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약하고 비겁한 사람만 도망치는 게 아니야
도망이라는 단어는 나와 먼 이야기 같았다.
어느 날 우연히 TV에서 동물들이 나오는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다큐에는 관심도 없을 나이였지만 나는 잠시 화면 속에 멈춰버렸다.
어린 시절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던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화면 속에는 동물의 왕이라 불리는 사자가 드넓은 초원 위에서 홀로 느긋하게 쉬고 있었다.
선선한 바람에 사자는 졸고 있었고 평화로워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저 멀리서 초식동물 한 마리가 사자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게 아닌가.
달려오는 동물은 사자에게 한 입 거리도 되지 않을 듯한 작은 초식 동물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잘못 본 줄 알았다.
"죽고 싶어 환장했나?"
"초식동물은 늘 도망치는 동물이 아니었나?"
나는 나의 상식을 의심했다.
하지만 내 상식을 깨뜨린 것은 바로 다음 장면이었다.
도망친 것은 다름 아닌 사자였다.
갑자기 돌진하는 초식동물에 놀란 사자는 번뜩 눈을 뜨고 재빨리 일어나 자리를 피했다.
나는 두 눈을 의심했다.
동물의 왕 사자가 도망을 친다고?
내가 알던 세계에서 육식동물은 사냥을 위해 늘 쫓아다녔고,
초식동물은 목숨을 지키기 위해 늘 도망 다녔다.
강함을 가지고 태어난 존재는 약한 존재를 위협했고, 약한 존재는 생존을 위해 늘 도망치는 세계.
나는 육식동물도 초식동물도 아니었다.
강하게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약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나는 늘 당당한 아이였다.
키가 크고 운동을 잘하는 아이는 아니었지만,
내 생각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려 했다.
논리적으로 생각했고 행동했다.
나보다 강한 사람에게도 약한 사람에게도 나는 늘 일관으로 행동하고 얘기했다.
심지어 어린 나이에 어른에게도 단지 ‘어른‘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따르지 않았다.
내가 옳다고 생각했으면 주장했고 틀렸다 생각하면 사과했다.
하지만 세상은 내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았다.
말이 통하지 않는 순간들도 많았고 아무리 정직해도 상처만 돌아오는 순간도 많았다.
그래서 나는 ‘도망’을 선택했는지도 모르겠다.
약하고 비겁해서가 아니라 때로는 도망이 가장 빠르고 정확한 방어라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자는 도망쳤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자의 도망은 ‘힘이 없고 약해서’ 한 행동이 아니었다.
갑작스럽고 당황스러운 순간.
혹시나 하는 순간에 대비한 사자는 지혜로운 선택을 했던 것 같다.
나에게 ‘도망’은 단순한 방어가 아닌 지혜로운 선택의 수단이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