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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과장 Sep 20. 2024

늙어가는 흔적들, 남아있는 추억들

그 시절, 옥수수키 반만하던 내가

어린 매실나무, 대추나무

대롱대롱 열매 따먹을 수 있을 만큼

성장해있다.


늘 다정히 반겨부던 문지기

쌍둥이 은행나무

하늘 끝까지 닿을 듯 보였던

나의 거인이엿고


우리의 작은 숲

양쪽 밤나무 밭

그 시절 내가 타잔이 되는

밀림이였는데


이사를 가고, 졸업하고

얼마만에 만났길래


나의 고향, 나의 추억

이렇게 허전하고 작아보이니


우리 할아버지

명절마다 계속 늙으셨지

늙은 나무같은 피부와

가을 나무같은 머리를 하고


그렇게 어느 해, 우리곁을 떠나셨지

그렇게 나무곁으로 떠나셨지


그 시절 우리의 젊음을 먹고

노란 은행잎을 내려

그 품속에 파고들게 하던 

그 포근한 나무가


외로움에 시들어가

고요함에 시들어가


호랑이 동상은 녹슬어 색을 잃고

나 무서워 하던 그네는 종적을 감췄다.


사마귀와 방아깨비 잡던

부들 흔들리던 그 연못과

화단의 꽃들도 무언가 늙었다.


운동장 앞 게시판을 보며

나 소방관이 하고 싶다고 소리쳤지


운동장 옆 작은 텃밭에서

나 거대한 고구마를 캐어 뒤로 넘어갔지


밤나무 꽃 송충이로 착각해

놀라 뛰어가던 그 소리를

이제 듣지 못해 시들어가


내 기억 속 노랗던 풍경

스릴 넘치던 장면은


시들어가는 세월에 

가차없이 지나가는 시간속에

사라지는 소란스러움에

폐교되고 있었구나


두 은행나무와

밤나무 숲 사이로 등교하면

하늘까지 푸르러서 


꼭 이 길이 나를 위한 

호박마차 같았다.


내 아이 생길 때 쯤이면

이 풍경과 함께 

이 학교도 폐교를 피하지 못할 것이다.


이미 나 옥수수키만하던 시절부터

아이가 없는 시골 외딴 학교

너희만이 여길 지키는구나


노랗고 거대한

잭과 콩나무보다 거대한

하늘을 찌를만큼 크던 은행나무야


노란 우산을 쓰고

푹신한 은행잎 침대를 만들어주던 

다정한 은행나무야


토끼풀 엮어 은행나무 잎파리

왕관이라며 엮어놀던

은행나무야


나 큰 가지사이 허벅지가 끼여 

한참 혼자 울어대던

밤나무야


옥상탈출 나무타기 하다보면

내 손에 송충이를 보내주던

장난꾸러기 밤나무야


바삭바삭 이파리 사이

고승도치같이 둥글고 파란 덜익은 밤송이

더위를 막아주던 밤나무야


수확철에 삶아먹던 밤과

우유곽에 구워먹던 은행의 맛


절대 잊지 못하는

동화같은 우리의 추억

낡은 추억이 되어 버리고 있지만

나 잊지 못하는 추억이기도 하지


나보다 먼저 태어나

나보다 늦게 먼지가 될 너희인데

나 벌써 이리 그리워 한다.


언젠가 그림책을 그려야겠다

너희가 선물한 기억을 

언젠가 태어날 아이들에게

선물하고 싶어서


너희 없어지더라도, 

너희 사라지더라도,

너희 더 이상 예전같이 못하더라도


내가 너희에게 받은

소박하고 오래된 선물들을

나 똑같이 선물하고 싶어서


이렇게라도 너희를 남겨놓고 싶어서

그렇게라도 이 기억과

이 추억을 나만의 것이 아닌

그 누가 와도 볼 수 있게 남겨두어 


너희가 있었고

너희와 함께했었고

너희가 무엇을 주었는지

꼭 남기고 싶었다


너무 슬프다.

그래 사실 나는 너무 슬픈 것이다.

미안하고 속상한거다.


잊혀지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 그리고 우리 먼지되면

잊혀질 너희가 너무 안쓰러워서


나만큼 너희도 우릴 그리워 할것 같아서

그래서 처음으로

너희를 생각하면서

이 유치한 시를 써보는 것이다


언제적에, 문암초등학교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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