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피해자

by CHOYI

손을 벌벌벌 떨며 근처 지구대로 갔다. 혹시 따라올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제일 가까운 경찰서로 갔다.

지구대에 도착하자마자 긴장이 풀리면서 방금 내가 겪었던 일을 설명하는데 눈물 때문에 말을 제대로 못할 지경이었다. 나를 진정시킨 경찰관이 경찰서로 가야된다고 다시 안내해주셨다.

엉엉 울면서 경찰서로 갔고 바로 여성청소년계로 인계되어 조사를 받으러 갔다. 내 담당 경찰관은 여자였고, 이 사건은 특수폭행 및 강간에 해당되어 내 진술이 정확해야 된다고 했다.

친정집앞에서 만난 순간부터 차에 태워져서 강제로 살던 집으로 오게 된 경로와, 주차장에서부터 들어가지 않으려고 했지만 끌려갔고 집안에서의 모든일도 낱낱이 설명했다. 전 남편의 보복이 무섭고, 또 이렇게 행동하지 않으리란 법이 없을 것 같아서 두려웠다. 10년의 결혼생활동안 한번도 남편을 신고하지 않았던 내역을 보고 경찰은 더 놀랬다. 결국은 내가 내손으로 이사람을 신고하게 만들었다.


접근금치 요청을 하고 스마트워치도 받았다. 또한 재범 가능성이 높아서 경찰은 긴급체포를 해야겠다고 했고 그 사이에 조심해야 된다고 했다. 나는 경찰에 바로 신고할 생각으로 몸도 씻고 오지 않았더니 검사를 해야된다고 보라매병원을 가서 검사를 하라고 안내받았다. 신고하는게 끝이 아니었다. 시작이었다.


또 혼자 운전을 해서 보라매병원을 갔다. 가서 똑같은 상황을 설명하고 계속 끔찍한 기억들을 반복적으로 일정하게 말해야 했다. 도착해서도 2-3번은 더 물어본 것 같아서, 대체 똑같은 말을 몇번 해야 하냐는 말까지 했다. 강간 사건은 사실 피해자의 증언의 일관성이 중요하다고 해서 내 말이 같은지를 계속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피해자가 피해자라고 경찰에 와서 신고를 했는데 결국은 내가 모두 증명해야 하다니 답답했다.

비슷한 일을 겪은 피해자들이 신고까지는 잘 안한다고 하던 뉴스기사가 갑자기 생각나면서 왜 그러는지 단번에 이해하게 됐다. 정말 보통 사람이 그냥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는게 절대 아니구나...........

입술부터 하반신까지 꼼꼼하게 검사를 했다. 속옷도 제출할 수 있냐고 해서, 속옷도 제출하고 왔다.

하루 사이에 일어난 일들을 다 처리하고 나니, 캄캄한 밤이 되었다.

모든 걸 다 끝내고 나오니 불이 꺼진 병원에서 눈물콧물 범벅이 된 내 모습이 처량해보였다.

그래도 마음을 다잡았다. 왜냐면 이렇게 해도 그는 순순히 이혼해주지 않을거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10년의 결혼생활동안 나는 늘 참고 이해하려고 했다. 오늘 그의 행동은 나의 인내심을 부숴버렸고,

희미하게나마 그의 대해 남아있던 어떠한 연민이나 동정마저도 사라졌다.


나는 그래서 이제부터 더 정신을 차려야 했다.

나와 나의 아이들의 내일을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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