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역사 공부를 시작했다. 1월부터 2월까지 한국사 공부를 하고 3월부터는 세계사 공부를 하고 있다. 애 보기도 바쁜데 돈벌이도 안 되는 뜬금 역사 공부라니. 나름 '꾸준히 무언가를 하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 작심삼일에 그치지 않고 세 달 째 매일 인터넷 강의와 책을 읽으며 공부 중이다.
성인이 된 이후부터 나는 계속 인문학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다. 문과생이며 사회과학도였지만 수능 공부는 머리에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고 대학 전공 공부는 그저 학점을 따기 위한 것일 뿐 금방 휘발되어 나의 지식으로 남지 않았다. 결국 서울 4년제 대학을 졸업했지만 내 머리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야말로 상식이 전혀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시험공부만을 평생 해왔기에 대학 졸업 후에는 그 어떤 공부도 하고 싶지 않았다. 취업을 위해 마지못해 시사 상식 공부를 했지만 그것 역시 목적 달성을 위한 것일 뿐이었다. 그저 공식을 외우는 기분이었고 인적성 검사는 공부의 결과라기보다는 감으로 찍어 맞추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는 인문학 도서를 구경하고 사 모으는 것을 좋아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사놓은 책을 읽지는 않았다. 사는 것만으로도 내 머릿속에 지식이 쌓이는 기분이었다. 지식이 쌓이는 게 아니라 그저 뿌듯함만 수집하고 있었음에도 그 기분을 느끼는 것이 좋았다.
직장인이 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업무에 도움되는 아티클을 열심히 읽고 관련 지식을 쌓긴 했지만 '디지털 마케팅' 업무를 하는 사람이었기에 나의 일은 '트렌드' 그 자체였고 늘 휘발되는 지식처럼 느껴졌다. 내 지식이랍시고 글을 써보면 그저 옛날 유행을 읊는 것이었다. 그래서 마음 맞는 동기들과 스터디 그룹도 만들어 매주 모였지만 그 역시 나의 목마름을 채우진 못했다. 다 같이 모여 떠드는 게 그저 재밌어서, 서로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토론할 뿐 그것이 나의 지식이 되어주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정신없이 지나간 나의 20대에는 학점과 취업이라는 목적 달성을 위한 휘발적인 공부만이 존재했다. 그러다 32살. 아기를 낳고 또 다른 정신없는 시기를 맞이한다. 그 어느 때보다 바쁘고 내 시간이 없는 매일. 그저 아기 배를 불리고 아기 엉덩이를 보송하게 유지시키고 잘 재워서 잘 키우는 게 목적인 시기. 그 속에 나의 인문학에 대한 갈증은 중요도 최하 중에 최하일 뿐이다.
아기를 위해 방 정리를 하다가, 열심히 수집했던 역사책들을 발견했다. 아, 지금이다. 나의 목마름을 채울 수 있는 시기는. 아기가 잠들었을 때 책을 조금씩 읽기 시작했다. 너무 오랜만에 책을 읽는 것이라, 활자들이 어색할 지경이었다. 전자책으로 역사 만화책도 대여해서 함께 읽었다. 결국 역사는 비슷한 내용을 풀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만화책으로 큰 흐름을 먼저 익혔다. 그리고 강의를 들으면서 노트를 쓰고 줄글로 된 역사책을 읽으며 다시 내용을 확인했다. 목적이 있는 공부가 아니라 나를 채우기 위한 공부를 하니 그 어느 때보다 성실하게 차곡차곡 머릿속에 쌓이는 기분이 들었다.
왜 나는 역사 공부를, 지금 할까? 아기만을 위해 살아가는 일상 속에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그 시간은 휘발되지 않아야 한다. 나를 살찌우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전부터 하고 싶었던 것들이 뭘까 생각했고 그것은 공부였다. 대학 졸업 후 그 어떤 공부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항상 공부가 하고 싶었다. 목적 달성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오롯이 나만을 위한.
나는 또 하나의 이유를 붙였다. 나의 갈증이 채워지면, 아기와 함께 공부를 하고 싶다. 아기가 세상을 살면서 처음으로 공부라는 것을 한다면 가르치고 싶은 것이 '글'과 '역사'다. 아기를 똑똑한 사람으로 기르고 싶긴 하지만 그것이 목적은 아니다. 그저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전개할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 반복되는 역사를 공부하면서 자신만의 잣대를 가지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면서도 아기에게 '가르치는 행위'는 하고 싶지 않다. 엄마와 함께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아기와 함께 평생 공부하는 엄마가 될 것이다. 이것은 나 자신을 채워주는 행위이자 아기 역시 자신을 채울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키우는 행위가 되길 바란다. 아기의 인생에 걸쳐 이어질 나의 버킷 리스트. 나는 지금 원대한, 아기의 역사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