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느긋 Nov 04. 2024

무에타이 대회, 난생처음 직관하다!

 얼마전, 내가 다니고 있는 무에타이 체육관에서 사범님을 포함한 총 3명이 대회에 참가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집에서 한 시간 반정도 걸리는 지역에서 무에타이 경기가 열린다는 소리에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아직 무에타이라는 거친 운동을 시작한 지 3개월도 되지 않은 중년의 아줌마가 타 지역으로 경기까지 보러 간다고 하니 남편이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봤다. 투덜은 대지만 운전까지 해주는 고마운 남편 덕분에 난생처음으로 무에타이 대회를 직관하러 갈 수 있었다.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에 걸쳐 무에타이 대회가 진행되었는데 아쉽게도 일요일 경기만 직관을 할 수 있었다. 이번 대회는 체급별 대항전에 국제전까지 있어서 규모가 상당히 큰 경기였다. 평소 운동을 할 때 친절하게 잘 알려주시는 사범님의 경기가 토요일에 있었는데 못 봐서 좀 서운하였다. 멋진 중2 여학생의 경기도 오전에 진행되어서 보지는 못하였지만 이겼다는 소식이 들려와 너무 좋았다. 그 친구의 전력은 5전 5승! 승률 100%! 이번에도 고등학생 언니와 붙었는데 당당히 우승 트로피를 손에 쥐었다고 해서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 주었다.


 수련시간에 내가 아줌마라고 해서 절대 봐주지 않는 무시무시한 악마의 조교 같은 교범님의 경기만 볼 수 있었다. 1시에 경기가 시작된다고 해서 맞춰서 갔으나 각종 의식 및 내빈 소개, 인사말 등으로 진짜 경기는 2시 정도에 시작된 것 같다. 11월이었지만 7,8월 같은 더위에 관람객과 선수들은 지쳐가는 듯하였다. 멀리서 경기를 준비하는 우리 체육관 식구들이 보여 조심스레 다가가 인사를 하였다. 그동안 체중감량을 힘들게 했을 선수가 너무 안쓰러웠고 끝까지 호흡을 잃지 않으려 연습을 하는 모습이 정말 멋져 보였다.

경기 전 몸을 푸는 선수와 사범님

 

 장내 아나운서의 여러 내빈들 소개가 끝나고 심판 소개가 이어졌다. 심판들은 주로 전 챔피언들 출신인 것 같았는데 4명 중 1명이 여성이라 더 대단해 보였다. 경기 아나운서의 굵은 목소리가 무에타이 경기 분위기를 더 후끈 달아오르게 하였다. '남을 공격하기 전 자신을 보호하는 무술'이라는 무에타이 소개와 함께 경기가 시작되었다. 태국의 전통 음악이 나오면서 정강이에 가드를 찬 사람들이 나와 대결하는 모습에 관중의 함성과 박수가 끊이질 않았다. 뒤이어 여성부 경기가 이어졌는데 20대 초반의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하는 모습은 감동까지 주었다. 이 링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과 땀을 흘렸을지 생각하니 마음이 뭉클해졌다. 초반에 진행되는 경기는 2분씩 3라운드를 하고 판정으로 승패를 가렸다. 주심과 부심 2명이 심사를 하여 판정을 바로 해주고 트로피 시상도 바로 해주는 게 매우 인상적이었다. 쇼맨쉽이 있는 선수는 중간에 춤도 추면서 관객들의 호응도 유도하여 보는 내내 즐거운 장면도 많이 연출되었다.

  

 드디어 우리 체육관의 교범님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머리에 띠를 두르고 관장님과 사범님, 교범님들과 함께 등장하는 장면이 멋지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수련을 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기에 여러 감정이 든 것 같았다. 이번에 하는 경기는 선수들 손에 글러브만 끼어있었고 다른 보호장구는 볼 수 없었다. 나중에 관장님께 들으니 레벨이 높으면 보호장구를 착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예전에 관장님께 들었던 것처럼 링 아래로 입장하지 않고 양쪽에서 코치진들이 링을 눌러주면 선수가 그 위로 링을 넘어가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어서 매우 신기했다. 그리고 경기 직전에 스승님인 관장님이 직접 머리의 띠를 벗겨주는 장면도 볼 수 있었다.



