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6개월이 되어 이유식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 나는 그저 모유만 공부하고 이유식에 대해서는 완전한 문외한이었다. 6개월이 되기 직전에 부랴부랴 벼락치기로 공부해서, 전용 냄비 등 도구와 쌀가루를 구매했다.
초기 이유식은 쌀미음부터 시작한다. 완전한 액체였던 모유에서 밥 형태의 고체로 가기 위한 과도기로, 액체에 가까운 고체를 만들어 내야 한다. 20배 죽, 10배 죽, 5배 죽 등으로 표현하는 쌀과 물의 비율에 따라 우리 아기에게 적당한 농도를 찾아야 한다. 겁 많은 나는 20배 죽으로 최초의 이유식을 만들었으나 너무 묽어서 다 흘러 버렸다. 그다음에는 또 너무 되직하게 만들어 먹기 힘들어했다.
쌀미음으로 맛보기가 어느 정도 됐다면 재료를 추가한다. 6개월이 되면 모유에 있는 철분만으로는 부족해서 아기들에게 빈혈이 올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철분 보충을 위해 소고기를 이유식에 꼭 넣어야 한다고. 마침 언니가 한우를 선물해줘서 기름기가 없는 부위를 골라 삶고, 물과 함께 갈아서 쌀미음에 더했다. 한입거리밖에 안 되는 분량의 소고기를 넣고, 이걸 3회에 걸쳐 나눠준다. 아아, 아기의 위란 얼마나 작은 것인가.
그다음부턴 채소를 한 개씩 추가해 본다. 이유식에서 가장 많이 쓰는 채소는 브로콜리. 그 외에도 애호박, 양배추, 비타민, 시금치, 가지 등의 야채들을 하나씩 더해보고, 거부반응이 없는지 확인한다. 나는 도저히 채소를 신선하게 관리하고 먹어도 되는 부분만 골라내고, 조리할 자신이 없어, 채소 큐브를 구매했다. 큐브는 1회 분량이 소분되어 있으며 가격도 합리적이라, 내가 잘 안 먹는 채소라면 큐브로 구매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었다. 이로써 쌀미음, 소고기, 채소 삼합의 이유식을 만들게 된다.
채소를 한 개씩 먹여봤다면 그다음부턴 채소를 추가하여 쌀미음, 소고기, 2가지의 채소를 섞게 된다. 여기까지 오게 되면 거의 한 달이 넘어가는데, 처음엔 물에 쌀가루만 타던 것에서 제법 복잡한 조리 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진화한다. 먼저 소고기의 핏물을 빼고, 삶아서, 믹서기에 갈고, 물에 쌀가루를 탄 것에 섞는다. 여기에 채소 큐브를 추가해서 약한 불에 서서히 끓인다. 이것을 적당한 온도로 식혀서 오늘 먹이고, 나머지는 용기에 담아 이틀 정도 더 먹인다. 사실 재료비만 따지면 상당히 저렴하지만(양이 적은 것도 있고) 조리 과정은 제법 복잡하다. 평소 내가 해 먹던 음식보다 청결함과 신선함에 더 신경 써야 하기 때문에 정성이 한 스푼 더해진다.
초기에는 하루에 1~2번 정도 맛보기 느낌으로 먹이다가 중기, 후기가 되면 어른들 식사처럼 하루에 세 번 먹이게 된다. 잠자는 시간도 하루 20시간에서 하루 낮잠 2회, 통잠으로 변화하듯이 식사에 있어서도 점차 '사람다운' 생활 패턴이 잡히는 과정이다. 하루 종일 먹고 자던 아기가 때맞춰 먹고 때맞춰 자는, 비로소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듯하다.
만든다고 끝이 아니다. 가장 큰 난관은 이유식 먹이기. 딱 적절한 온도로 맞춰 입에 떠먹여 주는데, 아기 입장에서는 살면서 처음 겪어보는 느낌일 것이다. 그저 혀를 잘 굴려 빨기만 하면 되었던 모유에서 낯선 식감의 이유식을 삼켜야 한다. 항상 따뜻하게 제공되던 모유와는 달리 너무 뜨겁거나 너무 차갑기까지. 마음에 안 드는 것 투성이다.
초기 이유식은 흘리고 뱉는 것이 대다수다. 내가 얼마나 먹였는지 기록하기도 참 애매하다. 새벽부터 부은 눈으로 열심히 만들어 첫 끼니로 먹였는데 대부분을 뱉어내고 급기야 크게 울기까지 하니 힘이 빠지는 노릇이다. 나중에 반찬 투정하는 어린이로 자라나면 어떡하지? 어릴 적 김치를 안 먹었던 과거의 나를 떠올리기도 한다.
먼저 아기를 낳아 기른 선배는, 이유식의 시작은 육아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이라 했다. 한 단계 더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한 단계 더 높은 난도,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신경 쓸 것이 배로 늘어나는 기분이다. 엄마의 고통이 커지는 것 이상으로 아이는 성장한다.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간다. 그 과정을 보는 엄마는 형언할 수 없는 보람을 느낀다. 오롯이 내가 사람 하나를 길러내는 느낌. 그로 인해 나 역시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는 훌륭한 사람 하나가 되어가는 느낌.
이유식을 지나 유아식으로 넘어가면 더 큰 난관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음은 자명하다. 요리가 서툰 나는 두려움이 앞서지만 우리 아기가 어떤 음식을 좋아할지, 어떤 귀여운 얼굴로 밥을 먹어줄지 궁금한 것들이 많다. 다음에 친정집으로 가면 엄마가 주는 음식들을 투정 없이 밝은 얼굴로 싹싹 긁어먹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