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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재 Mar 04. 2024

비우고, 다시 채우고, 돌아가는 길

구엘공원,  바르셀로나 공항

제13부; 비우고, 다시 채우고, 돌아가는 길          



우리는 오늘 바르셀로나 공항에서 저녁 8시 35분에 출발하는 대한항공을 타고 인천으로 갈 예정이다.


가우디의 성가족성당에서 나와 저녁을 먹으러 가기 전에 구엘 공원에 잠시 들르기로 했다. 그냥 지나치기는 서운해서 아주 잠깐 내려서 사진만 한 장 찍었다.


단체로 여행을 와서 이렇게 촌음을 아껴가며 알뜰히 구경하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니다.      



구엘 공원이 자리 잡은 곳은 바르셀로나에서 비교적 높은 지역인 펠라다(Pelada) 언덕이다. 원래는 가우디의 후원자였던 구엘 백작이 아테네의 델포이를 재현시킨 전원주택단지를 만들 것을 제안하여, 60채의 주택이 들어설 예정이었다.


구엘 백작은 이곳을 엄격히 사생활이 보장되는, 일반인과는 적절히 격리된 전원주택단지로 만들려고 했다.          


(구엘 공원 전경)

                             

집을 짓기 전에 공원을 먼저 만들었다. 모든 설계는 가우디가 맡아서 했다.


그는 이곳에다 카탈루냐(Cataluña) 지방의 전통적 건축미, 에덴동산, 파르나소스의 델포이 성전, 북유럽식 정원 모델, 그리고 쿠바의 이국적인 풍경까지 넣고 싶었다. 완벽하게 아름답고 화려한 도시를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60채를 분양하려던 계획은 무참하게 틀어졌다. 겨우 3채밖에 안 팔린 것이다. 주택을 분양받은 사람은 구엘과 구엘의 변호사, 가우디뿐이었다.


주택단지를 조성하느라 돈은 많이 투자했는데 분양이 되지 않으니, 사업가 구엘도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고 말았다.


구엘이 죽은 후에 후손들이 이 공원을 물려받았지만, 관리에도 돈이 많이 들어서 유지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래서 바르셀로나시에다 단돈 1원에 넘기고 말았다.


덕분에 구엘 공원은 시에서 관리와 운영을 맡았고, 지금은 바르셀로나의 관광 명소가 되었다. 구엘 공원은 1984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바르셀로나 공항으로 곧장 가서 스페인에서 만난 버스와 운전기사, 현지 가이드와 작별했다. 열흘 동안 무려 5,100km를 함께 달리는 동안 정이 많이 들었는지 헤어지려니 무척 서운했다.


이번 여행은 상당히 알찬 코스였다. 보통 여행사의 패키지 상품으로는 갈 수 없는 곳까지 찾아가느라 장거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서로 비슷한 관심과 취향을 지닌 사람들이 함께 여행한 자체가 축복이었다.


짐을 다 부치고 보안 구역 안으로 들어와서 탑승 시간을 기다리노라니, 봇물이 터지듯이 피로가 몰려온다. 그동안 일정에 차질이 생기지 않게 하려고 바짝 긴장했었나 보다. 모든 여정을 무사히 마치고 나니 참으로 홀가분하고 감사하다.


열정 품은 작가들과 함께 10박 12일간 스페인, 포르투갈, 지브롤터 모로코 등을 다니다 보니, 내 가슴도 작가 정신으로 충만해진 것 같다.




이번 해외심포지엄을 떠나오기 전에 여행기를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 나는 흔쾌히 써보겠다고 대답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순간을 더욱 치열하게 보고, 느끼고, 기록하며 열심히 다녔다.


내게 여행기를 청탁해 주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덕분에 특별하고 소중한 추억을 이렇게 글로 남기게 되었다.      


이른 새벽 호텔 로비에서 어여쁜 신부로 돌아가기



다소 빡빡한 이번 여정을 소화하는데 매우 요긴했던 물건은, 집에서 미리 챙겨 간 연분홍 수첩과 가죽으로 된 기능성 슬리퍼와 작은 메밀 베개였다.


위에 스프링이 달린 연분홍색 작은 취재 수첩은 정신없이 스쳐 지나가는 모든 순간을 내 기억 속에다 붙잡아 놓는 비밀병기였다.


때론 버스 안에서, 혹은 걸어가면서, 궁전과 미술관과 성당 안에서 가이드가 설명할 때, 미친 듯이 휘갈겨 썼다. 귀로 들으면서 곧바로 메모하려니 무척 바빴다.


혼자 조용히 있을 때는 언뜻 스치는 생각도 잡아 놓았고, 자세한 자료를 찾아볼 것은 키워드만 추려 적었다. 제법 도톰한 수첩 한 권을 거의 다 쓰게 되었다.



가죽 슬리퍼는 오랜 시간 동안 버스 타고 이동할 때 아주 편했다.


오래 앉아 있으면 발이 퉁퉁 붓는데, 버스 안에서 꽉 끼는 신발 대신 슬리퍼를 신고 있으니 덜 피곤했다. 실내에서만 신을 수 있는 헝겊 슬리퍼가 아니어서, 어디서 신어도 불편하지 않고 두루 좋았다.



집에서 쓰던 작은 메밀 베개도 가져가길 정말 잘했다.


매일 잠자리가 바뀌는 데다 베개 높이까지 안 맞으면 잠을 자기 어려운데, 평소에 베던 베개라서 눕자마자 깊이 잠들었다. 빡빡한 일정에다 밤잠까지 설쳤다면, 피곤해서 여행을 제대로 즐기기 힘들었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처음 떠날 때보다 훨씬 가깝게 느껴졌다. 실제로 비행시간도 스페인으로 갈 때보다 2시간이나 줄었다. 바람의 영향이었다.


2023년 11월 2일 오후 4시 50분, 우리를 태운 대한항공 여객기는 예정했던 시간에 무사히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여행이 즐거운 것은 돌아갈 집이 있기 때문이다
  기다려주는 사람이 곧 집이다
   내게 집이 되어준 그대, 고맙소


이른 새벽, 시간 거슬러 추억을 만든 열정 품은 작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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