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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Dec 28. 2022

이해관계


 “어떻게 하면 사람이 그렇게 냉정할 수 있어? 사실은 너도 겁이 나서 피하는 거 아니야?”


 빌라 아래에서 유진이 고개를 들고 외쳤다. 그러자 자빈이 창문을 벌컥 열었다. 뭐? 겁? 자빈이 파자마도 갈아입지 않은 채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녀의 옷을 본 유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유진이 그냥 네가 겁쟁이인 건데 왜 네 겁 때문에 나까지 피해를 봐야 하냐고 소리쳤다. 그 말에 자빈이 고개를 푹 숙이고 창문을 닫았다. 유진은 그녀의 행동에 입술을 꽉 깨물었다. 유진은 그녀가 고개를 내민 창문의 층수를 세더니 성큼성큼 현관 안으로 걸어갔다. 그때, 금세 옷을 갈아입은 자빈이 계단에서 내려왔다. 그녀는 빨리 조사만 하고 가자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시장에 도착하자 유진은 입꼬리를 내리질 못했다. 그녀는 한껏 들뜬 목소리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상인들에게 인사를 하고 다녔다. 반면, 자빈은 몸을 벌벌 떨면서 발걸음 보폭을 좁혔다. 자빈이 멀리 떨어진 유진에게 빨리 조사 안 하고 뭐 하는 거냐고 보채기 시작했다. 유진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두리번거리는 자빈의 모습에 주먹을 꽉 쥐었지만 뭐처럼 시내까지 왔으니 참자며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유진이 그래, 고등학교 가면 이런데 더 못 올 테니 즐겨야지,라고 중얼거렸다. 그러나 자빈이 연신 팔을 붙잡자 유진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자빈의 팔을 뿌리 치며 말했다.

 “그러니까 네가 우리 중학교에서 친구가 아무도 없는 거야. 언제까지 징징거릴 거야”

 그 말에 자빈의 표정이 굳더니 갑자기 뒤돌아 뛰었다.


 노랗게 하늘에 노을이 물들었다. 유진은 말이 너무 심했나 싶어 자빈의 집 앞으로 다시 찾아갔다. 그런데 그녀가 고개를 내밀었던 창문 너머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넘어왔다.

 “네 어미가 도망간 것처럼 너도 시장에 팔아버렸어야 했는데”

 유진은 입을 꾹 다물었다. 아무래도 내일 학교에서 얘기해야 할 듯싶어 등을 돌리려는 찰나 계단을 내려오는 자빈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손을 보니 빈 술병이 가득 든 봉투가 양손에 쥐어져 있었다. 유진은 시장 상인들에게 받은 음식들을 가득 쥔 자신의 손을 등 뒤로 숨겼다. 정적이 일자 유진의 주머니에서 전화 소리가 울렸다. 휴대전화 액정 위로는 ‘사랑하는 우리 엄망’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급히 전화를 받자 엄마가 차를 타고 데리러 왔으니 저녁 먹게 어서 오라고 말했다. 수화기 너머 소리를 들었는지 자빈이 고개를 까딱 숙이고 쓰레기장으로 갔다.


 조수석에 앉은 유진은 사이드미러에 비치는 자빈에게 눈을   없었다. 자빈은 시야에서 멀어질 때까지  자리에서 망부석처럼  있었다. 국도로 들어서자 창문 밖으로 길거리에 앉아 사과를 파는 아주머니가 보였다. 낮에 시장에서  과일과게 아주머니와 달리 홀로 앉은 그녀의 등이 유난히  굽어보였다. 유진은 괜히 엄마한테 사과가 먹고 싶다고 말했다.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핸들을 돌려 아주머니가 앉은  앞에 차를 세웠다. 사과를 사러 왔다고 하자 아주머니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난히 붉고 상처가 없는 사과들만 골라 봉투 안에 넣었다. 오늘  손님이니 좋은 걸로만 드려야지,라고 중얼거리자 유진은 점점 저물어가는 해를 바라보았다. 사과만큼, 어쩌면 사과보다  붉은 노을 때문인지 왠지 모르게 유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유진은 차로 돌아가 시장에서 받은 뻥튀기를 챙겨 아주머니에게 건넸다. 아주머니가 흠칫 놀라며  이런 , 이라고 하자 유진은 그래도 고생하시는데, 하고  버부리며 차로 먼저 돌아갔다.

 “시장이 있으니까 노점이 있고 노점이 있으니까 시장이 있는 거야.”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엄마가 유진에게 말했다. 유진은 마지막으로 자빈이 비친 사이드미러를 보면서 엄마의 말을 여러 번 곱씹었다.


 아침 조회를 시작하기 전, 교실 안은 정신없이 붐볐다. 그 틈에서 자빈은 맨 뒷자리 책상에 머리를 박고 엎드려 있었다. 유진이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자 반 친구들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쏠렸다. 그리고 모두 약속한 듯 유진에게 밝게 인사를 건넸다. 유진은 친구들에게 손을 흔들다 이내 다시 표정을 굳혔다. 홀로 떨어진 자빈에게 도무지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그때, 반장이 유진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 손을 모아 유진의 귀에 댔다. 유진은 예상한 대로 자빈이와 시내에 가서 어땠냐는 질문이었다. 유진은 책상에 엎드린 자빈을 힐끔 바라보았다. 물려받은 듯한 교복, 팔에 드러난 상처, 다 해진 운동화. 유진은 음, 하고 볼멘소리를 냈다.

 ‘너는 나를 이해 못 하겠지? 나와 다른 삶을 살았으니까. 그런데 솔직히 나도 너로 살아보지 못해서 너를 이해할 수 없어. 내가 어떻게 냉정한 너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짧은 생각이 유진의 머리를 스쳤다. 반장이 빤히 유진을 보자 유진은 대답 대신 그녀에게 미소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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