들어간다. 뛰는 것보다 줄을 돌리는 게 더 어렵다. 관장님의 의도대로 빨리 뛰고 싶지만 팔이 너무 아파와 이제는 발에 줄이 걸리기 시작한다. 그래도 2번째 100개를 끝내고 바로 상대방의 줄넘기 개수를 세어준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다음 3번째 100개 줄넘기를 준비한다. 고등학생 코치님은 얼굴색과 표정하나 바뀌지 않고 줄넘기 100개를 금세 끝낸다. 속으로 '네 똥 굵다. 네 똥 칼라다'를 외치고 싶다. 3번째와 4번째 줄넘기는 전보다 더 자주 걸렸지만 결국에 끝까지 해내었다. 팔뚝이 너무나 아프지만 팔에도 근육이 생기는 것으로 생각하니 좋긴 좋다. 속에 철심이 들어있는 줄넘기로 400번을 뛰었다. 주말 동안 마신 맥주가 땀으로 다 나오는 기분이었다.

 

 줄넘기가 끝나고 팔굽혀펴기를 바로 시작하였다.

"무릎을 꿇어도 됩니다. 꿇어도 되지만 꿇지 않는 게 더 효과가 좋습니다. 아래까지 쑥 내려가서 올라옵니다. 자신의 체력에 맞게 하지만 힘들 때 하나를 더 하는 게 진짜 운동입니다!"

 관장님의 멘트와 함께 다들 팔굽혀펴기를 준비한다. 나는 무릎을 꿇고 준비를 한다. 일단 남들이 기본 팔굽혀펴기를 무릎 꿇지 않고 20개를 할 때 나는 무릎을 바닥에 대고 10개를 하였다. 평소 팔굽혀펴기는 올라오면서 박수를 한 번씩 치는데 오늘은 변형된 팔굽혀펴기를 하였다. 20개는 내려갈 때 오른손을 오른쪽으로 한 뼘 움직이고, 20개는 왼손을 왼쪽으로 한 뼘 이동한다. 마지막 15개는 오른손 왼손을 박자에 맞추어 앞으로 한 번씩 나갔다가 다시 들어온다. 이렇게 다양한 버전의 팔굽혀펴기가 있다니 새삼 놀라웠다. 아직 손목이 많이 약해 팔굽혀펴기가 나에게 매우 부족한 부분이지만 그래도 맨 처음보다는 아주 조금 나아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있다.


 이제야 기초단련이 끝나고 본격적인 운동을 시작하였다. 오늘은 상체 위주의 펀치를 많이 하였는데 많이 어렵지만 쾌감이 있다. 무에타이 운동이 마무리되고 일렬로 서서 관장님의 말씀을 들었다.

 "몸은 조금씩 만들어 가는 겁니다. 하루아침에 욕심부려서 체력을 키울 수 없습니다. 탑을 쌓을 때 높게만 쌓으려고 하면 결국에 탑이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아랫부분을 넓고 튼튼하게 쌓아야 높게 쌓을 수 있습니다. 바로 보이지 않아서 힘든 과정이 될 수 있지만 기초를 잘해야 오래갈 수 있습니다."


 관장님의 이런 말씀이 너무나 좋다. 노랑 꽁지머리가 인상적이고 나보다 나이가 많지만 '누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시는 관장님의 정신단련 멘트들이 나에게 항상 자극이 되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원래 봄가을이 운동하기에 어려운 계절입니다. 날이 좋아서 운동하기 싫고 놀고만 싶어요. 특히 초보자들이 에게 어려운 시즌인데 컨디션 조절 잘하시고 내일 뵙겠습니다. 자, 상호 간의 인사!


 관장님과 합장을 하며 인사를 한 후 좌우를 보며 '수고하셨습니다!'를 외친다. 처음에는 어리바리해서 타이밍이 안 맞아 허공에 대고 인사를 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우리 체육관의 고문님이 운동메이트에게 먼저 인사를 하라는 조언을 해주신 이후에는 수련생들의 얼굴을 마주 보며 좌우로 잘 인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무에타이 시작한 지 2달째이다. 왠지 허벅지에 근육이 붙은 느낌은 단지 느낌이 아니면 좋겠다. 먹는 게 그대로고 맥주와 함께 다양한 음식들을 포기 못해 뱃살은 여전하지만 근육이 붙은 느낌이 참으로 좋다. 부상 입지 않고 오래 다니신 다른 분들처럼 꾸준히 성실하게 무에타이를 잘 다니고 싶다.


 지각하지 말자! 아니다! 지각하더라도 꾸준히 다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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