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회사 오고 싶어 질 걸?' 육아휴직 들어오기 전,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8년 간의 회사생활에 지칠 대로 지쳤던 당시의 나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었다. 백이면 백, 육아휴직 후 돌아온 선배들은 모두 같은 말을 했다. 육아가 너무 지쳐 회사가 그리웠노라고. 하루하루 복직 날만을 기다렸노라고. 육아휴직에 들어가면 나도 그런 생각이 들까 궁금했다. 회사가 가고 싶어 진다니?
그리고 육아휴직 4개월 차. 아직도 그 말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육아휴직 중인 지금 시기가 내 인생에서 가장 만족스럽고 행복하다고 장담한다.
가장 큰 만족감은 역시 아기와 함께하는 시간이다. 하루 24시간을 온전히 아기와 붙어 있어야 하니 때로는 외롭고 때로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지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그것은 아주 짧은 순간이다. 머리가 울리도록 울어대던 아기도 언젠간 울음을 멈추고 방긋 웃어 나를 위로해 준다. 그 웃음만 있다면 어떤 피로감도, 우울감도 날아가는 듯하다.
반면 회사 생활을 할 때는 아기의 웃음처럼 나를 위로해 주는 것이 없었다. 나의 자존감을 깎아 먹는 일상이 반복되었고 나와 고통을 함께하며 공감해 주는 동료들만이 유일한 안식처였다. 애써 나만의 취미활동을 찾아 유튜브를 운영하는 것도 하나의 숨구멍이었다. 그럼에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있었는데, 지금의 나는 육아로서 그 공허함을 충만하게 채워가는 기분이다.
회사생활에 열정적일수록, 육아휴직 기간이 힘들다고 들었다. 나는 한순간도 열심히 하지 않은 순간이 없다. 매 순간순간, 나중에 후회하지 말자며 최선을 다해 임했고 지금 일말의 후회도 남지 않았다. 덕분에 몇 년째 번아웃 증후군을 달고 살았다. 나는 나의 일을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나는 내 일을 사랑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마케팅을 8년 간 해왔고 집에서 쉴 때조차 아이디어를 구상하던 나였는데, 일을 손에서 떼니 전혀 일이 생각나지 않는다. 내가 떠올리는 아이디어는, 집에서 또 어떤 재밌는 일을 해볼까, 어떤 영상을 만들어 볼까, 어떤 글을 써볼까-하는 지극히 나의 알찬 하루를 위한 생각뿐이다.
그래서, 또 하나의 큰 기쁨은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비나 눈이 많이 오는 날, 폭삭 젖은 채 퇴근을 하는 남편을 보면 안쓰러운 기분이 들다가도, 나는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이기적인 생각을 한다.
오늘처럼 미세먼지도, 구름도 한 점 없는 맑은 날에는 지하철 혹은 사무실이 아니라, 아기와 집 앞에서 상쾌한 공기를 마실 수 있어 행복하다. 오늘의 하늘이 어떤 색이었는지도 모른 채 출퇴근만을 반복하며, '퇴근하고 싶다'라고 회색빛 얼굴로 읊조리던 그 시절의 감정을 떠올려 본다. 아아,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위해 그렇게 힘들었구나.
세수도 안 한 채 아기에게 예쁜 옷 입히고 사진 찍고 놀 때, 이것이 행복이지
나의 육아휴직 생활이 행복하다는 것은, 외벌이 신세가 된 남편과 비교적 순한 아기 덕분일 것이다. 행복과는 별개로 만성적 피로를 쌓아가는 나를 위해 퇴근 후와 주말에는 육아와 집안일을 도맡아 해주는 남편 덕이 크다. 평일에는 하지 못 하는 외출을 주말에 할 수 있도록 자유의 시간을 주는 것도 감사한 일이다. 또 낮에는 가끔 1~2시간씩 푹 자는 덕분에 독서와 글쓰기를 할 수 있게 해주는 순한 맛 아기도, 어린 나이에 벌써 효도를 하는 셈이다.
나는 행복할 때면, 이 행복이 언제 끝날까 걱정하는 사람이다. 아직 반년도 더 남은 복직 날이 벌써 두렵고, 복직 전 날은 어떤 기분일까, 오래간만에 출근하는 날의 아침은 어떤 얼굴일까 걱정한다. 그럼에도 아기의 웃는 낯을 마주 보는 순간, 고이 잠든 아기 옆에 누워 맑은 하늘을 바라보는 순간, 조용히 내려앉은 햇볕 아래로 천천히 산책하는 순간의 행복함을 기억하고 기록하고 싶어 사진을 찍고 글을 쓴다.
나는 생각한 것보다 훨씬 집순이였고, 내 일을 사랑하지 않았고, 육아가 적성에 맞는가 보다. 내가 몰랐던 나를 발견하는 요즘, 내가 이런 일을 좋아했구나. 나는 이런 사람이었구나 알 수 있게 되어 행복한 나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