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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Dec 23. 2022

여행

 


 발걸음을 따라 발자국이 남았다. 그래, 적어도 실종될 일은 없겠지. 안개가 짙어졌다. 눈앞에는 안개 사이로 새하얀 나무가 보였다. 나무는 고개를 들어도 눈에 모두 안 담길 정도로 커다랬다. 그러나 벗겨진 표면은 마치 벌거벗은 듯했다. 나는 곧장 스마트폰을 꺼냈다. 방송하기 버튼을 누르자 순식간에 시청자 수가 늘어났다. 채팅창은 눈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올라갔다. 나는 나무를 향해 카메라를 돌렸다. 화면 안에 벌거벗은 나무가 담기자 잠시 채팅창이 멈추었다. 그러다 저게 뭐냐고 다시 빠르게 채팅이 올라왔다. 내가 카메라를 더 가까이 나무에 들이대려는 찰나, 스마트폰 화면이 깜빡거렸다. 서비스 불가지역. 불현듯 떠오른 문구에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나는 마스크를 고쳐쓰고 노래를 중얼거렸다. 낮에 본 숙소를 찾고 싶었지만 주변은 점차 하얗게 물들어갔다.


 “요즘 인터넷 방송이 대세잖아. 우리도 하자.”

 2년간 인턴을 했지만 결국 정규직이 되지 못했다. 들린 소문에 의하면 신입사원 중 원청업체 부장의 아들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호영이 세운 기획은 참신했다. 전쟁 피해를 입었거나 폐쇄된 여행지를 가보는 것. 덕분에 구독자는 무서운 속도로 올랐다. 호영은 점점 더 자극적인 여행지를 고르기 시작했다. 이번 여행도 호영의 고집이 한몫했다. 아직 아무도 간 적 없잖아. 반드시 우리가 처음이여야만 해. 가이드도 없고 지도도 없었다. 무모했지만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그저 백수에 불과했을 거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고 그의 등을 뒤따랐다.


 얼마나 왔을까. 눈앞은 여전히 뿌연 안개로 가득했다. 중얼거리던 노래가 작아질 즈음, 저만치 앉을 만한 바위가 보였다.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재촉해 바위로 향했다. 엉덩이를 붙이자 깊은 한숨이 나왔다. 다리를 펴고 기지개를 켜는데 스마트폰에서 알림이 울렸다. 호영 님이 방송 중입니다. 그제서 들어온 연결망에 스마트폰을 꽉 쥐었다. 곧장 시청하기를 눌렀다. 호영의 얼굴이 화면 안에 나타났다. 초점이 없는 눈동자, 가쁜 숨소리가 화면에 담겼다.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미간을 찌푸리며 흐릿한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방금 본 나무임이 틀림없었다. 곧장 그가 있는 곳으로 가려는데 가득 찬 안개 탓에 주변을 두리번거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혹여 방송이 끊어질까 스마트폰을 높이 들어올렸다. 문득 바닥에 남은 발자국이 떠올랐다. 나는 고개를 숙여 희미하게 남은 발자국에 의지해 걸음을 걷기 시작했다.

 커타란 나무가 희미하게 보였다. 당장이라도 뛰고 싶었지만 질퍽이는 바닥이 발걸음을 방해했다. 서서히 나무에 기대 앉은 호영이 보였다. 그는 여전히 스마트폰을 쥐고 자신의 얼굴을 화며 안에 담고 있었다. 나는 호영의 스마트폰을 낚아챘다. 혼자라도 방사능 위험구역에 간다더니. 그의 팔이 붉게 물들어있었다. .나는 무릎을 굽혀 그와 눈을 맞추었다. 이제 돌아가자. 충분하잖아. 그러나 호영이 고개를 가로저어었다. 아직 영상이 충분하지 않아. 단호한 그의 말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너는 다시 백수로 돌아가고 싶어? 호영이 말을 덧붙였다.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움직임이 멈추었다. 안개가 서서히 걷히는 듯했지만 여전히 내 시야를 가렸다. 다시 2년간의 인턴생활이 머릿속에 아른거렸다. 나는 그를 일으켜 팔을 내어깨에 걸치게 두었다. 그리고 가자, 하고 짧게 말했다. 무엇이 두려웠던 걸까? 그가 향했던 곳으로 걸어가는데 연신 머릿속을 맴도는 의문은 도무지 지워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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