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기는 '평균'인가요?

[가족이라는 세계] 나와 아기만의 속도

by 아리


아마도 육아가 힘들어지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 아기가 '평균'에 도달하지 않을까 걱정되기 때문일 것이다. 어디에나 '평균'이 존재하고 특히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의문이 생기기에, 그 평균에 도달하지 못하면 어미 입장에서는 안달이 나고 마는 것이다.


태어난 순간의 무게부터, 머리 둘레, 키는 병원과 조리원에서 매일매일 측정되고 평균 대비 몇 퍼센타일에 해당되는지 계산이 된다. 엄마들은 그 숫자들을 계속해서 들여다보며 우리 아기가 '정상 범주'인지 확인한다.


나 역시 평균에 목매는 삶을 살아온 사람으로서, 나의 2세도 무사히 평균 수치에 안착하길 바랐다. 조리원에서는 매일 아침 몸무게를 측정해 모두가 볼 수 있는 수유실에 걸어두었다. 태어난 날 몸무게가 딱 평균이었던 슬아는, 조리원에서 몸무게 꼴찌였다. 유일하게 안면을 튼 옆방 산모는 슬아 몸무게의 1.5배에 달하는 준 우량아급 아기 몸무게를 자랑했다. 물론 직접 자랑하진 않았지만 그 웅장한 숫자에서 괜히 기가 죽고 만다.


집에 돌아온 이후, 나는 매일같이 체중계에 올랐다. 내 몸무게는 이제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슬아를 안은 채로 무게를 재고, 다시 내 몸무게를 재어서 슬아 몸무게를 예상한다. 어플에 기록을 하면 우리 아기 몸무게가 평균 대비 몇 퍼센타일인지 바로 알려준다. 슬아는 정확히 평균치로 태어나서, 지금까지 하위 25%를 맴돌고 있다. 보통 생후 100일이 되면 태어났을 때 몸무게의 2배가 된다는데 슬아는 생후 4달이 넘어서야 그 숫자에 도달했다.


특히 나는 모유수유를 중점적으로 하는 혼합수유모였기에, 슬아의 몸무게가 늘지 않거나 줄어들면 내 젖의 탓이라고 스스로를 구박했다. 더 많은 미역국을 먹고 더 많은 영양가 좋은 음료수를 마셔서 젖양을 늘려야 해! 슬아에게 더 많은 젖을 먹여야 해! 하지만 모유수유는 결코, 아기가 먹는 양을 측정할 수 없다. 심지어는 아기 몸에 무언가를 부착해 섭취하는 모유량을 예상하는 기계까지 구매하려고 했다.

악착같이 매끼니 먹어댔던 미역국


모유수유 역시 평균의 경쟁에 구속되는 건 마찬가지다. 직접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직수'와 유축기로 젖을 뽑아내는 '유축 수유' 2가지 방식이 있는데, 유축 모유의 양이 산모들의 심리를 굉장히 어지럽힌다. 이것 또한 조리원에서부터 묘한 신경전이 이어지는데 대부분의 산모들이 3시간에 한 번씩 유축 모유를 수유실에 가져다 둔다. 산모의 이름과 시간, 용량이 기록된 젖병들이 수유실에 나란히 쌓인다. 나는 항상 60ml 정도였고 다른 산모들은 100ml 넘는 젖병을 자랑스레 가져다 두었다(실제로 두는 모습을 보진 않았지만 젖병에서 그리 느껴진다). 가끔 새로 온 산모들이 소위 '바닥을 까는' 젖병을 가져다 두면 그들보다 많은 내 젖병을 보며 괜히 으쓱해하기도 했다.

뿌듯해서 찍어두었던 유축 최고 기록



이토록 부질없는 경쟁심이 있을까? 유축 모유의 양은 사실 아무 의미가 없다. 유축기와 아기가 빨아들이는 힘이 다르고 시간이 다르기에 아기가 먹는 모유의 양을 알 수 없는 건 매한가지다. 젖양이 많다고 해서 훌륭하고 행복한 어미가 되는 것도 아니다. 젖양이 아기가 먹는 양에 비해 많으면 항상 젖이 불어 아프고 심하면 유선염에 걸릴 수도 있다. 하지만 모성애가 한껏 고양되어 있는 조리원 속 어미들은, 젖양이 부족해 아기가 말라가느니 내가 아프고 말겠다는 심정으로 매 끼니 미역국을 마시고 기저부 마사지를 하며 젖양을 늘리려고 아등바등한다.


나 역시 몸무게와 모유 양 때문에 생후 100일까지는 계속 스트레스를 받아왔다. 가족들과 대화하면 항상 슬아의 몸무게가 걱정이라고 말했고 병원에 가면 아기 몸무게는 어떠냐고 물었다. 그럴 때마다 가족들과 의사 선생님은 '정상범주니까 걱정하지 말라'라고 했다. 이미 걱정에 눈이 돌아버린 어미에게 그런 말은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조리원 시절 써두었던 육아 일기를 읽었다. 그 내용은 이렇다.


며칠 모유수유를 하며 깨달은 점은 아래와 같다.

1. 나와 슬아는 걱정하는 것보다 건강하다

2. 나와 슬아만의 속도가 있다

3. 슬아는 매일, 매 순간 컨디션이 달라진다

무엇이든 자연스럽게, 진득하게 기다리는 것이 답인 듯싶다.


그래. 난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억지로 젖양을 늘릴 필요도, 매일 아기의 몸무게를 잴 필요가 없다. 아기는 자신이 먹고 싶은 만큼 젖을 먹고, 젖은 아기가 먹는 만큼 알아서 만들어진다. 아기는 자신만의 속도로 먹고 자고 성장한다. 때로는 적게 먹고 싶은 날이 있고 유독 많이 먹고 싶어 칭얼대는 날이 있다. 입이 좀 짧으면 어떻고 몸무게가 좀 적게 나가면 어떠랴. 크게 아픈 곳 없고 때마다 젖을 찾아 먹고 기저귀도 묵직한데. 날 보면서 이렇게 웃어주는데. 엄마, 저는 매일 성장하고 있어요!라고 눈으로 끊임없이 말해주고 있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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