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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긋 Oct 28. 2024

무에타이-영광의 상처

 그제부터 코가 맹맹하고 콧물이 나오기 시작한다. 목감기에 취약한 사람으로서 목이 조금이라도 아플 낌새가 있으면 약부터 찾지만 콧물감기에는 약을 먹지 않는다. 잠시 무에타이에 갈까 말까 고민하다 좀 쉬었다가 원래 가던 타임보다 한차례 뒷타임을 가기로 마음을 먹는다. 30분 동안 안마의자에서 급속충전을 하고 감을 하나 깎아 먹으니 에너지가 조금 생긴다. 평소대로라면 냉장고에 있는 수제 초콜릿을 입에 하나 넣고 당충전을 했을 텐데 '일주일간 과자, 초콜릿, 술 먹지 않기'라는 혼자만의 챌린지를 하고 있어 감을 우적우적 씹으며 나름 만족을 한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진 탓에 양말을 챙겨 신고 마스크를 한 후에 집을 나선다. 추워진 날씨와 상관없이 체육관에 들어서니 열기가 후끈하다. 무에타이는 맨발로 하기 때문에 양말을 벗고 몸을 풀기 시작한다. 수련 시간이 되자 여느 때처럼 기초 달리기를 열심히 한 후 관장님이 둘씩 짝을 지어주신다. 오늘의 운동 메이트는 내가 무서워하는 고등학생 교범님이다. 오늘 컨디션도 별로 좋지 않은데 시합을 앞두고 있어 눈에 독기가 바싹 오른 교범님과 짝이라니 눈앞이 캄캄했다. 고등학생 교범님은 수련시간에 좀처럼 웃는 법이 없다. 마치 남자들이 군대에서 악마의 조교를 만나면 이런 느낌일까? 아주 냉정하고 원칙을 지킨다. 

 


 오늘도 어김없이 기초체력 수련에 돌입한다. 윗몸일으키기를 끝낸 후 누워서 상대방의 허리에 다리를 올리고 위로 손을 쭉 뻗은 후 상체를 일으킨다. 다른 사람과는 달리 악마의 조교같은 교범님은 손바닥을 터치해야 숫자를 카운팅 해준다. 처음 몇 번은 터치가 안되어 원래 개수인 20개보다 몇 개를 더 했다. 교범님은 바닥에 있는 나의 잠재력까지 끌어올려주는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이후에 제자리 뛰기 100번, 높이 뛰기 10번을 3세트 할 때도 '나이스!'라는 말을 거의 듣지 못한다. 높이 뛰기 할 때도 손을 올리라고 자세교정만 해줄 뿐이다. 


  손을 머리뒤로 깍지 낀 후 무릎을 구부려 그대로 옆으로 들어 올릴 때도 교범님의 눈빛은 강렬하다. 아니다. 뭐가 아무 생각이 없는 로봇 같은 눈빛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무 감정이 없고 입력된 것만 할 수 있는 그런 로봇 말이다. 감정을 느낄 수 없어서 더 무섭기도 하다. 


"머리에 깍지를 낍니다."

"다리를 더 높게 듭니다."

"발꿈치를 더 듭니다."  


 이 말을 듣고 힘들지만 끝까지 완수해 내긴 하는 모습이 대단하기도 하고 불가능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교범님의 냉철함도 대단하다. 관장님이 힘들어하는 나를 보시면서 '누님은 좀 천천히'라는 말을 해주셔도 교범님의 눈빛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번에는 교범님을 업고 스쾃 60개를 한다. 처음 10개부터 벌써 힘이 들지만 정신력으로 50개까지 채운다. 나머지 10개는 더 깊게 앉으라는 교범님의 지시에 그나마 있는 힘을 짜낸다. 마지막 한 개를 할 때 교범님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린다. 

 "바닥 터치합니다!!"

 "으아아악!" 악으로 깡으로 바닥을 터치하고 일어나니 옆에서 지도하시던 관장님이 '용울음' 소리가 들린다며 웃는다. 업혀있던 교범님을 거의 내동댕이 치다시피 한다. 


 그 뒤로도 플라이킥을 좌우로 10번씩 하고 다리 넘기기를 10번씩 한 후에 본격적인 킥연습에 들어간다. 나의 힘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았으나 그래도 멈추지 않는다. 로우킥을 10번씩 빠르게 5세트를 했다. 좌, 우로 했으니 총 100번을 했다. 얼굴에서 땀이 뚝뚝 떨어져 눈으로 살짝 들어가 옷깃으로 땀을 훔쳐낸다. 그다음에는 3명씩 짝을 이루어 가운데에 교범님을 두고 두 명이 번갈아 미들킥을 찬다. 나 혼자 했을 때와는 다르게 리듬을 깨면 안 되고 왠지 지고 싶은 생각이 없어 죽을힘을 다해 미들킥을 찬다. 특히, 상대방이 나같은 중년의 여성분이어서 더 지고 싶지 않았다. 


 욕심을 많이 부렸던 걸까? 집에 와보니 발등에 시퍼런 멍이 들어있다. 킥을 찰 때 정강이로 차야하는데 힘이 빠져서 발등으로 찼나 보다. 멍이 든 발등을 보니 온갖 감정과 생각이 다 들었다. 굳이 고생을 사서 하는 느낌이 강했고, 이 나이에 무에타이라는 운동에 도전하여 영광의 상처를 얻은 나 자신이 정말 멋져 보이기도 했다. 욕심부리지 말고 해야 좋아하는 운동을 오래도록 꾸준히 할 수 있으니 부상 입지 않도록 유념해야겠다는 생각도 머릿속에 가득 찼다. 혹시라도 발가락 골절이라도 되면 큰일이 나기 때문에 앞으로 몸을 좀 사려야겠다. 다른 사람과 경쟁하지 않고 무에타이라는 운동을 즐길 수 있도록 나의 체력과 컨디션을 항상 살피는 자세도 이번 기회를 통해 배운다.


 집에 와서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푹 자니 다음 날 코감기가 나은 것 같다. 


운동이 약이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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