 장내 아나운서의 청코너, 홍코너 소개가 이루어졌다. 이를 통해 여태껏 고등학생인 줄 알았던 교범님의 나이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우리 아들과 동갑인 중 3이었다. 두 선수의 나이, 삭발을 한 머리스타일이 똑같고 몸무게, 키가 매우 비슷하여 누가 이길지 가늠을 할 수 없었다. 우리 교범님이 이기길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상대 선수는 홈그라운드에서 경기를 하여 응원단이 매우 많았는데 우리 쪽은 그에 비해 사람이 별로 많지 않았다.


 경기 자체는 막상 막하였다. 3분 3라운드가 끝나고 주심과 부심들이 종이를 심판에게 넘겨주었다. 발표를 할 때마다 떨렸다. 결과는 연장전! 3분 1라운드를 더 뛰어야 한다. 두 선수는 이미 체력적으로 많이 지쳐 보였다. 햇살도 너무 강했다. 쉬는 시간 사범님이 1분 동안 얼음을 선수 목에 대고 계속 코치를 해주는 것을 보았다. 마우스피스도 빼서 물로 한번 헹구고 다시 끼워주는 코치진들의 간절한 심정도 느낄 수 있었다. 연장전에서는 상대방의 응원이 너무 강하여 나도 힘껏 선수의 이름을 부르며 소리를 냈는데 결과는 우리 편의 패여서 너무나 아쉬웠다. 끝나고 링 밖으로 내려오는데 방해가 될까 봐 선수 가까이 가지도 못했다. 오늘 경기가 교범님의 데뷔전이라고 들었는데 많은 경험이 되었으리라 본다.


 경기가 끝나고 교범님의 아쉬운 얼굴이 아직도 기억에 남지만 승패를 받아들이고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자세가 진정한 무도인처럼 느껴졌다. 링 밖으로 내려오기 전 상대방의 진영으로 가서 상대방의 코치진에게 물을 받아먹는 모습에서 무도인의 예의와 정도 느껴져 정말 좋았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와 쉬는데 관장님으로부터 톡이 와있었다. 한창 체육관 옥상에서 라면과 삼겹살 파티를 하는 사진과 함께 응원 와줘서 고마웠다는 인사였다. 그동안 선수들에게 계체량을 위한 체중 감량이 얼마나 힘들었지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기에 이 시간을 후회 없이 즐기길 바랐는데 역시 젊고 어린 학생들이라 회복탄력성이 매우 좋은 것 같았다.

 


 무에타이 시작 한지 만 3개월이 되어 간다. 처음 무에타이 시작 목적인 뱃살은 하나도 빠지지 않았다. 오히려 근육과 지방이 붙어 '건강한 돼지'가 어울리는 몸이 되었다. 킥을 잘못차 다리에 멍이 들기도 하지만 하면 할수록 무에타이의 매력에 헤어 나올 수 없다. 땀을 흘리는 그 기분이 좋고,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과 운동을 하면 내가 살아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40대 중년의 아줌마가 흔히 하는 운동은 아니므로 나름의 자부심도 가지고 있다. 아들 덕분에 무에타이를 시작했지만 아들은 지금 이 운동을 하지 않고 나만 하고 있다. 어쨌든 덕분에 난생처음 무에타이 경기를 눈앞에서 보고 그 열기를 직접 느낄 수 있었다.  




 오늘 무에타이 수련이 끝나고 관장님이 한마디 하셨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누님도 나중에 대회 나가야죠!"
이전 07화 무에타이, 선배가 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