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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라는 몸의 신호

#4 속이 뒤틀릴 때, 마음이 먼저 도망치고 있었다.

by 지민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다른 지역의 중학교에 입학했다.

사실 부모님은 졸업 전부터 이미 이사를 계획하고 있었고,

새 집에서 예전 친구들과 같은 중학교에 다니는 것도 가능했다.

버스를 타고 40분 남짓. 사실 먼 거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굳이 더 멀고 낯선 곳을 택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웃고 떠들던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점점 조용해지고 있었다.

겉으로는 웃었지만, 속으로는 늘 조심하며 숨을 죽이고 있었다.



2화에서 이야기했던 사건 이후,

나는 더 이상 편하게 숨 쉴 수 없었다.

사소한 말 한마디도 조심하게 되었고,

친구들의 시선이 늘 신경 쓰였다.


그래서 나는 또 도망쳤다.

이번에는 달리지 않았다.

단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천천히 멀어졌다.



새로운 학교는 낯설고 조용했다.

알고 있는 친구들끼리 이미 무리를 이루고 있었고,

나는 그 속에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예전처럼 나서서 이야기하고 먼저 다가가는 건 왠지 겁이 났다.



같은 실수를 반복할까 이번에는 조용히 들어주고 맞장구를 치며 시간을 보냈다.

전처럼 친구가 많지는 않았지만,

나를 편하게 여기는 아이들이 생겼고,

나는 그렇게 한 학기를 채워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몸이 아프기 시작한 것이다.

밥을 먹지 않아도 체하고 속이 답답했다.

가끔은 머리까지 지끈거렸다.

누군가 말을 걸어도 대답하기 힘들었고,

집에 돌아오면 혼자 숨을 몰아쉬었다.



나는 아픈 게 아니었다.

몸이 도망치고 있었던 것이다.

말을 참는 대신, 마음을 감추는 대신,

내 몸이 먼저 반응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도망친다 ‘는 것은 꼭 어디로 달아나는 것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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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