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6개월. 나는 아기를 데리고 외출을 하지 않았다. 예방접종을 위해 필수적으로 가야 하는 병원 두어 번, 양가 가족 집과 출산을 앞둔 친구 집도 6개월이 다 될 때쯤 아기 아빠 차로 한 번씩 다녀왔다. 코로나 시국과 추위, 미세먼지 등 어린 아기에게 너무나 위험한 바깥세상 사정도 있었고, 지독한 집순이 엄마인 탓도 있었다. 산책을 하지 않는 아기에게 유모차와 아기띠는 필요치 않아 한 번도 쓰지 않았다.
그러다 친정엄마가 볼일이 있어 서울에 올라와 우리 집에 묵었다. 산책을 좋아하는 엄마와 같이 걷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갑작스럽게 할머니, 엄마, 아기 3명이 함께 하는 산책을 제안했다. 그 날 마침 미세먼지도 없어 하늘이 맑았고, 마침 내 기분도 상쾌했고, 마침 봄이었다.
어딘가 묵혀있었던, 언니가 물려준 아기띠로 어설프게 아기와 나를 동여매고 혹시 추울 수 있으니 신발과 담요로 아기를 꽁꽁 덮어주었다. 별 것 아닌 산책인데 괜스레 긴장이 되었다. 집 밖을 나서니 안에서 본 것보다 추웠고 바람이 많이 불었다. 바람이 여리디 여린 아기 볼에 닿지 않게 담요를 한껏 더 동여맸다. 아기띠를 한 내 모양새가 영 어설펐지만 엄마가 있어서 왠지 안심이 되었다.
나에게도 간만의 외출이었기에 천천히 아파트 단지를 걸으며 세상 구경을 했다. 두꺼운 마스크를 끼고 있었지만 차갑고 상쾌한 공기가 느껴졌다. 아기는 담요 속에서 연신 좌우를 살펴보며 이곳이 어딘지 확인했다. 집 안에서 조차 거실과 아기방, 화장실만 오가던 6개월이었으니. 오직 그곳이 아기에겐 전부인 공간이었을 텐데, 오늘은 어째 이상하리만치 차가운 온도와 낯선 바람이 자신을 맞이하니 어색할 수밖에.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의 코 가까이서 나는 엄마의 냄새에 안심하는 듯, 내 가슴에 기대었다.
천천히 걷다가 벤치가 보여 엄마와 앉았다. 지나가던 할머니들이 힐끔힐끔 아기를 쳐다본다. 이 동네에선 흔치 않은 어린 아가이기 때문일까. 아주 짧은 산책이었지만 우리 아기만큼 어린 아기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긴, 마트에서 분유도 팔지 않을 만큼 아기 울음소리가 귀한 동네이니.
다시 천천히 걸어 집 방향을 향하니 아기는 이미 내 품속에서 잠들어 있었다. 평소와 다른 걸음, 평소와 다른 온도였을 텐데도 평소처럼 내 품 속에서 잠들었다. 나 역시 엄마와 산책을 할 수 있음이 행복하고 편안했다.항상 처음의 순간에는 미지의 불안함이 따르는 법이지만, 엄마라는 존재는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찰나를 만들어 준다.
다음 주말, 남편과 아기 셋이 집 앞에 천이 흐르는 공원을 산책했다. 그날도 거세게 바람이 불어 아기의 양볼이 발갛게 되었지만 오늘도 아기는 그저 신기한 듯 양쪽을 두리번두리번 살피느라 바빴다. 처음으로 보는 하늘, 처음으로 맞는 찬 바람, 처음으로 맡는 풀내음. 처음으로 느끼는 사람들의 말소리, 멀어졌다가 가까워지는 자동차 소리. 평소와 다른 발걸음, 속도. 아기의 공간이 내 배에서, 침대로, 방으로, 집으로, 아파트 단지 산책로, 그리고 집 앞 공원까지 서서히 팽창했다. 새로운 풍경들을 마주하는 것이 아기에게 제법 피곤한 일이었는지 집에 돌아오는 길은 단잠에 빠졌다.
그 이후 나는 하루에 한 번씩 단 둘이 산책을 나선다. 아직 아기띠 다루는 손이 어설퍼서 준비 시간이 산책 시간보다 훨씬 걸리긴 하지만, 매일 아기에게 바깥 풍경을 보여주면 이곳도 자신의 공간이 될 것이라 여기며 잠시라도 바람을 쐬도록 해준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너의 공간을 넓혀주어 걸어 나갈 준비를 해야 할 테니.
지나가는 사람들과 눈맞춤을 하며 사람을 쬐어준다. 아파트단지나 공원 곳곳의 안내문을 읽고, 오늘의 날씨를 주저리주저리 말로 읊어주며 바깥 세상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느새 만개한 봄의 향 곁에 앉는다. 그렇게 우리 아기는 꽃봉오리를 작게 틔워간다.
그동안 미루고 미루던 산책을 이제야 해서 미안할 따름이지만, 미루어 온 만큼 더 맑고 화창한 하늘을 보여주고 싶은 요즘이다. 시나브로 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