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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고NAGO May 20. 2024

나를 찾아서-[6]

두 달간의 여행 끝. 그리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다.

여행을 하며 계획적인 것과 우연함, 그리고 행복과의 관계를 생각한 결과로 내 가치관이 크게 변했다. 철저한 계획을 추구했던 것에서 흘러가는 대로 경험하는 우연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무계획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무계획은 무모하고, 무모한 것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계획은 필요하고, 더 질적인 경험을 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여행을 마치고, 내게 남은 것이 무엇인지 확인했다. 가치관의 변화, 다양한 삶의 방식. 두 가지가 남은 것 같다. 첫 번째로, 철저한 계획추구형에서 최소한의 계획은 마련하되,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고 상상하지 못한 변수들이 발생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것을 깨닫고 나니 변수들을 대할 때 크게 동요하기보다 차분히 대할 수 있는 태도를 갖게 됐다. 두 번째,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갖고 안정적인 삶을 사는 것은 '좋은' 삶의 방식이기보다 '일반적으로 많은 이들이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고, 그 방식 외에도 저에 맞는 각기 다른 다양한 방식으로 삶을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스스로가 만족하는 방식대로 사는 것이 '나 자신에게' 좋은 방식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여행을 통해 알게 된 두 가지를 토대로, '나'를 점검해 보았다. 공무원으로 오랜 기간 일을 해서 그 분야에서는 충분한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공무원 일 (더 넓히면) 직장생활 외에는 경험이 많지 않다는 의미가 되었다. 나 스스로 만족하는 방식으로 살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다양한 경험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많은 걸 경험해야 내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 어떤 걸 싫어하는지 잘 판단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양한 경험을 위해, 귀국한 후 얼마 되지 않아 부산에서 물류 일을 하고 있는 친구에게 갔다. 그 친구에 따르면 자기가 하는 일이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에 돈을 많이 모을 수 있는 일이라고 해서 관심이 갔고, 마침 자기와 같이 하자는 권유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보통 직접 겪는 일이 아니면 잘 믿지 않는 성격이라 중요한 판단을 할 때는 꼭 내가 직접 보고 느낀 후 결정하는 편이다. 그래서 부산으로 내려갔다. 직접 겪어보니 그 일은 새벽에 하는 택배 배달이었다.


이른 새벽, 택배 번호판(라이선스)을 받은 트럭을 몰고, 물류창고로 향한다. 시간이 되면 많은 택배 트럭과 배송 기사님들이 물류 창고로 모이고, 각 트럭마다 배정된 택배를 기사가 직접 본인의 트럭에 싣는다. 본인에게 배정된 택배를 빠짐없이 싣고, 곧바로 배송을 시작한다. 정해진 택배를 정확한 주소에 배송을 차례차례 완료하고, 마지막 택배까지 배송을 마치면 하루의 일이 끝난다. 즉 퇴근이다. 배정된 택배를 트럭에 싣는 절차부터 마지막 택배를 배송하기의 모든 과정이 소요되는 시간은 기사의 역량에 따라 달라진다. 얼마나 빨리 택배를 트럭에 싣는지, 택배를 배송순서에 따라 순서대로 실었는지, 배송해야 될 주소지를 보고 동선을 어떻게 짜는지, 운전을 얼마나 빨리 하는지 등 모든 절차를 효율적으로 최소화해야 그만큼 퇴근시간이 빨라진다. 그날 실제로 친구가 일한 시간은 2시간 남짓. 보통의 경우를 물어보니 오래 걸리면 4시간, 보통 2~3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2022년 12월 5일, 새벽의 부산

친구 말로는 새벽에 일하긴 하지만 실제로 일하는 시간은 조금밖에 안 되고, 시간대비 버는 돈이 많기 때문에 돈을 모으기 딱 좋다고 했다. 직접 겪어보니 친구가 한 얘기의 의미를 더 잘 이해했다. 하지만, 난 그 일을 하지 않았다. 배송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트럭 번호판(라이선스)이 딸린 중고 트럭 구매비용, 중고 트럭 구매 비용을 갚는 데 걸리는 시간, 밤낮이 바뀌는 일을 장기간 할 수 있는지의 여부 등을 고려할 때 나와는 맞지 않고 내가 장기간 그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상대적으로 돈을 모으기 위해 일정 기간을 희생해야 한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난 그 기간에 더 나은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친구에게 나는 이 일 하고는 잘 맞지 않을 거 같다는 얘기를 전하고, 부산에 온 김에 며칠 친구 집에서 머물렀다. 그러던 중 대학 선배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자기가 일하고 있는 외국계 피트니스 브랜드 업장에서 총괄 매니징을 맡을 사람을 구하고 있는데 나보고 면접 봐 보라는 내용이었다. 통화하는 그 즉시 면접을 보겠다고 전했다. 회사에 들어가는 건 직장생활로 돌아가는 것이지만 생소한 피트니스 업계라는 점이 솔깃했다. 그다음 날 곧바로 서울로 돌아와 면접을 보기 위한 자기소개서, 이력서를 작성했다. 채용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낸 후 일정을 잡고 면접을 봤다. 2차에 걸친 면접 끝에 합격했고, 2023년 1월 2일, 새해부터 피트니스 업계 종사자로서 일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일을 하며 나는 또 다른 가치관의 변화를 맞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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