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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간 과거의 풍경

by 라파엘다

시간 여행이 시작된 지 며칠이 흘렀다. 승민은 10년 전의 과거 속에 갇힌 채 매일 새로운 것을 배우고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풍경이 낯설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의 옷차림, 거리의 간판, 그리고 스마트폰 대신 공중전화를 쓰는 사람들까지. 익숙하면서도 잊고 지냈던 그 시절의 풍경은 그를 아련한 감정으로 휘감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이곳이 단순히 추억의 장소가 아니라 현실임을 실감했다. 모든 것이 생생했다. 사람들의 목소리, 겨울 아침의 찬 공기, 거리에서 들려오는 라디오의 음악까지. 이곳은 그가 그리워했던 과거가 아니라, 다시 살아야 할 또 다른 현재였다.



그날도 승민은 동네 거리를 걷고 있었다. 어린 자신이 다니던 학원이 보였고, 학원 건물 앞에는 익숙한 얼굴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다름 아닌 어린 승민이었다. 당시의 자신은 친구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소리 내어 웃고 있었다. 승민은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서글픈 감정을 느꼈다.


'저 아이는 앞으로 어떤 일을 겪게 될지 모른 채 웃고 있구나.'

그는 자신이 겪었던 고통과 후회를 떠올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이번엔 다르게 만들어야 해. 반드시.'


하지만 문제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는 과거를 바꾸는 일이 단순히 자신만의 선택으로 가능한 일이 아님을 깨달아가고 있었다.



시간 여행 장치의 도움으로 그는 중요한 순간들을 미리 감지할 수 있었다. 장치는 가끔씩 낮은 진동과 빛으로 승민에게 다가올 선택의 순간을 알렸다.

그날, 장치는 그를 작은 공원의 벤치로 이끌었다. 거기엔 어린 수진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여덟 살이었고,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승민은 그녀에게 다가가지 못한 채 멀리서 지켜봤다.

'이날은… 동생이 사고를 당하기 몇 주 전이었지.'

그는 손을 움켜쥐며 자신에게 말했다.

'내가 여기 있는 이유는 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야. 이번에는 놓치지 않을 거야.'


그러나 수진을 따라다니기만 하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었다. 그녀의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더 많은 것을 알아야 했다. 그는 어린 자신과 가족들의 일상을 지켜보며 상황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저녁, 승민은 가족이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장면을 몰래 엿보았다. 어린 자신과 부모님, 그리고 동생 수진이 한 식탁에 둘러앉아 있었다.

“수진아, 오늘 학교 어땠어?”

아버지의 물음에 수진은 신이 난 얼굴로 대답했다.

“오늘 반에서 그림 그리기 대회를 했는데요, 제가 상을 받았어요!”


그 순간, 승민은 부모님의 환한 웃음과 수진의 기뻐하는 얼굴을 보며 마음이 먹먹해졌다.

'이 장면이 이렇게 행복했었나… 왜 난 이런 소중한 순간들을 잊고 살았을까?'


그는 한동안 그들을 바라보며 잊고 지냈던 가족의 모습을 되새겼다. 하지만 이내 그 행복한 장면 뒤에 숨겨진 갈등과 사건들을 떠올렸다.



승민은 며칠간 가족의 일상을 지켜보며, 동생 수진의 사고로 이어졌던 작은 단서들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그 사고는 단순한 불운이 아니었다. 수진의 학교생활, 부모님의 바쁜 일정, 그리고 어린 승민의 무심함이 복합적으로 얽힌 결과였다.


그는 자신에게 묻기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바꿔야 할까? 작은 선택 하나로 모든 걸 달라지게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시간 여행은 단순히 과거를 바꾸는 일이 아니었다. 승민은 자신이 내리는 선택이 가져올 파장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밤, 승민은 다시 장치를 꺼내 들었다. 장치는 희미하게 빛나며 그의 마음을 읽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내가 정말 모든 걸 바꿀 수 있을까?"

장치는 응답하지 않았지만, 그 침묵 속에서 승민은 스스로 결심을 굳혔다.

"과거의 풍경 속에서 답을 찾을 거야. 그리고 동생을 반드시 지킬 방법을 알아낼 거야."


그는 다가올 날들에 대비하며, 과거의 풍경 속에서 더 깊은 의미를 찾아내고 있었다. 과거를 단순히 관찰하는 것을 넘어, 그 속에 얽힌 실타래를 풀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과거로 돌아간 풍경은 승민에게 단순한 기억의 조각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과 가족의 삶을 다시 이해하고, 잃어버린 관계를 되찾는 과정이었다. 그는 과거를 다시 살아가며, 무엇이 진정으로 중요한지 배워가고 있었다.


"모든 것은 이 순간에 달려 있다. 나는 반드시 해낼 것이다."

이렇게 승민은 과거의 풍경 속에서 새로운 희망의 실마리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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