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그래도 나는 도망치고 싶었다
나는 말이 많은 아이였다.
공부를 잘하지도, 운동을 잘하지도 않았지만 내 주위에는 늘 친구들이 많았다.
말이 많다는 것은 큰 장점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말의 힘을 알았다.
말 한마디로 웃길 수 있었고 친구들과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더 빨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들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점점 더 많이 말하는 아이가 되었다.
하지만 말이 많은 만큼 탈도 많았다.
생가보다 먼저 입이 움직였다.
때로는 나의 깃털처럼 가벼운 말이 친구에게 상처가 되기도 했다.
그런 나를 본 부모님은 종종 ‘말조심’을 당부하셨다.
하지만 어린 나에게 있어 부모님의 말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수다스러웠고 늘 생각보다 말이 앞서는 아이였다.
그날도 그랬다.
초등학교 6학년 봄, 쉬는 시간이었다.
나는 친구와 말다툼을 했다.
평소에도 친한 친구였기에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따라 친구는 화가 많이 났나 보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친구는 화를 참지 못하고 책상 위에 있던 단단한 무언가를 들고 던졌다.
“와장창!”
무언가는 내 책상 근처를 향해 날아갔고, 그 뒤에 있는 창문에 금이 갔다.
그 순간 우리 둘 다 숨을 멈췄고 시끄럽던 교실 전체가 조용해졌다.
선생님이 들어오셨고 금이 간 유리를 보며 소리쳤다.
“이거 누가 그랬어!”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손을 들었다.
“저요…”
나는 그 상황이 무서웠다.
누군가 손을 들어야 할 것 같았다.
그 누군가가 내가 되어야 할 것 같았다.
친구가 왜 그랬는지 나는 알고 있으니까.
나는 크게 혼났다.
그날 선생님과 부모님은 내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 물었지만, 나는 사실대로 이야기할 수 없었다.
나는 어른들에게 나쁜 아이가 되었다.
반 친구들은 창문을 깬 범인이 내가 아니고 친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자세한 이유는 알지 못했다.
친구가 화가 난 이유가 나라는 사실을.
반 친구들에게 나의 친구는 나쁜 아이가 되어있었고,
오히려 나는 친구를 위해 손을 드는 멋있는 아이가 되어있었다.
다음 날 아침 학교로 가는 길.
나는 교문 앞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속이 안 좋았다.
머리도 아픈 것 같았다.
복잡해진 모든 상황이 싫었고,
내가 너무 작게만 느껴졌다.
나는 돌아섰고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학교 근처 공원에서 아무 생각 없이 하늘을 보며 그저 앉아 있었다.
머리가 상쾌해졌고 기분이 좋아졌다.
그날 나는 수업 대신 ‘도망‘을 선택했다.
결국 나중에 왜 학교에 가지 않았냐며 선생님과 부모님에게 혼났지만, 괜찮았다.
나는 ‘나를 지키는 방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그때는 그것밖에 할 수 없었다.
학교에 가지 않아 혼날 것을 알고 있었고 사실은 무서웠지만 그래도 도망치고 싶었다.
그날은 달리기도 느리고 용기도 없었던 내가 처음으로 도망친 날이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감정은 조금 자유로웠다.
이후 나는 언제든지 그날처럼 조용히 도망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