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나의 병역 이야기
대학교 1학년이 끝나고 다른 친구들처럼 군대를 가기 위하여 휴학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군대를 미루려고 했었다. 프로게이머가 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종강 후 본가에 와서 친구들과 만남도 최소화하고 자는 시간과 밥 먹는 시간도 줄여가며 게임에 몰두했다. 그 결과 프로게이머를 준비하는 사람들과 친해졌고 같이 연습 경기도 하게 되었고 심지어 프로게이머 지망생들을 교육하는 학원에서 연락이 오기도 했다. 연락이 1주일만 일찍 왔더라면.. 나는 이미 다음 주에 입대가 예정되어 있었다. 프로게이머는 다른 직업들보다 은퇴가 빠르다. 그렇기 때문에 입대는 사실상 프로게이머라는 꿈을 포기하는 것과 같았다. 그렇게 나는 프로게이머라는 꿈을 포기하게 되었다.
나는 또래 친구들에 비해 늦게 입대했다. 그래서 현재 군대에 관한 여러 소식들을 이미 접 할 수 있었다. 내가 입대하던 시기에는 한창 코로나로 인하여 훈련들이 축소되고 군인 인권 문제가 이슈였기 때문에 제법 할만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또한 나는 평소에도 다른 사람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았고 남들과 어울리는 일에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군대가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설레는 마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입대 전날 밤하늘을 보며 맥주와 함께 담배를 그렇게 많이 폈던 것을 생각해 보면 마음 한 구석에는 복잡한 감정이 남아있었던 것 같다. 그건 아마 결국 포기해 버린 프로게이머라는 꿈 그리고 아직 사회에 남은 여러 미련들 때문이었던 것 같다.
군대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답답한 조직이었다.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것보다는 반드시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원칙이었기 때문이다. 힘들었던 훈련 맛없었던 밥 그런 것들 보다는 그런 답답한 군대라는 조직의 체계가 나를 힘들게 했다. 하지만 나는 사회에서 했던 것과 똑같이 행동했었다. 남들이 뭐라고 하던 신경 쓰지 않았다. 내 생각에 옳다고 믿는 행동을 하였고 그렇지 않은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군생활 초반 선임들이나 동기들은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밖에서 어떤 일을 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도 안 되는 군대의 규칙을 당연하다는 듯이 따르는 사람들이 나는 너무 싫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 중에서도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있었고 또 이런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도 군대라는 조직에 대해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고 내 신념 안에서 조금씩 적응하기 시작했다. 대학생 때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면 군대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부모님이 정치인이시고 명문대 출신이지만 엉뚱하고 재밌었던 형, 나와 6살 7살 차이가 나는 한의사를 준비하던 인자하고 지혜로웠던 멋진 형, 철봉을 사랑하고 머리가 정말 좋았던 주식을 하던 형 그리고 가구 디자인을 하며 군생활 동안 열심히 그림을 그렸던 나의 인생을 바꿔준 형.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며 많은 것들을 배웠다. 그리고 다들 각자의 목표나 꿈을 위해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았다. 군대라는 답답한 장소에 있었지만 사회에 있는 지금 다시 찾아봐도 그때 우리만큼 빛이 났던 사람들은 없었던 것 같다. 나도 그런 사람들 틈에서 지고 싶지 않았다. 패션 디자이너가 될지는 아직 확신하지 못했지만 열심히 공부했다.
나는 동기들 중에 제일 마지막으로 전역했다. 어느 정도 후임들이 생기기 시작하고부터는 군생활에 대해 나름 잘한다는 인식을 가진 사람이 되었고 그래서 처음과는 다르게 간부님들도 나의 논리적인 의견들을 존중해 주셨다. 나는 후임들에게 잘해주는 선임이었다. 후임이 잘 못하는 일이라면 잘하는 내가 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찌 되었든 전역쯤 다들 나를 좋아했었던 것 같다. 내 착각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보통 전역 날에는 군 생활을 같이한 사람들과 다 같이 사진을 찍는 것이 암묵적 규칙이었다. 하지만 나는 전역의 날이 밝자마자 사진도 찍지 않고 문을 나섰다. 그동안 많은 추억들이 있었고 많이 배웠고 고마웠지만 나는 사회에서 할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군대에서 내가 공부를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인지 처음 알았고 일머리는 없지만 머리는 꽤나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옷을 많이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입대 전 나는 꿈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전역했을 때 나는 내 꿈이 무엇인지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리고 꿈을 위해서 어떤 일을 해야 될지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나의 목표를 위한 새로운 출발을 위해 부대 입구를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어 나갔다. 사슴인지 고라니인지 모르는 동물이 나의 새로운 출발을 응원해 주는 듯 부대 입구까지 함께 걸어가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