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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긋 Oct 30. 2024

무에타이, 선배가 되다!

 주로 가던 5시 30분 부 대신 7시 부에 가니 처음 보는 얼굴이 있었다. 조금 전에 상담을 받고 체험까지 하러 온 20대의 신입 여성 회원이었다. 정수리까지 바짝 끌어모아 둥글게 만든 똥머리가 운동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듯하였다. 그녀와 눈인사를 가볍게 하고 기초 달리기를 위해 체육관 뒤쪽으로 모이니 사범님이 나와 짝을 지어주셨다. 체육관을 왔다 갔다 3번씩, 6번씩 뛴 후 3분 동안 1,2라운드를 계속 뛰는 기본 체력운동으로서 제대로 하면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른다. 


 신입회원과 짝이 된 것은 처음이다. 그동안 운동 짝으로 사범님, 교범님, 고문님 등 경력이 많은 분들과 함께 하여 운동 강도가 매우 강했다. 일단 그녀는 무에타이를 오늘 처음으로 한 신입회원이므로 그녀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뛰기 시작하였다. 속도는 빠르지 않지만 1라운드 3분 동안 걷지도 쉬지도 않은 그녀가 대단해 보였다. 속도는 매우 느려 그녀와 같이 뛰는 나도 덕분에 수월하게 1라운드를 마칠 수 있었다. 여느 때와는 달리 숨이 하나도 차지 않았다. 30초를 쉬고 2라운드 3분 동안 뛰기 시작하였다. 내 기준으로 보통 25회~27회 왕복을 하는데 이번에는 21번 정도 뛰어서 전혀 힘들지 않았다. 나중에는 우리와 함께 사범님도 뛰었다. '누님도 처음에는 달리기를 매우 힘들어하셨는데 지금은 많이 체력이 올라오신 것 같습니다!' 라며 내가 처음 무에타이를 시작했을 때 모습을 상기시켜 주었다. 


 달리기가 끝나고 바로 기초 체력 훈련에 돌입했다. 어리둥절한 그녀의 모습을 보니 너무 귀엽다. 나와 발목을 끼고 윗몸일으키기, 비틀어 윗몸일으키기를 같이 하는데 끝까지 잘 해내는 자세가 대단하였다. 눈을 질끈 감고 마지막 하나까지 다 해내는 모습에서 나의 첫 무에타이 수련시간이 생각났다. 불과 2-3개월 전이지만 조금이라도 먼저 했다고 내가 그녀를 리드하는 모습이 참 재밌었다. 


 제자리 뛰기 100번, 높이 뛰기 10번을 각각 3세트를 하면서 얼굴에서 떨어지는 굵은 땀방울을 오랜만에 보았는지 그녀는 생각보다 강도 높은 운동에 당황한 듯 보였다. 

 "아, 믿을 수 없어!"

 "이건 현실이 아니야!" 

 "20대의 체력이 이 정도라니..."라는 그녀의 말들이 너무 재밌었다. 

 나도 힘이 들어 숨이 헉헉대기 시작하지만 여느 때보다 숫자를 큰 목소리로 외친다. 그녀가 힘을 짜낼 수 있도록 '나이스!'라는 응원의 말을 멈추지 않는다. 나 또한 무에타이 선배님들과 운동을 할 때 이런 격려의 말들이 매우 큰 힘이 되었기에 한 번이라도 신경 써서 더 외쳐준다. 


 이번에는 4명이 팀을 이루어 어깨동무를 한다. "150번 앉았다 일어났다를 합니다!"라는 사범님의 말이 끝나자마자 누군가 숫자를 크게 세며 동작을 시작한다. 140번은 빠르게 살짝 앉았다 일어났다를 한다. 마지막 10번은 더 깊게 앉고 일어나기를 반복하는데 이 과정은 정말 정신력으로 버텨야 한다. 나의 짝은 안타깝게도 마지막 10번은 함께 하지 못하고 결국 무릎을 꿇었다. 오늘은 하지 않았던 짝을 엎고 스쾃를 했더라면 그녀의  동그란 눈이 더 커졌을 것 같다. 


 쉬지 않고 다음 훈련에 돌입한다. 바닥을 양손으로 차고 일어나는 동작이다. 이때 두발은 하늘을 향해 높게 들어야 하고 한 번에 일어서야 한다. 한 번에 일어서지 않으면 올라올 때 힘이 들어 양손으로 바닥을 확 차고 순식간에 일어나야 한다. 총 15번이다.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10번만 하라고 했는데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15번을 이를 악물고 다 해내었다. 그 모습을 본 관장님이 대단하다고 칭찬을 해주셨다. 


체육관 벽면에 걸려있는 사진이 꽤 멋지다


 기초체력훈련은 어느 정도 내가 리드가 가능했는데 본격적인 펀치 연습은 나도 아직 햇병아리라서 리드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래도 2-3달 먼저 했다고 장갑을 끼고 글러브를 착용하는 법을 알려주고 그녀의 자세를 조금 수정해 준다.


 "오른쪽 뒤꿈치 드셔야 해요."

 "앞으로 몸을 숙이시면 안 돼요."

 "왼손부터 왼발에 힘주시며 원, 투 잽 20개 하실게요" 등 말하는 나 자신이 조금 낯설었다.


 관장님이 이런 우리의 모습을 보고 흐뭇해하신다. 항상 순환의 삶과 배움을 강조하시는 관장님의 철학을 우리가 몸소 실천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라고 짐작을 해보았다. 내가 배운 것을 그대로 남에게 알려주고 남음 나에게 알려주는 무에타이의 정신이 너무 아름다웠다. 


 그녀는 중간에 한 번도 쉬지 않고 1시간의 수련을 다 완수하였다. 같은 초보인 나와 운동을 해서 그녀에게 많은 도움은 안되었겠지만 나도 나름 신선하고 재밌는 경험이었다. 운동이 끝나면 체육관 거울 맞은편에 일렬로 서서 관장님의 말씀을 듣는데 오늘도 참으로 주옥같은 말들이 쏟아진다. 


 "다음 주가 시합이 있어서 평소보다 조금 더 강도 높은 운동을 하였습니다. 선수든 신입회원이든 한 공간에서 같은 내용으로 수련을 합니다. 강도는 자신의 몸에 맞게 잘 조절하시고 컨디션도 항상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훈련은 평소의 100만큼만 하면 절대 늘지 않습니다. 110, 120을 훈련할 때 사용하고 끌어내어야 실제 시합 때 90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진짜 힘들어야 운동과 체력이 늡니다. 물론 힘들면 중간에 쉬어도 괜찮습니다!"


 "운동이든 공부든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운동을 하는 이유는 누군가를 해하거나 공격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한 번에 되는 것은 아니므로 절대 욕심부리지 말고 꾸준히 해야 합니다!"


 말씀이 끝나자 관장님께 인사를 하고 양쪽을 보며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오늘 끝까지 수련을 잘 끝낸 그녀를 보고 관장님께서 칭찬을 아끼지 않으신다. 나도 옆에서 '대단하다'라고 연신 감탄을 한다. "원래 처음 오면 이렇게 끝까지 하는 분이 별로 없는데, 역시 여성의 힘은 대단합니다!"라는 관장님의 말씀을 듣고 쑥스러운지 힘은 없어 보이지만 연신 웃는 그녀의 밝은 기운이 정말 좋았다. 다음에 운동 짝으로 만나면 더 응원을 해줘야지! 

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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