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되어 엄마를 생각한다

by 아리

엄마가 된 후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이라면, 아기를 키우는 데에는 엄마의 노력이 끊임없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임에도 아기를 갖기 전까지 나는 '아기는 알아서 큰다'라고 막연히 생각해왔다. 적어도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아기는 먹고 입고 자는 것, 모든 일상에서 엄마의 손길을 필요로 한다.


여기서 '엄마'는 아기를 낳은 친엄마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아기에게 사랑의 마음에서 비롯된 돌봄의 손길을 주는 모든 사람을 총칭하는 말이다. 한 사람의 아기에게는 수많은 엄마가 존재한다.


우리 엄마는 워킹맘이다. 육아휴직의 개념도 제대로 없던 시절, 아기를 낳기 직전까지 일을 했고 쉴 틈 없이 바로 복직했다. 시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육아의 부담은 덜었지만 결코 아기에게서 눈길도 손길도 떼어지지 않았으리라. 온종일 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시어머니와 딸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며 자기 직전까지, 아니 밤 중에도 아기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을 것이다. 매일 아기의 울음소리와 함께 20대의 밤을 지새웠을 것이다.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엄마는 내가 지금 겪는 감정들을 더 바쁘게 배웠을 것이다.


나의 주양육자는 할머니였다. 사랑에 순위를 매길 순 없지만 나에게 가장 큰 사랑을 준 사람은 할머니였다고 단언한다. 나는 할머니의 사랑을 느끼며 자랐고 덕분에 나의 아기에게 사랑 그 이상의 것을 줄 수 있는 엄마가 되었다. 대학을 진학하고 할머니와 떨어져 지내게 되면서, 내 인생에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간의 비중이 점차 줄어들어갔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내 삶의 대부분이 할머니와 함께였는데, 이제 나의 여생에서 할머니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의 일생이었던 사람이자 나의 가장 많은 부분을 만들어낸 사람은 할머니다.


나에게 첫 기억은 할아버지의 장례식이다. 어릴 적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해서는 기억도 전무하고 같이 찍은 사진도 몇 장 없다. 몇 년 전, 엄마와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때 처음으로 할아버지의 육아에 대해 들었다. 할아버지는 건강이 좋지 않아 눈이 잘 보이지 않으셨는데, 일로 바쁜 며느리 대신 내 분유를 타 주시곤 했다. 눈이 침침하니 손으로 물 온도와 양을 맞추며 품 안에서 꿈틀대는 둘째 손녀에게 젖병을 물리셨다 한다. 선비 같은 기질의 점잖은 할아버지였지만 딸이라고 싫어하거나 차별하는 기색 전혀 없이, 보이지 않는 눈으로 나를 돌보셨다. 사진 속에서 나를 잡고 있는 할아버지의 까만 손이 나를 쓰다듬었을 것이라 생각하면 마음 한켠이 찡해져 온다.


차마 다 나열할 수 없는 엄마들이 나에게 존재했듯이, 우리 아기에게도 여러 명의 엄마가 있다. 나보다 더 능숙한 손길로 아기를 재우는 남편, 자기 아기를 두고 프로필 사진을 우리 아기 사진으로 바꾸는 언니, 왕복 4시간 길을 오로지 아기를 보기 위해 오가는 어머님, 아픈 몸으로 신생아를 돌보기 위해 함께 지냈던 우리 엄마, 세상에서 가장 예쁜 아기라고 말하는 우리 아빠, 매일 아기 사진을 나누며 어디가 아프진 않은지 묻는 육아 메이트 친구, 먼길을 양손 무겁게 찾아오는 친구들, 만나고 싶지만 혹여 코로나를 옮길까 두려워 반년째 생이별 중인 친척들, 울고 있는 아기를 함께 달래주는 산책길의 아저씨 아줌마들, 아기가 귀엽다고 발을 조심스레 만져보는 옆 동 꼬마들까지.


아기는 항상 누군가의 눈길을, 손길을 받으며 자란다. 하루에 5번 넘게 식사를 하고, 10번 넘게 기저귀를 갈고, 5번 이상 깨어났다 잠든다. 모든 순간에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다. 모든 행동들을 하나하나 보고 배운다. 지나치는 모든 이가 교과서가 되고, 지도가 되며, 엄마가 된다. 엄마가 되고 보니 나를 길러낸 무수한 엄마들이 떠오르고, 그 어떤 것도 혼자 터득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오늘도 내 품이 아니면 울어재끼는 아기를 보며, 아기란 엄마의 끊임없는 사랑과 정성으로 자라나는 한없이 소중한 존재임을 느껴본다. 나라는 사람을 길러내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갈아넣은 가족들의 얼굴들을 떠올려본다. 아기에게 사랑을 주면서, 내가 받은 사랑의 면면들을 돌이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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